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신심信心만 있다면 업을 지닌 채 절대 왕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악업을 소멸시키고 선업을 성취함으로써 선업을 많이 지니고 왕생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선업을 성취하고 원願을 타고 왕생하면 연꽃이 전륜성왕의 윤보輪寶만큼 크지만, 설사 선업이 아직 순수하지 못하여 연꽃이 좀 작더라도 좋습니다. 업은 소멸할 수 없습니다. 대소승의 교리를 막론하고 진정으로 업을 소멸하는 일은 없고, 단지 업의 전환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야 말론 정론正論입니다. -남회근 선생
* 〈불교수행입문강의〉에서 인용함.
일체의 모든 범부는 죄와 복이 많든 적든, 염불한 세월이 오래 되었든 얼마 되지 않았든, 길게는 백년 짧게는 하루에서 7일간 일심으로 오직 아미타불만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 절대 의심하지 말라. -선도화상
단지 오직 아미타불 한 부처님 명호만 불러도, 곧 모든 부처님 명호를 다 부르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공덕이 무량하여 아미타불을 부르면 능히 죄와 업장을 소멸시켜 정토에 왕생케 하니 꼭 의심을 해야 하겠는가. -경문慶文법사 〈정신법문正身法門〉
* 대주혜해(大珠慧海)선사께서 지은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서 「마음이 곧 부처라고 믿는 것을 ‘바른 믿음’ 이라고 하고, 마음 밖에서 법을 얻으려는 것을 ‘삿된 믿음’ 이라 한다. 그대로가 부처임을 철저히 밝혀 자기 마음으로 직접 맛보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바른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얼굴만 번듯하고 속은 어리석은 노름꾼 같은 이는 단지 말로만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고 떠들고 다닐 뿐이지 사실은 자기 마음도 모르고 있다. 이런 것을 삿된 믿음이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모든 중생들은 정각을 얻지 못하고 큰 꿈속에 있으면서 육도六道에 떴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일찍이 쉼이 없습니다. 천상天上은 비록 즐겁지만 업보가 다하면 형상이 쇠잔해지고, 아수라는 화를 잘 내어 전쟁을 일삼는 것을 뛰어난 것으로 여기며, 축생은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면서 음식을 다투고 서로 해칩니다.
귀신은 유명幽冥세계의 그늘에서 기갈飢渴에 곤핍을 당하고 있고, 지옥중생은 긴 밤에 고통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인간세계에 태어난 것이 실로 다행스럽긴 하지만, 생로병사의 온갖 고통이 얽어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방정토만은 어떤 고통도 없습니다. 연꽃줄기에 몸을 의탁하면 태어나는 고통이 없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지 않으므로 늙는 고통이 없으며, 수명이 무량하여 죽는 고통도 없습니다. 부모와 처자가 없어서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고통이 없고, 상선인上善人(등각보살을 말함)들이 모여 있으므로 원수와 미운 사람을 만나는 고통이 없습니다.
화계華禊와 향기로운 음식과 보배구슬을 수용하여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과 빈궁의 고통이 없으며, 육신이 공적空寂함을 관조하여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고통도 없습니다. 유정有情에게 자비의 은혜를 베풀어서 태어나고 싶으면 태어나지만, 적멸寂滅에 안주하지 않으므로 이승二乘의 경계가 아니며, 지혜로 생사를 관조하여 퇴전하지 않으므로 범부의 경계도 아닙니다. 만약 저 국토에 태어나면 모든 고뇌가 없는데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가히 애달프고 가여운 일입니다.
또한 훌륭한 선비들도 세 가지의 믿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왕생을 구하지 않으니 더욱 애석하고 탄식할 일입니다. 첫째 “나는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을 것이므로 정토는 족히 왕생할 곳이 아니다.” 하는 것이요, 둘째는 “곳곳이 정토이므로 꼭 서방정토에 왕생할 필요가 없다.” 하는 것이요, 셋째 “극락은 성역이어서 우리와 같은 범부의 무리는 왕생할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행과 지혜가 다함이 없는 보현보살도 아미타부처님의 국토를 보기를 원하셨고, 비록 공空의 이치를 알았지만 유마거사도 항상 정토의 업을 닦았으며, 시방의 여래께서 장광설長廣舌로 찬탄하셨고, 시방의 보살들도 다 같이 왕생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시험 삼아 모든 성인들과 비교해서 누가 나은지를 스스로 헤아려 보십시오.
그런데도 족히 왕생할 것이 없다 하니 무엇 때문에 자신을 속인다는 말입니까. 용맹스러운 조사祖師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능가경》에는 미리 수기授記를 주는 글이 있고, 세친보살도 근본종지로 가르쳤으며, 〈무량론〉에도 왕생하기를 구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저들은 모두 뛰어난 성인聖人인데도 서방에 왕생하려고 정진하였습니다. 반드시 왕생할 필요는 없다고 하니 어찌 그리 스스로 교만합니까.
《반주삼매경》에서 말하기를, 「발타화보살이 석가모니부처님께 ‘미래의 중생들이 어떻게 해야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습니까.’ 라고 청문하자, 부처님께서 ‘아미타불을 칭념하면 곧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으면 어떤 말을 믿을 수 있겠으며, 정토에 왕생하지 않으면 어느 국토에 왕생하겠습니까. 자신을 속이고 스스로 교만하여, 자신을 포기하고 청정한 대중을 버리면서 윤회의 세계에 들어가니, 이는 그 누구의 허물입니까.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 직지정토결의집 : 중국 송나라 왕고(王古)가 지은 책
* 연지대사가 지은 〈왕생집〉에 「송(宋) 왕고(王古)는 자(字)가 민중(敏仲)으로 동도(東都) 사람이다. 벼슬은 예부시랑(禮部侍郎)에 이르렀으며 자비한 마음으로 백성을 사랑하고 깊이 선종에 계합하였다. 또한 정토법문의 우수함을 깨달아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3권을 지어 평생 염불을 정근했으면, 염주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고, 일상생활에서 늘 서방정관(西方淨觀)으로 불사(佛事)를 삼았다. 어떤 스님이 정(定)에 들어 정토를 노닌 적이 있었는데, 왕고와 갈번(葛繁)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한다. 왕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부처님을 배움을 진정으로 말하면 부처님을 배움은 공(空)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겸허함입니다. 그 첫째 조건으로 먼저 겸허할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겸허하면 아만(我慢)을 없앱니다. 즉, 인아견(人我見)을 없애는 겁니다. 제가 만약 정말로 저 자신을 사람들의 스승이라고 여긴다면 수행이라 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저 자신은 이미 끝난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출가자들은 더욱 유의해야 합니다. 남들이 당신을 공경하는 것은 그가 복전(福田)을 (나를 공경함으로써) 배양(培養)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진흙으로써 그의 복전이 되어줍니다. 자신이 남의 공경을 받으면서, “나는 정말 천상과 인간 세계의 스승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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