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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염불수행대전14-10(228)


14-10

 

1)육식, 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장난삼아 다른 이의 생명을 죽이면 슬프게 울부짖으며 지옥에 들어간다. 더러운 것과 끓는 구리물을 넣었다 담갔다 하며, 난도질을 당하고 불 속에 들어가며, 찢기고 부서지고 매 맞는 독을 얻어서, 억만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으니, 마음이 쓰리고 아파 차마 기록하지 못한다.

현우경賢愚經

 

수행자는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이끌어야 한다. 그리하여 한낱 개미까지라도 공포에서 건져주는 것, 이것이 모든 수행자의 의무이다.

열반경

 

 

모든 존재에게 다 자비심을 일으켜, 모기나 개미라 할지라도 해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아

 

소희문邵希文은 아직 급제하지 못한 선비였는데, 어느 때 꿈속에서 한 관부官府에 이르니 사람들이 모두 안무사安撫使라고 불렀습니다. 소희문이 기뻐서 생각하길, “아마도 내가 급제한 후에 안무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더 나아가서 한 관원을 만났는데, “그대는 그대가 급제하지 못하는 원인을 아는가.” 모른다고 대답하니 그가 소희문을 이끌고 가서 참조개를 삶는 큰 솥을 보여 주었습니다. 조개들이 소희문을 보더니 사람소리를 내어 소희문의 이름을 (원망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소희문이 바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부르니 열불 일성一聲에 조개들이 모두 황금 새로 변하여 날아갔습니다. 소희문이 그후에 정말로 급제하여 벼슬이 안무사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살생은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으므로 경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부처님의 힘은 광대무변하므로 공경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관직은 본래 분수가 정해져 있어서 억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왕일휴용서정토문

 

우리 불자님들, 재가불자님들 되도록 고기를 드시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한테 별로 이익 될 것이 없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돼지나 소 같은 축생들은 사람보다 훨씬 더 업장이 무거운 것인데, 그 세포가 사람한테 들어오면 그만큼 우리가 오염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비심을 손상시킵니다. 우리는 몰라도 귀신은 다 봅니다. 선신善神들은 고기 많이 먹는 사람을 무서워해서 피합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데, 그것은 사람에만 국한시킨 것이 아닙니다. 개와 나도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그네들의 고기를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 안 먹어도 우리가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그전에 우리가 자랄 때는 일 년 내내 가야 돼지나 쇠고기를 한 번이나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촌에서도 한 달에 몇 번씩 먹는다고 해요. 그렇게 외국에서 수입하면서까지 외화를 낭비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육식한다고 더 건강하게 되면 우리 자비심을 손상시키고, 또 악신惡神은 그 냄새 맡고 가까이 붙고, 훌륭한 선신들은 냄새 맡고 도망가고, 우리 마음 닦는 공부도 잘 안 되고, 죽어서는 악귀에 떨어지기 쉽다고 불경에 명문으로 나와 있습니다.

- 청화스님

 

살생하지 말라는 그 말을 어기고서 우리가 함부로 죽여 보십시오. 인정이 많은 사람은 사실 파리 한 마리만 죽여도 마음이 덜컥합니다. 하물며 거기다가 닭을 죽여서 먹고, 소를 죽이고 개를 죽이고 해보십시오. 지금은 마음이 표독스러워서 닭도 죽이고 개도 죽이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정작 자신이 죽을 때는 닭 모가지, 소 모가지, 개 모가지가 와서 자기를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장서라는 소를 잡는 도아屠兒가 있었습니다. 그는 소도 많이 잡고 여러 가지 짐승을 많이 잡았겠지요. 백정이니까 그렇게 어려움 없이 무서움 없이 많이 죽였단 말입니다. 그가 죽는 순간 그 짐승들의 영혼이 무수히 이렇게 와서 호령도 하고 눈을 부릅뜨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서운 가운데서도 죽음의 길에 이르는 찰나에도 역시 훌륭한 법사法師를 만나서 그런 사람도 제도를 받았습니다. 선인善人만 제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그런 소도 죽이고 말도 죽이고 하는 사람이라도 마지막 순간에 일념 참회를 해서 바른 마음을 돌이키면 그냥 제도를 받습니다. 불법佛法이 오직 쉬운 것입니까.

- 청화스님

 

어떤 분이 업력은 숙명론이 아니냐고 묻는데 맞습니다. 숙명론은 업력에 근거해서 오는 겁니다. 숙명론 입장에 서서 보면 인생의 운명에는 정해진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배우면서는 숙명론을 믿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숙명론도 불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운명은 누가 주관하는 것일까요. 하느님도 아니요, 염라대왕도 아니요, 불보살도 아닙니다. 자기가 만드는 것이요,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금생에서의 과보는 과거 생에서의 종자가 현행한 것입니다. 금생에서의 생리적인 행위와 심리적인 행위는 또 내생의 종자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다.

내생의 일을 아고 싶은가. 금생에 지은 것이 그것이다.

운명은 업의 이치입니다. 앞서 말한 적이 있듯이 업은 별업別業과 공업共業으로 나눕니다. 저마다 운명이 다른 것은 별업입니다. 공업은 어떨까요. 우리가 태어난 시대는 고뇌의 시대요, 전쟁의 시대입니다. 특히 우리 같은 연배의 중국인은 북벌전쟁과 항일전쟁을 겪었고 공산당의 변란도 겪었습니다. 이 일생은 이처럼 소모되어 갔습니다. 40년 전에 제가 학우에게 말했습니다. “됐네, 우리들의 일생은 점쳐볼 필요가 없네. 모든 중국인의 운명은 내가 다 점쳐놓았지. 여덟 글자일세. ‘생어우환 사어우환(生於憂患 死於憂患)’ 이라고.” 우환 속에서 태어나 우환 속에 죽는다는 이 말은 물론 우리들 한 세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전쟁의 시대는 우리들 시대의 공업입니다.

 

이러한 공업은 어떻게 왔을까요. 옛사람이 말했습니다. “세상에 전쟁이 나는 원인을 알고 싶은가. 도살장에서 밤중에 나는 소리를 들어보게.” 우리들 뱃속은 얼마나 많은 생명을 먹었을까요. 예를 들면, 대북시臺北市(대만의 수도)에서는 하루에 몇 마리의 소, 몇 마리의 돼지, 몇 마리의 닭과 오리를 먹어야만 하는지 여러분 통계를 내본 적 있습니까. 다른 생명을 먹고서도 그 목숨 빚을 갚지 않아도 될까요. 우리가 예전 어린 시절에 남들이 돼지 잡고 소 잡는 것을 흔히 가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소는 도살장에 도착하기만 하면 눈물을 줄줄 흘렸는데 정말 신기했습니다.

 

소는 이런 영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돼지 형씨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형장에 갔어도 여전히 꿀꿀거리기만 했습니다. 이런 일을 많이 보았기에 보면 두려워집니다. 여러분 보세요. 돼지 도살자는 많이 잡다보니 그 사람 자신이 돼지의 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나오게 된 겁니다. 정말입니다. 뒤에 과학이 진보하면서 돼지 잡는 방법이 전동장치로 바뀌었습니다. 돼지머리만 집어넣었다 하면 몇 분 이내에 깨끗이 처리됩니다. 예전에 상해에는 다른 곳보다 먼저 전동도살장이 설치되었습니다. 다 지어놓고 난 다음에 기사가 기계를 점검하고 시험해보려 갔습니다. 그런데 조심하지 않아서 옷자락이 기기에 걸려 사람이 통째로 말려들어갔습니다.

남회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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