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67)


 

* 담란법사는 〈왕생론주〉에서 「是心作佛은 마음이 능히 부처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요, 是心是佛은 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자신이 정토를 닦는다고 해서 선종과 밀종을 비판하는데, 선종과 밀종 역시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남을 비방한다면, 그것은 법을 비방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선종과 밀종을 수학하여 성취한 사람은 대단히 많다. 만약 남을 비방한다면, 이는 스님들을 비방하는 것이다. 삼보를 비방하면 마음이 청정하지 않거늘,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는가. 불제자가 수학하는 태도는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53인의 대선지식을 찾아다닐 적에 자신을 낮추고 남을 찬탄한 태도를 배워야 한다.」 라고 하였다.

 

* 옛 고덕께서는 「보살을 비난하거나 나쁜 말을 하는 것이 삼계(三界)의 중생들을 모두 죽이는 것보다 더 무겁다.」 라고 하였다.

 

* 광덕스님은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그럼 무엇을 깨달으라는 말인가. 나 자신이 불(佛)이라는, 완전자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깨달으면 어떠한가. 불(佛)밖에 없게 된다. 불(佛)밖에 없을 때는 어떠한가. 불(佛)도 없고 중생도 없고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고, 불(佛)이 중생이고 중생이 불(佛)인 대자유가 현전(現前)한다.」 라고 하였다.

 

* 황벽 희운선사는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이 한마음 그대로가 부처일 뿐이니, 부처와 중생이 새삼스레 다를 바가 없다. 중생은 다만 모양에 집착하여 밖에서 구하므로, 구하면 구할수록 점점 더 잃는 것이다. 부처에게 부처를 찾게 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붙잡는다면, 겁(劫)이 지나고 몸이 다하더라도 바라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마음을 쉬고 생각을 잊어버리면 부처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서방세계와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등은 모두 자성(自性)이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다. 유심(唯心)이 정토이며, 자성이 미타(彌陀)이다. 내가 내 자신을 변화시켜 나타난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데, 무슨 장애가 있겠는가. 우리들은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이 우리들의 자성이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며, 자신의 마음에는 본래 극락이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부르고 서방극락세계의 의정(依正)장엄을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자성(自性)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정토(淨土)와 예토(穢土)는 모두 자성이 변화하여 나타난 것으로,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은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온 허공계와 온 법계가 모두 자성(自性)이 변화하여 나타난 것이다.」 라고 하였다.

 

* 정목스님은 「정토삼부경 가운데 ‘이 마음이 부처다.’ 라고 하는 말씀은 시대를 초월한 법문입니다. 혹자는 이 是心作佛 是心是佛을 들어 마음이 부처이므로 따로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법문에서 말하는 ‘이 마음’은 믿음을 일으키지 않은 중생의 마음이 아니라, 중생이 부처님의 지혜를 믿고 저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 부처를 향한 실천을 행할 때 비로소 ‘이 마음이 부처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이 불성(佛性)이 있다고 말하지만, 불성은 실체로써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를 짓는 이 마음은 바로 신심입니다. 신심(信心)이 곧 불성(佛性)입니다.」 라고 하였다.

 

* 청화스님은 「관무량수경의 ‘是心作佛 是心是佛’ 이라는 이 말씀이 팔만사천법문을 모두 다 포섭해 있습니다.」

 

* 중국 양(梁)나라 무제 때의 부대사(傅大士)의 유명한 게송을 소개한다.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참께 일어나네. 앉으나 서나 늘 따라 다니고 말할 때나 안 할 때나 함께 있으며 털끝만치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몸에 그림자 따르듯 하는구나. 부처가 간 곳 알고자 하는가. 단지 이 말소리 나는 곳이 부처로세.」

 

* 우익대사의 〈아미타경요해〉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다.

문 : “마음이 부처를 만든 것이고, 부처가 마음이라면, 왜 우리 자신의 부처님을 최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왜 다른 부처님들께서는 아미타불이 더 좋다고 하는가.”

답 : “정토의 가르침은 모두 아미타불이 바로 우리 자신의 불성이고 우리의 마음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오해하여 부처님을 ‘남’ 이라고 부른다면 미혹한 견해의 한 형태에 떨어진다. 또 만약 우리가 자신의 부처님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 또한 다른 형태의 미혹한 견해이다.”

 

* 청화스님은 자성(自性)은 불성(佛性) 또는 법성(法性)과 같다고 하였다.

 

* 청화스님은 「부처는 모든 번뇌를 끊고 위없는 진리를 깨달아 다른 중생들도 깨닫게 하는 이를 말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석가모니불을 말하고, 이상적으로는 우주만유의 실상(實相)인 법신불(法身佛), 곧 영생불멸의 부처를 말하며, 정토법문에서는 아미타불을 말하고, 주관적으로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是心是佛 곧 자성불(自性佛)을 말합니다.」 라고 하였다.

 

* 여래 응공 정변지 : 부처님을 비슷한 말로 세 번 중복해서 나열한 것이다. 《법화경》이나 《약사경》이나 《열반경》 등 수많은 경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른 부처님을 소개하실 때, 흔히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불, 세존 이라고 길게 나열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래십호(如來十號)‘인데,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 등을 다른 표현으로 길게 나열한 것이다.

 

* 정변지(正遍知) : 여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갖추어 일체법(一切法)과 제법실상(諸法實相)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음.

 

* 32상 80수형호 : 부처님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의 몸에 갖추어져 있는 거룩한 용모와 형상 중에서, 특히 현저하게 뛰어난 서른두 가지를 32상(相)이라 하고, 32상을 다시 세밀하게 나누어 놓은 80가지를 80종호(種好) 또는 80수형호(隨形好)라고 한다. 상(相)과 종호(種好)를 합쳐 상호(相好)라고 한다.

 

* 불교에서는 ‘마음이 곧 부처이다.’, 또는 ‘마음밖에 부처가 없다.’ 또는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라고 한다. 이때의 마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때의 마음은 우리의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말하는 것이지, 중생의 생멸심(生滅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염불수행자료 > 염불수행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정토법문(69)  (0) 2016.06.16
6. 정토법문(68)  (0) 2016.06.09
6. 정토법문(66)  (0) 2016.05.27
6. 정토법문(65)  (0) 2016.05.20
6. 정토법문(64)   (0) 2016.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