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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205)

 

 

* 인광대사는 말법의 중생은 복덕과 지혜는 박천(薄淺)하고 업장은 두텁고 깊어 정법(淨法)을 닦을 수 없다. 자력에 의지하여 견사혹(見思惑)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생사윤회를 마치려하지만 정말로 어렵고도 어렵다.라고 하였다.

 

* 중국 청나라의 자운(慈雲)대사는 세상 사람들은 업장은 깊고 두터워서 일체의 모든 경전과 주문과 참법(懺法)으로도 업장을 없앨 수 없을 때에, 최후로 아미타불 이 넉자가 소멸할 수 있으니,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염불이다.라고 하였다.

 

* 부처님은 자력(自力)으로 성불하려면 3아승기 동안 수행하여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완전히 끊고, 다시 100겁 동안 보살의 인지(因地)를 닦아야 비로소 3280종호의 원만한 덕상(德相)을 갖추고 무상정등정각을 이룬다고 하셨다. 그러나 정토법문은 믿음과 발원과 염불수행의 3요소만 갖추면 업장을 짊어진 채 극락에 왕생하며, 한 번 극락에 왕생하면 영원히 생사윤회를 벗어난다고 하셨다. 이미 깨달아 증득한 사람은 단박에 부처자리에 오르고, 설령 깨닫지 못한 범부라 하더라도 불퇴전의 지위를 얻는다 하셨다.

 

* 진단(震旦) : 중국을 달리 이르는 말.

 

* 여덟 가지 어려움 : 팔난(八難)을 말한다. 팔난은 부처를 볼 수 없고, 가르침도 들을 수 없는 여덟 가지 어려움을 뜻하는 말이다. , 지옥 아귀 축생 長壽天 북울단월 봉사 귀머거리 벙어리 세지변총(世智辨聰) 불전불후(佛前佛後)를 말한다.

* 비부루산 : 고대 인도에 있던 마가다국의 도읍지인 왕사성(王舍城)의 동북쪽에 인접해 있는 산. 원래는 비부라산(毘富羅山)이었는데, 석가세존께서 계실 때 비부루산으로 불렸다.

 

비록 경전과 불상이 세상에 있으나 한 사람도 우러러 받드는 이 없고, 비구比丘들은 속된 행만 자주 지으며 성현 또한 나타나지 아니하도다. 그때 불상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경전은 수명을 다해 용궁으로 돌아가지만, 오직 아미타부처님 법이 있어서 백년간 이 세상에 머물게 되리. 모든 인연 있는 중생 이끌어 주사 극락세계 모두 태어나게 하시니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의 서원 가장 깊고 간절함을 이로써 알라.

 

정법과 상법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하고 소박하였기 때문에, 많은 성현들이 범부의 형상으로 화현化現하여, 빛을 누그러뜨리고 티끌세상과 함께 하면서[和光同塵] 법을 널리 펴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그러나 말법의 끝에 이르면 사람들이 의심과 아첨이 많아져 정법을 등지고 삿됨으로 향하여 교화를 받아들이는 이가 없으므로 성현들이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다.

 

십주비바사론에서 말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일 만년 뒤에는 불상佛像이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경전은 용궁으로 되돌아가며, 모든 비구의 무리들은 세속의 무리와 똑같아져서 다만 가사를 입고 머리를 깎았을 따름이다.

 

무량수경은 이렇게 말한다.

말세에는 법이 사라져 용궁으로 흘러 들어가지만, 특별히 이 경전은 백년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생을 이끌어 저 극락정토에 가서 태어나게 하리라.

-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 석가여래행적송 : 고려 후기의 고승 운묵(雲黙)대사가 석가세존의 생애와 불교의 전파 내력 등에 관한 776구의 게송(偈頌), 거기에다 주석을 붙인 책. 상편에서는 부처님의 일생과 인도불교를, 하편에는 불교가 중국에 전해온 것과 말세(末世)의 불교도에 대한 교훈으로 엮어 있다.

 

* 우익대사는 진실로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이고,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 화광동진(和光同塵) : 노자에 나온다.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산다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덕(智德)을 나타내지 않고 세류(世流)에 따르는 것을 일컫는다. 또는 불보살이나 성현께서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하여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세계에 나타남을 이르는 말이다. 영명(永明)선사는 유심결(唯心訣)에서 빛을 부드럽게 하더라도 한 무리를 짓지 않고[和光而不群], 티끌과 함께 하더라도 물들지 않는다.[同塵而不染]라고 하였다. 이는 비록 자기의 빼어남을 부드럽게 하여 세속의 속인과 어울린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자아(自我)를 지키고, 스스로의 자존(自尊)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염불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신에 빠져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아미타불을 외우면 아미타불께서 자기를 지켜주고 도와주리라 생각하지요. 아미타불은 자기를 상대도 않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설사 하루에 부처님 명호를 십만 번 부른다 하여도 성질은 여전히 사나워서, 남들이 한 번 기분 나쁘게 하면 몇날 며칠을 화내고 그러다가 몇 마디 좋은 말을 해주면 또 며칠씩 기뻐한다면 이래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는 번뇌가 조금도 끊어지지 않고 번뇌가 자주 일어나는 것이므로, 부처님 명호가 번뇌를 누르지 못하여 극락에 왕생도 하지 못합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하루에 몇 번이나 부처님 명호를 불러야 아미타불께서 와서 맞이하여 인도해 주시는지에 대해 부처님은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정토종의 경론을 다 뒤져도 그런 말은 없습니다. 조건이라면 어지럽지 않은 것[一心不亂]과 마음이 전도되지 않는 것[心不顚倒]이지요.

 

평생에 단 한 번 부처님 명호를 부르더라도 그 한 번의 부처님 명호를 일심불란하게 부른다면 왕생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십만 번 부처님 명호를 부르더라도 일심불란하게 하지 않으면 극락에 갈 수 없습니다. 아미타경에 아주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왕생의 기준은 일심불란과 심부전도라고 말입니다. 번뇌장煩惱障을 깨뜨리는 것이 일심불란一心不亂이고, 소지장所知障을 깨뜨리는 것이 심부전도心不顚倒입니다.

 

- 정공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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