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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염불수행대전14-7(225)


 

14-7

 

1)육식, 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고기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그래도 염불 수행이 아주 잘 된다. 나는 채식에 집착하지 않는다.이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생명을 죽이는 기운이 살아있는 입으로 어떻게 염불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은 자비심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이가 하는 말이 아니다. 연지대사는 말했다. 죽이고 그 고기를 즐겨 먹는 마음이여, 이 세상에 이보다 더 흉악하고 슬프고 독한 마음이 또 어디 있으리. 자비심은 모든 불보살의 생명이다. 자비의 세계인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고기 먹는 나쁜 업을 즐겨 쌓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고기를 즐겨 먹으면 오래 살지 못하고 병치레를 하는 과보를 받게 된다. 병에 걸려 괴로울 때 바른 생각으로 염불할 수 있겠는가. 夏蓮居거사는 이렇게 노래했다. 슬프구나. 흐르는 과보果報의 물결이여. 흘러 흘러 윤회의 바다에 넘치네.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 가득한 괴로움의 불길이여. 목숨을 죽이는 한 생각에서 왔네.

현장스님

 

요즘 업을 짓는 중에 유독 살생이 더욱 심하여, 온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조그마한 마을만 하더라도 하루 동안에 죽임을 당하는 소돼지거위물고기자라 등의 생명이 걸핏하면 천만이 넘는다. 그 밖의 잘잘한 것들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봄가을 두 철에 천지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조고祖考께 올리거나 선성善聖과 선현께 공덕을 갚느라 사용되는 희생犧牲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천지와 귀신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조고祖考도 못 본체 하며 선성과 선현도 그만두게 하시지 않는다.

 

더욱이 부처님은 어지심이 천지를 덮으시고 자비로 귀신을 섭수하시며, 덕도 성현들보다 높으시면서, 어찌 잠깐 신통神通을 보여 저들(살생하는 자들)로 하여금 지금 당장 악보惡報를 받게 하거나, 또는 그들이 도리어 이러한 고통을 당하게 하지 않으실까. 그렇게 하시면 어느 누가 놀랍고 두려워 잘못을 후회하고 고치려 하지 아니할 이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못 본체 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도살당하는 저 소돼지 따위는 전생에 살업殺業을 지었던 자들이므로 지금 축생의 보를 받는 것이요, 전다라旃多羅는 전생에 죽임을 당했던 자들이므로 생을 바꾸어서는 죽이는 몸이 된 것이다. 인연을 만나면 비로소 본성이 드러나 정업定業으로 그렇게 된 것이어서 능히 이를 구제할 자가 없으며, 그 업이 다한 후에야 비로소 과보도 끝이 나는 것이니, 비록 하늘 중의 하늘이시고 성인중의 성인이신 부처님께서도 능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과거의 과보는 겨우 소멸되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죄를 다시 지어 인과가 서로 순환하여 끝날 때를 알 수 없다. 그러니 지난 일은 상관치 말고 앞으로의 일을 좇아간다면 지금의 살인殺因이 끊어지고, 이 이후의 살과殺果도 없을 것이다. 여래의 명훈冥薰이 태양과 같이 밝아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살업을 구원하셨으니, 지극하지 않은가.

연지대사죽창수필

 

* 조고(祖考) : 돌아가신 할아버지

* 희생(犧牲) : 천지신명이나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제물로 바치는 짐승들을 말한다.

* 전다라(旃多羅) : 인도의 가장 아래 계급. 도살하는 사람이나 옥졸, 사형집행관 등을 가 리킴

* 명훈(冥薰) : 어두운 곳에서 연기가 피어나듯 미묘하고 그윽한 부처님의 가피

 

산목숨을 죽이는 살생은 그 허물과 죄악이 지극히 크고 무겁습니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님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 산목숨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살기등등하니 방종하여 무거운 죄업을 짓고 깊은 원한을 맺으며 결국 막대한 고통의 과보를 불러들이는 것은 죄다 죽일 살()’자 하나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렇게 해서 죽이려는 마음이 점차 맹렬해지고 살생의 업장이 점차 깊어지면, 나중에는 점점 사람도 죽이고 일가친척도 죽이며, 심지어는 창칼을 휘두르는 전쟁까지 초래하는데, 어찌 끔찍스런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이 모두가 살생을 금지할 줄 모르는 데서 말미암는 비극입니다. 진실로 산목숨 죽이는 걸 금할 줄 안다면, 제물로 바칠 희생犧牲조차 차마 죽이지 못하는데, 창칼 휘두르는 전생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 “남의 부모를 죽이는 자는, 남이 또한 그의 부모를 죽이기 마련이고, 남의 형제를 죽이는 자는, 남이 또한 그의 형제를 죽이기 마련이다.” 이 말씀은 남의 부모형제를 죽일 수 없다는 일반론으로, 남의 부모형제를 죽이는 범죄가 바로 살생을 금지[戒殺 : 채식] 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생을 그만두지 않는 까닭은 인과응보의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과란 감응입니다. 내가 나쁜 마음으로 남을 감동시키면, 남도 또한 나쁜 마음으로 반응해 옵니다. 거꾸로 내가 착한 마음으로 남을 감동시키면, 남도 또한 착한 마음으로 호응해 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인과의 감응이 현생現生에만 나타나는 줄로 알 뿐, 인과의 감이 전생현생내생의 삼세 윤회를 통하여도 나타나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은 인과의 감응이 인간 세상에 나타나는 줄만 알 뿐, 이러한 인과의 감응이 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육도윤회를 통하여도 나타나는 줄은 미처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로 인과의 감응이 삼세와 육도의 윤회를 통하여 나타나는 줄 안다면, 육도 중의 중생이 모두 여러 생에 걸친 자기 부모형제들일 텐데, 살생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사람들은 설령 인과의 감응이 육도윤회를 통해서 나타나는 줄은 안다고 할지라도, 세간과 출세간의 수행을 통해서도 나타나는 줄은 미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가 없다는 무아심無我心으로 감동시키면, 성문과 연각의 과위果位가 호응해 오고, 보리심의 육도만행六度萬行으로 감동시키면, 보살법계가 과위로 호응해 오며, 모든 중생을 일미평등一味平等하고 일심동체一心同體로 대하는 대자비심으로 감동시키면, 부처님 법계가 과위로 호응해 오는 법입니다.

오호라! 인과와 감응의 도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철오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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