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확철대오廓徹大悟하고 완전히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證得하지 않으면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소. 대보살의 근기와 성품을 지닌 사람이라면 확철대오하면서 증득하여 스스로 삼계 고해苦海를 벗어나 영원히 생사윤회를 해탈함과 동시에 위로 불도佛道를 추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교화하여 복덕과 지혜의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러한 대보살의 근기와 성품을 갖춘 경우는, 이른바 확철대오 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 백천 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할 따름이라오. 그 나머지 근기가 조금이라도 처지는 사람은 제아무리 미묘한 도道를 확철대오를 했을지라도,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완전히 끊을 수 없어서 여전히 삼계에서 생사윤회를 되풀이해야 한다오. 지금 말법시대에 확철대오한 사람도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인데, 하물며 확철대오한 바를 증득한 사람은 말할 나위가 있겠소.
-인광대사
* 인광대사는 「염불법문은 자력(自力)과 불력(佛力) 두 가지를 다 갖추었소. 고로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이미 끊은 자는 법신(法身)을 증득하고, 견혹과 사혹을 끊지 못한 자는 업을 가지고 왕생한다오.」 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참선하는 자가 서방에 왕생하고 싶다면(참선을)염불로 바꿀 필요는 없다. 다만 믿음과 발원을 갖추고 참선하면 곧 이것이 정토수행이다. 또한 염불이 일심불란의 경지에 이르면 주관과 객관을 모두 잊고 곧바로 무생법인을 증득한다. 이 어찌 도를 깨침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참선과 염불은 둘 다 도를 깨칠 수 있으며, 둘 다 서방에 왕생할 수 있다. 다만 의심[疑精]이 있으면 곧 참선이고, 의심이 없으면 곧 염불이다. 사람들이 수행을 시작할 때 스스로 살필지어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만약 번뇌를 조복(調伏)시킬 수 없다면, 선(禪)을 배운다는 말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염불법문은 업(業)을 가지고 정토에 왕생하므로 번뇌를 끊지 않아도 되며, 단지 잠시 조복하기만 하면 왕생할 수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 직접 눈으로 보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러한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성내는 마음이나 생각이 다들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를 크게 냄은 당연히 성내는 생각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사람을 속이고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 이 모두가 성냄입니다. 시비(是非)를 분명히 함도 성냄입니다. 혹은 어떤 일에도 성내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도 깔끔함을 좋아하는 것으로, 지저분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것도 성냄입니다. 한 생각 성냄이 바로 싫어서 미워함입니다.
당신은 염불을 합니다. 정좌(靜坐)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염불을 잘 하더라도 사혹(思惑 : 탐욕, 성냄, 어리석음, 교만, 의심)이나 이 심리행위를 조금도 전환시키지 못한다면 부처님을 배운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게 진정한 불법입니다.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밀교수행을 하든 무슨 수행을 하든지 간에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 사혹을 끊어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참선과 염불법문은 길은 서로 다르나 집에 도착하는 것은 진실로 같다. 그러나 참선을 해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인천人天에 머무를 뿐이지만, 염불을 해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래도 극락에 갈 수 있다. 이것으로 비교해 보면 참선은 염불에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답한다.
깨닫지 못해도 염불수행으로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는 것은, 염불의 정성과 간절함이 극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만약 참선하는 자가 역시 저와 같이 정성과 간절함으로 한다면, 깨달음을 얻지 못해 인천에 태어난다 해도 깨달음을 얻기가 멀지 않아 다시 세상에 오면 혜근慧根이 단박에 자라나고 단박에 깨달음을 증득하니 가히 (그 경지를) 헤아릴 수 없다. 염불을 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는 비록 정토에 왕생해도 결국 의성疑城과 태옥胎獄가운데 떨어져 범부의 알음알이가 다 교화되기를 기다려 비로소 부처님을 뵐 수 있으니 (이렇게 보면) 염불이 어찌 참선보다 뛰어나다고 하겠는가. 대저 참선법문과 염불법문은 근기에 들어맞는 것은 다르지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다름이 없다.
-영각永覺원현元賢선사
* 영각 원현선사 : 중국 명나라 때의 고승.
* 《무량수경》에도 ①부처님의 지혜나 공덕을 의심하지만 염불수행은 계속하거나 ②자신이 금생(今生)에 선(善 )이 적고 악(惡)이 많은 것만 알고, 다생겁의 전생동안 자신이 쌓은 선근복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여 믿음을 일으키지 않고, 따라서 극락에 왕생하는 것에 의지가 굳건하지 않아 망설이고 일심으로 부처님께 의지하는 바가 없으되, 다만 염불수행을 계속한 사람들은 극락에 왕생하기 하지만 극락세계의 변두리에 있는 칠보성(七寶城)이라는 의성(疑城)에 속에 갇혀 5백세 동안 부처님을 뵙지도 못하고 설법을 듣지도 못하며 보살과 성문을 만날 수도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처소에 두루 돌아다니며 공양을 하지도 못하는데, 이들을 태생(胎生)이라고 한다 하였다.
* 인천(人天) : 육도(六道)중에서 인간계와 천상계를 아울러 일컫는 말.
「무슨 인연으로 모든 부처님을 염念하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라. 염불하는 자라면 이 사람은 바로 문수사리보살과 다르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제불세존들께서는 염불삼매에서 노니시는 것입니까.」
「수능엄삼매 등 모든 큰 삼매가 나오기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알라. 여러 불법에 들어가려면 방편이 정말 많지만, 만약 한 마디로 많은 방편문을 갖춘 것을 말한다면 염불보다 나은 것이 없느니라. 왜 그러한가. 일체 현성이 저마다 염불로부터 나오며, 일체지혜가 모두 염불로부터 있기 때문이니라.」
-천태대사〈五方便念佛門〉
*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는 「염불삼매를 성취하려면 오연(五緣)이 있으니, 첫째는 계행(戒行)을 지켜 범하지 마라. 둘째는 사견(邪見)을 일으키지 마라. 셋째는 아첨하며 교만하지 마라. 넷째는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성내며 원망하고 질투하지 마라. 다섯째는 용맹하고 굳세게 정진하라.」 라고 하였다.
* 천태 지자대사의 스승인 남악혜사(南岳慧思, 515~577)선사께서 임종할 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혜사 선사는 남악(南岳)에 들어가면서 제자들에게, “나는 이 산에서 딱 10년을 머물고 멀리 갈 것” 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과연 10년이 되자 선사께서는 입적을 예고하였다. 문도들을 모아놓고 여러 날 설법하며 간곡하게 가르쳤으나 제자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이에 “만일 신명을 아끼지 않고 항상 법화삼매와 염불삼매, 방등참법(方等懺法) 등을 닦는 이가 열 명만 있다면,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공급하면서 외호(外護)하리라. 하지만 이를 행할 이가 없다면 나는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끝내 응하는 이가 없자 휘장을 치고 입적하려 하였다. 영변(靈辯)이라는 제자가 자기도 모르게 곡을 하자 선사는 그를 꾸짖었다. “악마는 나가거라. 성인들이 영접하러 와서 다음 몸 받을 곳을 의논하고 있데 어찌하여 놀라게 하는가.” 하면서 단정히 합장하고 염불하면서 입적하였다. 안색은 살아있을 때와 똑같았고 묘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때는 태건(太建)9년(577) 6월 22일, 세수 63세요 법랍은 49년이었다. 선사는 생전에 대중들에게 늘 다음과 같이 훈시하였다. “도의 근원은 멀지 않고 성품의 바다는 아득하지 않다. 다만 자신을 향해 구할 것이지 남에게서 찾지 말라. 찾아도 얻지 못할 것이요, 얻는다면 참된 것이 아니다.”」
모든 수행문 중에 염불만한 것이 없다. 내가 과거 오랜 겁 중에 염불로 일체종지를 얻었느니라. 일체 모든 법과 반야바라밀다와 가지가지의 깊은 선정과 모든 부처님의 지혜가 모두 염불에서 나온다. 고로 염불은 모든 법의 왕임을 알라. 너는 마땅히 모든 법의 왕을 잊지 말지니라.
-문수보살
* 위 말씀은 중국 당나라의 법조(法照)대사께서 중국 오대산을 순례하고 있을 때, 문수보살을 뵈었는데, 이때 문수보살께서 법조대사께 하신 말씀이다.
* 〈대지도론〉에 「‘반야바라밀’ 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삼매는 오직 산란한 마음을 가다듬어 지혜를 이룰 수 있게 하지만, 모든 법의 실상(實相)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반야바라밀은 모든 법을 두루 관찰하고 실상을 분별하면서 일마다 통달하지 못함이 없고 일마다 성취하지 못함이 없나니, 이렇게 공덕이 크기 때문에 어머니라 한다. 만일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그 밖의 다섯 가지 일은 바라밀이라고 하지 못한다.
다섯 가지의 바라밀이 반야를 여의면 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한다. 다섯 가지 바라밀은 마치 소경과 같고, 반야바라밀은 잘 구운 병에 물을 담은 것과 같으며, 다섯 가지 바라밀은 마치 새에 두 날개가 없는 것과 같고, 반야바라밀은 마치 두 날개를 가진 새와 같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큰일을 성취할 수 있나니, 이 때문에 “모든 공덕과 소원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라고 하여 반야바라밀의 공덕을 찬탄하였다.
* 〈만선동귀집〉에 「보시하되 반야(般若)가 없다면 일세(一世)의 영화는 얻는다 하더라도 뒤에는 반드시 나머지 빚을 갚아야 하는 재앙에 이를 것이며, 계(戒)를 지니되 반야가 없으면 잠깐은 욕계(欲界)의 천상(天上)에 난다 하여도 보(報)가 다하면 도리어 윤회의 바퀴에 떨어지고 말 것이며, 인욕(忍辱)하되 반야가 없으면 형상이 단정한 보(報)는 얻는다 하더라도 적멸인(寂滅忍)은 마침내 증득하지 못할 것이며, 정진(精進)하되 반야가 없으면 한낱 생멸하는 공(功)만 일으키는지라, 진상(眞常)의 대해(大海)에는 나아가지 못하며, 선(禪)을 하되 반야가 없다면 다만 색계선(色界禪)을 행하는 것이어서 금강정(金剛定)에는 들지 못할 것이며, 또한 만선(萬善)을 행하되 반야가 없다면 헛되이 유루인(有漏因)만을 이루는지라 끝내 무위(無爲)의 과(果)에는 계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알라. 반야란 곧 험난한 길을 잘 인도해주는 길잡이요, 캄캄한 방 안을 밝혀주는 등불이며,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지혜 돛대요, 번뇌를 치료하는 어진 의사이며, 삿된 산을 무너뜨리는 큰 바람이요, 마군(魔軍)을 파멸하는 용맹한 장수며, 캄캄한 길을 비춰주는 햇빛이요, 혼혼(昏昏)한 업식(業識)을 놀라게 하는 번갯불이며, 우맹(愚盲)의 눈을 치료하는 금바늘이요, 갈애(渴愛)를 씻어주는 감로(甘露)이며, 어리석음의 그물을 잘라내는 지혜의 칼이며, 가능을 구제하는 보배 구슬이니, 이와 같이 반야를 밝히지 못하고서는 어떤 만행(萬行)이라 할지라도 한갓 허설(虛說)이 되고 만다.」 라고 하였다.
* 〈대지도론〉에 「무명(無明)이 바로 없어지면, 그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한다.」 라고 하였다.
* 부처님의 지혜는 공간적으로는 시방(十方)을 다하고, 시간적으로는 삼세(三世)를 다하는 완전하고 원만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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