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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제 3편 게송음미(12)


 

장경혜릉(長慶慧稜)의 권렴견천게(捲簾見天偈)

 

* 장경혜릉 스님은 설봉대사의 제자입니다. 설봉의존(雪峰義存) 대사도 벽암록이나 무문관에 이 분의 공안 화두가 있을 정도로 위대한 분입니다. 또 설봉 스님의 제자 현사사비(玄沙師備)스님도 위대한 선지식입니다.

 

* 현사 스님한테 어느 스님이 “여하시불(如何是佛), 부처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진시방세계 시일과명주(盡十方世界 是一顆明珠)라”, 부처고 중생이고, 우주 만유가 바로 한 덩어리의 밝은 마니보주와 같은 보배구슬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분상에서 본다면, 온 세계 만법이 평등무차별한 영롱한 광명의 구슬과 같다는 말입니다. 어디에도 막힘이 없는 구슬과 같은 것이, 온 천지 사바세계요,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입니다.

 

* 현사 스님은 설봉스님 제자이므로, 장경혜릉 스님에게는 사형이 되므로, 사형한테 가서도 공부하고 또는 은사한테도 가서 공부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십 이년 동안에 무명베로 만든 좌복이 일곱 개나 떨어질 정도로, 일심정념으로 정진했습니다. 그랬어도 공부가 안 트이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 몹시 고생도 하고, 여러모로 자기를 매질도 하고 심각한 고행을 했겠지요.

 

그러나 십 이년 동안이나 공부를 했으니까, 무던히 공부가 익었겠지요. 그러다가 십 이년이 다 되는 여름이었던가, 선방에서 발을 획 젖히고서 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산천경계가 훤히 열려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발을 들고 산천경계를 볼 때에, 활연 대오를 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때에 읊은 게송입니다.

 

* 크게 차이 있구나! 크게 차이 있구나!

드린 발을 걷고서 천하경계 바라보니!

어느 누가 나에게 깨달은바 묻는다면

불자 들고 입을 쳐 말을 막아 버리리.

 

也大差矣也大差矣

捲起簾來見天下

有人問我解我宗

拈起拂子劈口打

-長慶慧稜-

 

* 크게 차이가 있구나! 크게 차이가 있구나, 범부로 있을 때에 느끼던 자기 경계와 활연 대오(豁然大悟)한 경계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환희 충만한 심경입니다. “견성오도해도, 약간 더 알고 마음이 시원하겠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사소한 차이가 아닙니다. 십 이년 동안에 좌복을 일곱 개나 떨어뜨리면서 공부를 하다가, 발을 걷고서 바깥 하늘을 바라볼 때에 활연 대오하여 깨달아 버렸는데, 깨닫기 전의 범부경계와 깨달은 성자의 경계는, 참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임을 감탄하는 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무슨 종지를 깨달았는가? 묻는다고 하면, 염기불자 하여, 총채와 같은 불자를 들어서 벽구타라, 그 입을 때려서 쪼개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공부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사무친 마음이 있었겠지요. 몇 번 죽으려고도 해보았을 것이고, 겨우 가까스로 깨달은 것이며 깨달은 종지란, 말도 상도 여읜 것인데, 그냥 말 몇 마디로 쉽게 알려고 묻는다면 괘씸하기도 하겠지요.

 

* 보통,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냥 말로만 알려고 애씁니다. 많은 말을 않더라도,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주문이면 주문으로 오로지 공부하고 계행 지키고 닦아나가면 원래 부처인지라 부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말로만 알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과거 조사 스님이나 도인들은 너무 세밀한 너절한 말을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다 스스로 공부를 시키기 위해 그러는 것입니다. 결국은 참구자득(參究自得)이라, 참구해서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경계를 묻는다면, 불자를 들어서 그 입아귀를 부수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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