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목(天目) 중봉(中峰)선사의 〈산방야화〉에는 「영명선사께서 자세하게 경전을 연구하고 한데 묶어서 변론해 놓은 것이 바로 종경록이다. 종경록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그 전개가 자유자재하고,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도의 근원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문자를 사용하여 도를 밝혀놓은 총지문(總持門)인 것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삼장(三藏)을 연구하는 교종의 학자들이 달마스님과 그 제자들을 불제자가 아니라고 비난하지 못하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 〈임간록(林間錄)〉에 보면 「영명 연수스님은 현수(賢首) · 자은(慈恩) · 천태(天台)의 3종(三宗)이 서로 얼음과 불같이 어울리지 못하여 불법의 완전한 뜻을 알지 못하기에, 문도(門徒) 가운데 종법(宗法) 대의에 정통한 자를 선발하여 양 누각에 머물게 하고, 많은 경전을 널리 읽혀가면서 서로 의문점을 토론하도록 하였다. 스님 자신은 심종(心宗)의 저울이 되어 그들을 공평하게 달아주었다. 또한 종경록은 대승경론(大乘經論) 60부와 인도, 중국의 어질고 명망 있는 스님 삼백 분의 말씀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증명하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백 권의 책으로 완성하여 세상에 전하면서 종경록(宗鏡錄)이라 이름 하였으니, 그 법보시의 이로움이란 참으로 크며 훌륭하다 하겠다. 오늘날 천하의 명산대찰에 그 책이 없는 곳이 없음에도 학인(學人)들은 죽을 때까지 한 차례도 펴보지 않은 채, 오로지 배불리 먹고 실컷 잠자며 근거 없는 말로 유희(遊戲)를 삼고 있으니, 그들을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라 하겠는가. (아니면) 부처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라 하겠는가.
아미타부처님 명호를 한 번 부르면 10년간 아침저녁으로 모든 부처님께 예불하고 생각한 공덕과 같으니라. -《금색미타경金色彌陀經》
* 정공법사는 「‘불佛’ 자(字)는 인도의 범어(梵語)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지혜’ ·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경이 한역(漢譯)될 당시 어째서 ‘지(智)’ · ‘각(覺)’ 으로 번역하지 않고 ‘불타(佛陀)’ 라는 음역을 차용(借用)하였을까요. 왜냐하면 불타가 내포하는 뜻이 무한무변(無限無邊)하여 중국의 어휘인 지(智) 또는 각(覺)으로는 그 의미를 완전히 포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佛)’은 본체로 말하면 지혜요, 작용으로 말하면 깨달음이 됩니다. 본체로 말하는 지혜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일체지(一切智)’입니다. 일체지란 현대철학의 용어로 풀이하면 우주 본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둘째 ‘도종지(道種智)’입니다.
여기서 종(種)이란 갖가지 대단히 많은 현상들을 지칭합니다. 우주의 현상은 그 종류가 무량무변합니다. 이같이 허다한 현상이 어떻게 생겨나고도 어디서 왔으며, 현상되는 과정은 어떠하고, 그 결과는 어떠한가. 이처럼 우주 만상(萬象)을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지혜를 ‘도종지’ 라 합니다. 셋째 ‘일체종지(一切種智)’입니다. 우주와 인생의 참 모습을 마침내 원만히 깨달아 털끝만큼의 미혹이나 오차도 없는, 그런 지혜를 ‘일체종지’ 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불은 이와 같은 삼종지(三種智)를 구족하셨기 때문에, 그 지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우주 전체와 인생의 참 모습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지혜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큰 깨달음[大覺]이라 하는데, 부처님께서 경에 설하신 깨달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깨닫는 것[自覺]이요, 둘째는 남을 도와 깨닫게 하는 것으로 이를 각타(覺他)라 합니다. 셋째는 원만히 깨닫는 것입니다. 소승교의 아라한(阿羅漢)이나 벽지불(碧支佛)은 스스로 깨달은 이로써 깨달은 후에 능동적으로 남을 도와 깨닫게 하려는 발심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경에서 종종 이러한 이를 소승인(小乘人)이라 일컫습니다.」 라고 하였다.
* 범어 Buddha를 음역한 것이 불타야(佛陀耶)이고, 이를 줄인 것이 불타(佛陀) 또는 불(佛)이다.
불(佛)이란 ‘깨달은 자(覺者)’ 또는 ‘각(覺)’을 뜻한다. 그런데 각(覺)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자각(自覺)/ 각타(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이 그것이다. 성문(聲聞)이나 벽지불은 자각만 원만하고, 보살은 자각은 물론 각타까지 원만하지만, 부처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원만한 존재이다. 자각(自覺)이란 자기 스스로만 깨닫는 것이고, 각타(覺他)란 자기 스스로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각해원만(覺行圓滿)이란 자각과 각타가 부족하거나 편벽하거나 걸림이 있지 않고 원만한 것을 말한다. 정공법사는 유교의 경전인 대학(大學)의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과 친하게 함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데 있다) 구절에서, 在明明德이 자각(自覺)에 해당되고, 在親民이 각타(覺他)이며, 在止於至善이 각행원만(覺行圓滿)이라고 하였다.
* 백장 해회선사의 〈백장록(白仗錄)〉에 「악(惡)에 부딪치는 대로 악에 머무르는 것을 ‘중생의 깨달음’ 이라 하고, 선(善)에 부딪치는 대로 선에 머무르는 것을 ‘성문의 깨달음’ 이라 하며, 선악(善惡)의 양쪽에 머물지 않음을 옳다고 여기는 자를 ‘이승(二乘)의 깨달음’ 또는 ‘벽지불의 깨달음’ 이라 한다. 선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음을 ‘보살의 깨달음’ 이라 한다. 또한 머물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 것이 없다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만 비로소 ‘부처님의 깨달음’ 이라 하니, 마치 ‘부처가 부처에 머물지 않아야 진실한 복전(福田)이라 이름 한다’ 고 한 것과 같은 이야기다.」 라고 하였다.
과거 부처님 현재 부처님이 한량없고 끝이 없으며, 사방四方과 더불어 상하에도 부처님이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모든 부처님들 중에서 특별히 아미타불을 칭찬하시고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높고 수승하시니 역시 희유希有합니다. 아미타불의 큰 위신력威神力과 공덕의 힘은 높고도 수승하여 비할 데 없습니다. 높고도 수승하여 비할 데 없습니다. -함허涵虛대사〈미타찬彌陀讚〉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들 중에 아미타부처님이 제일이다. 구품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그 위신력과 공덕이 끝이 없다. -《대아미타경》
* 《무량수경》에 법장비구의 48대원 중 제 17원이, 「만일 내가 부처 될 적에 시방세계 무량국토 중의 모든 부처님께서 나의 이름을 칭찬하고 찬탄하며 내 공덕과 국토가 훌륭하다고 설하시지 않는다면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다. 극락세계는 법장비구의 48대원이 모두 원만하게 성취된 불국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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