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러한 말을 잘 지녀야 하느니라. 이러한 말 이란 다름이 아닌 바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지니는 일이니라.」
* 고덕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많은 공덕을 쌓은 고로 마침내 부처님 이름을 원만히 이루셨으므로, 부처님의 뛰어난 공덕이 부처님 이름 속에 들어가 있다. 중생이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부처님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는다.」 라고 하였다.
* 연지대사는 〈미타소초〉에서 「‘아미타’는 범어다. 이는 ‘무량(無量)’을 말한다. 아미타불은 공덕과 지혜와 신상(身相)과 광명 등 일체 모든 것이 다 무량하기 때문이다. 아미타불께서 과거 인지(因地)중에 법장비구로 계실 때, 48원을 발하여 지금 서방정토에서 염불하는 사람들이 정토로 돌아가도록 이끌고 계신다. 고로 석가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아미타불을 널리 드날리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제가 부처가 될 때, 시방의 중생들이 일심으로 나의 명호를 부르며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면, 그가 임종할 때 제가 모든 보살대중들과 함께 그의 앞에 나타나 그를 마중하는데, 잠깐 사이에 즉시 나의 국토에 태어나 아비발치보살이 될 것입니다. -《무량수경》
* 아비발치(阿毘跋致) : 불퇴(不退) ∙ 불퇴전(不退轉)의 뜻. 아유월치(阿惟越致)라고도 한다. 보살의 지위에서 다시는 물러나지(미끄러지지) 않는 지위다. 보살8지에 이르러야 아비발치보살이라 부른다. 보살8지(8지 보살)을 부동지(不動地)라 한다. 아비발치 보살이 되어야 격음(膈陰), 즉 윤회속으로 다시들어가도 퇴전하지 않는다. 아비발치 보살의 지위에 이르러야 믿음이 금강석처럼 견고하고 공덕이 원만해지며 밀종을 배울 자격이 있다. 원효대사는 8지보살의 화신이라고 전한다. 염불수행을 하여 극락에 왕생하면(설사 下下品으로 왕생하더라도) 아비발치 보살의 지위에 오른다. 그래서 염불법문을 ‘믿기 어려운 법’ 이라 하는 것이다.
5) 능엄경에 보이는 염불
대세지법왕자께서 서방정토에서 같이 온 52보살과 더불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를 올리고 말씀드리되, 「제가 기억하옵건대, 과거 항하사겁 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셨는데, 그 부처님의 이름을 ‘무량광無量光’이라 하셨습니다. 열두 분의 무량광 부처님이 일 겁씩 이어 오셨고, 최후의 부처님이 초일월광불이신데, 그 부처님이 저에게 염불삼매念佛三昧를 가르쳐 주시되, “비유하자면, 한 사람은 오로지 만날 생각만 하는데, 한 사람은 오로지 잊어버리기만 한다면, 이 두 사람은 만나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보더라도 보지 못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생각하여 두 사람의 생각이 깊어진다면, 이 두 사람은 세세생생토록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시방세계의 여래께서는 중생을 가엽게 여기시길 마치 어머니가 자식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식이 어머니로부터 도망쳐 달아난다면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자식이 어머니 생각하길 어머니가 자식 생각하듯 한다면, 어머니와 자식은 여러 생을 지내면서도 서로 어긋나거나 멀어지지 않는다. 중생이 마음으로 항상 부처님을 잊지 않고 생각하면, 금생이나 내생에 반드시 결정코 부처님을 뵐 것이며, 부처님과 멀리 떨어지지 않으며, 방편을 빌리지 않고도 자연히 마음이 열릴 것이다. 이는 마치 향을 만드는 사람의 몸에 향기가 배는 것과 같다. 이것을 일러 향광장엄香光莊嚴이라 한다.” 고 하셨습니다.
저는 인지因地에서 염불심念佛心으로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어갔나이다. 저는 지금 이 사바세계에서 염불하는 이들을 모두 거두어 서방정토로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에게 원통圓通의 방법을 물으시매, 저는 아무런 선택이 없고, 오로지 육근六根을 모두 거두어들여 정념淨念이 서로 이어져서 삼매를 얻는 것이 제일이나이다.」
-《능엄경楞嚴經》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大勢至菩薩念佛圓通章
* 정토법문에서 굉장히 중요한 경전이 《능엄경》인데, 《능엄경》중에서도 위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이다. 글자 수는 비록 적지만, 정토법문의 진수를 남김없이 보여주는 귀중한 말씀이다.
* 정공법사는 「능엄경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은 능엄경의 정화(精華)이다. 이 장(章)은 아주 짧아서 24자에 불과하지만, 이는 실제로 정토종의 심경(心經)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대장교(一大藏敎)의 심경(心經)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능엄경은 정토법문을 모르는 자가 읽으면 정토법문을 파괴하는 일등공신이 되고, 반대로 정토법문을 아는 자가 읽으면 정토법문을 크게 떨치는 훌륭한 전도자가 된다오. 능엄경 대세지보살염불원통장은 정토의 종지(宗旨)를 펼쳐 보여 주는 최상의 법문이오.」 라고 하여 《능엄경》을 정토5경에 편입시켰다.
* 위 경문(經文)에서 보듯이, 부처님은 마치 부모와 같아서 늘 자식을 생각하시고 그리워하시는데, 자식인 중생은 부모인 부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 도망쳐버린다. 이에 대해 고덕께서는 「첫째, 부처님은 오로지 중생을 늘 기억하여 잊지 않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다. 하나는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원(願)을 갖추셨기에 일체의 중생을 관견(觀見)하시기를, “부처와 중생은 본래 한 몸이다. 나는 이제 이미 정각을 이루었고 이미 열반을 얻었는데, 중생은 오히려 윤회 속에 있어 생사(生死)를 마치지 못하는구나.
고로 부처는 대비(大悲)의 원(願)을 움직여 오직 중생만을 그리워하노라.” 둘째 부처님은 평등심을 갖추셨기 때문에, 인지(因地)에서 보살도를 행하실 때, 오히려 생각 생각마다 중생을 버리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성불하신 지금은 어떠하겠는가. 대지(大地)에 있는 중생들을 보시고는 모두 한 자식처럼 여기시기 때문에 평등심으로 오직 중생만을 그리워하신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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