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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4. 금강륜

* 1985년7월31일 태안사 하계용맹정진 입제법문(4)


* 1985년8월1일 태안사 하계용맹정진 2일째

 

 

1.태안사용맹정진법회.zip

 

법계정인(法界定印)

 

이것이 ‘법계정인(法界定印)’이라, 법계(法界)라는 것은 불교에서 우주(宇宙) 전체(全體)를 말합니다. 우주전체의 삼매(三昧)<주 : 우주와 하나가 되는 삼매>에 드는 상징(象徵) 이것이 법계정인입니다. 부처님 불상(佛像)을 보면 인계(印契), 즉, 여러 가지상징(象徵)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무외시인(無畏施印)이라, 없을무(無)자, 두려울외(畏)자, 배풀시(施)자, 우리 중생의 두려움을 없게 하는 보시(布施)의 상징입니다.

 

이 손은 항마인(降魔印)입니다. 석굴암(石窟庵) 부처님이나,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보리수하(菩提樹下)에서 성도(成道)하실 때는 성도인(成道印)이라, 손을 이렇게 해서 합니다. 이것은 마구니를 항복(降伏)시키는 상징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 모양하나하나가 상징적인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가부좌하는 좌선 모습으로 해서 법계정인(法界定印)이라, 법계는 우주를 말하는 것인데, 우주를 관조(觀照)하는 상징적인 것이 이것입니다. 따라서 우주(宇宙)를 관조(觀照)하는데 있어서 가장 알맞은 모습이 이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음양이 잘 조화가 되고, 또 좌선할 때에 제일 빠르게 우리 불성(佛性)을 계발(啓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앉도록 하고, 그 다음에는 허리를 쭉 펴야합니다. 너무 펴면 또 긴장이 되어서 안 되는 것이니까. 너무 펴지 말고, 어깨의 힘을 풀고, 가만히 무리 없게 허리를 펴야 합니다. 요는 우리 호흡이 조금도 무리 없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하면 호흡이 무리 없이 안 됩니다. 따라서 무리 없이 하기 위하여 허리를 너무 펴도 못쓰고, 앞으로 너무 숙여도 못씁니다. 허나 약간 앞으로 숙일 정도로 허리를 편단 말입니다. 그래야 만이 상하(上下) 호흡(呼吸)이 잘 상통(相通)합니다.

 

 

그리고 우리 목은 백회(百會) 정수리로 해서 하늘을 찌를 만치 쭉 세웁니다. 지금 아까 좌선하는 분들을 보니까, 고개를 숙이고 꾸벅 꾸벅 조시는 분도 많이 계십니다만 실은 아까 시간이 가장 졸리기가 쉬운 때입니다. 공양(供養)을 하신 후이고, 배는 좀 부르고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고개는 쭉 펴야 합니다. 고개를 쭉 펴서 반드시 보고 해야 만이 혼침이 덜합니다.

 

이렇게 숙이고 하면 아무리 배길려고 해도 못 버티고 꾸벅 꾸벅하기가 쉽습니다. 대개 혼침 많으신 분을 보면 아래로 숙이는 버릇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버릇은 안 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혼침(惛沈)이 덜 온단 말입니다.

 

2대원수 혼침(惛沈)과 도거(掉擧)

 

흐리멍덩하게 혼침하는, 우리 좌선의 원수가 무엇인가 하면, 2대 원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별시비하고, 또 하나는 꾸벅 꾸벅하는 혼침입니다. 이것을 조복(調伏)해야만 우리는 우리 자성(自性), 본래 불성(佛性) 한데로 간다 말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못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꾸벅 꾸벅하는 졸음과 분별시비 하면서 갖다 왔다하는 생각을 우리가 없애야 한다 말입니다. 그 눈 모습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눈은 너무 많이 뜨면 시계가 넓어서 많은 것이 보여서 분별이 오기 쉽습니다. 너무 뜨지도 말고, 절에 가서 부처님 불상을 보면 실눈으로 해서 감은 듯 뜨는 듯하게 봅니다.

 

불교용어로 하면 반폐반개(半閉半開)라 합니다. 반은 감은 듯 반은 뜬 듯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고, 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금니는 딱 다물고서 입은 다물어야 합니다. 어금니를 다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초보일 때는 선율(禪律), 선의 리듬이 아직 오르지 않을 때는 몰라도, 선이 상당히 오를 때는 전류(電流)가 몸에 쩌르르 흐릅니다.

 

우리가 보통 막 시작할 때는 오염이 깊어 놔서 전류를 미쳐 못 느낍니다만 깊어지면 전율(戰慄)를 느낍니다. 그때 그것이 지나치면 몸이 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어금니를 안 다물면 자칫하면 이가 틀어지기도 하고 입이 틀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좌선법(坐禪法)을 잘 몰라서 병신(病身)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우리가 어금니를 딱 무는 것입니다. 몸이 떨린다 해도 동요가 없게 말입니다.

 

그리고 혓바닥은 윗잇몸에 딱 붙입니다. 그래야 마음도 긴장이 되고, 또는 침도 함부로 왔다갔다 하지 않습니다. 입은 다물어서 어금니를 딱 물고 또 우리 혀는 혀끝을 입천장에 붙입니다.이렇게 해서 자세를 잡는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호흡(呼吸)문제입니다. 앞서 지난시간에 말씀한 이것은 조심법(調心法)으로 우리 마음 자세를 영원(永遠)의 이미지, 영원의 영상을 지녀야 한다고 주로 말했는데, 참선 이것은 구별해 보면 3단계가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몸을 다스리는 조신법(調身法)이라, 우리 몸을 조화시키는 조신법이란 말입니다. 고르조(調)자, 몸신신(身)자, 법법(法)자, 방금 제가 말한 것은 주로 우리 몸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조식법(調息法)

 

그 다음 문제는 조식법(調息法)이라, 숨쉴식(息)자 말입니다. 우리 호흡 조절 문제란 말입니다. 호흡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처님 초기 경전을 보면 수행자(修行者)의 2대 행법으로 부정관(不淨觀)과 호흡관(呼吸觀). 이렇게 2 가지가 있습니다. 부처님 근본 불교에서 여러 가지 행법이 많이 있습니다만 수행자의 2대 행법은 부정관과 호흡법이란 말씀입니다. 호흡관(呼吸觀)은 수식관(數息觀)과 같은 뜻인데, 부정관(不淨觀)은 아니불(不)자. 맑은정(淨)자, 자기 몸이 더럽다고 하는, 자기 몸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그러한 행법(行法)이 바로 부정관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내 몸이 중요하다는 것에서 부터 번뇌(煩惱)가 나옵니다. ‘나’라는 생각, ‘나’라는 아상(我相)은 내가 중요하다 그 마음이나 똑 같습니다.

 

부정관(不淨觀)

 

그러나 내 몸은 좋은 것이 별로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과 만나기전에 과거 무명(無明)의 업(業)입니다. 부모와 만나기 전은 하나의 혈육(血肉)이라 그때는 무명의 번뇌 뭉치입니다. 번뇌 뭉치가 파장(波長)이 맞아서 어쩌다 부모와 만났다 말입니다.

 

중음계(中陰界)에서 헤매는 하나의 무명심(無明心)이 부모의 연(緣)을 만나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배속에서는 참말로 그 몸속이 얼마나 더러운 것 입니까? 무명의 뭉치가 파장이 맞아서 어머니 배속에 들어가서 10개월 동안 더러운 곳에서 산다 말입니다. 우리 몸을 한번 해부(解剖)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똥. 오줌, 침, 또는 고름, 피, 얼마나 더러운 것입니까? 다만 그게 껍질로 입혔으니까 예쁘다 밉다 합니다.

 

냉정히 본다고 할것 같으면 사람 몸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不淨)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모두가 더러운 것뿐입니다. 단 몇 칠만 목욕 안 해 보십시오. 냄새가 얼마나 풍기는가. 따라서 부처님법문은 자칫하면 염세관(厭世觀)도 같지만, 그렇다고 염세관은 아닙니다. 아무튼 사람 몸을 정직하게 우리가 본다면 사실은 무척 더러운 것입니다.

 

물론 과거세(過去世)의 우리 업식(業識), 업 덩어리, 그 근본은 똑같이 불성(佛性)이겠지요. 가장 근본은 불성 일망정, 그런 불성이 차근차근 헤매는 가운데서 그때는 업(業)을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업이 부모 연(緣)을 만나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어머니 배속이 더럽고, 나서도 피. 고름. 오줌. 똥. 또는 모두가 해부해 놓고 보면 더러운 것뿐입니다. 이런 것이 모여서 사람 몸이 됐습니다. 좋다고 뽐내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냉정하게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이 부정관(不淨觀)입니다.

 

중생(衆生)의 죄악(罪惡)은 보통은 다 내 몸이 중요하다. 내 것이 제일이다. 이 몸이 아까운데서 보통 죄악이 싹터 옵니다. 따라서 우선 그것을 부정(不正)하기 위해서 부정관(不淨觀)을 합니다.

 

호흡관(呼吸觀)

 

호흡(呼吸)과 우리 마음은 상응(相應)합니다. 마음이 거칠면 호흡 거칠고, 호흡이 고요하면 마음도 고요 합니다. 본래 주인(主人)은 마음이지만은 호흡은 거기에 같이 상응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마음 다스리기는 어렵지만 호흡은 약간 해보면 되는 것 인지라, 마음 다스리기 어려운 분들은 호흡으로 해서 마음을 다스려갑니다. 호흡을 고요하게고요하게 다스리는 게 조식법입니다.

 

호흡법만 가지고서 하나의 경전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호흡법을 중요시 합니다. 혜명경(慧命經)이라는 경전을 보면 혜명경이 아주 복잡한데 호흡법만 주로 말씀이 있습니다. 또는 우리 스님들 가운데서 호흡법만해서 불교의 정통이 여기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호흡법은 중요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음 다스리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허나 우리 호흡은 약간만 하면 할 수가 있으니까 그것으로 해서 간단 말입니다.

 

외도(外道)와 정도(正道)

 

따라서 우리는 비록 그렇더라도 역시 주인은 우리 마음입니다. 외도(外道)와 정도(正道)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외도는 삿된 견해를 갖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주가 아니라 모양을 주로 합니다. 외도는 항상 마음을 주로 않고서 바로 보면 일체는 마음이 근원인데, 마음이 주인인데, 외도는 마음을 주로 않고서 모양을 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불도(佛道)는 마음을 주로 합니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단좌정심(端坐淨心:身端攝心)하면 기식조화(氣息調和)라. 단정히 앉아서 바른 마음 하면 자연적으로 우리 호흡은 조화된다는 말입니다. 바로 앉고서 마음 바르게 하면 절로 호흡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 안되니까 쉽게 하기위해 호흡을 가미하면 좋겠지요. 허나 외도 모양으로 그냥 마음은 저만치 하고서 호흡만 주로 하려하면 그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현대는 복잡하고 병고도 심하고 또는 여러가지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많아서 이런 때는 호흡을 가미하면 좋습니다.

 

어찌 그런고 하면 우리 생리(生理)가 보통은 조화스럽게 못되 있고, 우리 생리가 굉장히 어긋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더러는 이상생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때는 우리 생리를 바로 잡음으로 해서 우리 마음도 따라서 병행해서 바로 잡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와 같은 이런 때는 호흡법의 훈련이 상당히 필요한 것입니다.

 

가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음성을 들어보면 음성이 가슴 위에서 짹짹 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랫배에 가서 힘이 없습니다. 아래하체에 힘이 없으면 오랫동안 앉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또 공부를 해도 근기가 없어서 오랫동안 배겨내지를 못합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이런 분도 오랫동안 좌선(坐禪)하고 바른 마음을 먹으면 아랫배에 힘이 가겠지만은 이런 힘을 보다 더 가속도(加速度)로 빨리 가게하기 위해서는 호흡법을 가미(加味)합니다. 그러면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우리의 혈액순환(血液循環)이 완전히 조화가 되어야 하는데, 조화가 되기 위해서는 아래에 힘이 충만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우리 몸에 있는 서늘한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다슨 뜨거운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아무리 좌선을 많이 했다하더라도 열기가 올라가서 눈이 뻘겋거나, 이런 데가 아파서 상기(上氣)가 된 분들은 참선을 잘못한 분입니다. 착 들어앉으면 가슴도 시원하고 눈도 머리도 시원스러워야 합니다.

 

그때는 꾸벅꾸벅한 혼침도 올라야 올수가 없고, 또한 동시에 분별 시비도, 마음이 상쾌하지 않으니까 분별 시비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개운해 보십시오. 그때는 그것이 재미있어 분별 시비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마음이, 우리 몸이 수기(水氣)가 올라가서 개운하고, 화기(火氣)가 내려가서 아래에 힘이 딱 차고, 이러면 그런 쾌적한 기분 때문에, 그런 하나의 경안(輕安)이라,

 

경안(輕安)과 희락(喜樂)와야 바른 참선

 

우리 공부 하는 분들은 외워 두십시오. 자기 몸과 마음도 가뿐한 것이 경안이란 말입니다. 가벼울경(輕)자. 편안할안(安)자, 경안이 되어야 공부를 좀 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그 때는 가뿐하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몸도 마음도 이젠 부담이 없다는 말입니다. 경안이라, 공부를 바로하면 경안이 분명히 옵니다. 경안이 안 오면 그때는 어딘가는 공부를 잘못한 것입니다.

 

마치 자기 몸이 이렇게 한 터럭 위에 서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몸이 아무런 부담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안 다음에는 ‘희락(喜樂)’이라, 경안이 온 다음은 영원의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아무튼 그 호흡법(呼吸法)을 꼭 해야 하는 것인데, 호흡법 하는 것은 상하(上下)의 조화(調和), 음양(陰陽)의 조화(調和), 자기 호흡에 대해서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말입니다. 그래야만 그때는 몸도 개운하고, 마음도 개운하고 또한 동시에 공부가 진전되어 간단 말입니다.

 

불경(佛經)에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후개통(咽喉開通) 획감로미(獲甘露味)’라. 목 구멍이 툭 틔어서, 획감로미(獲甘露味)라, 그때는 감로(甘露)의 맛을 맛본다는 뜻입니다. 목이 뚝 튀어야 합니다. 그때는 자기 호흡이 전신(全身)을 뱅뱅 돌아서 아무 무리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 드디어는 자기 호흡을 자기가 못 느껴야 합니다. 자기 호흡을 자기가 못 느끼는 정도가 되어야 자기가 자기 몸에 대해서 부담이 없단 말입니다.

 

어떤 경우도 내 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부심(自負心)이 생깁니다. 사실은 그것이 어렵겠습니다만 아무튼 자부심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음 자세, 마음 자세로서 화두(話頭)나 염불(念佛)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나의 문제를 들지만은 그와 동시에 호흡법도 가미하면 좋습니다.

 

심장세균(深長細均)

 

가미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가?

이것은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합니다만 우선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호흡을 깊게 숨을 쉬고, 또는 길게 쉬고, 또는 가늘고 고르게, 그것만 주의를 하면 그때는 절로 호흡이 잘 되어 갑니다.

 

한문투로는 ‘심장세균(深長細均)’이란 말입니다. 깊을심(深)자 호흡은 깊게, 길장(長)자 호흡을 길게 말입니다. 가늘세(細)자 호흡을 가늘게, 고를균(均)자 호흡을 고르게, 이와 같이 깊고, 길고, 가늘고, 고르게 호흡을 하면 절로 아랫배에 힘이 찹니다.

 

이렇게 하는 데 있어서는, 화두를 드는 분들은 화두하는, 의심하는 그것과 호흡을 맞추면 되겠지요. 염불하면 염불하는 그 음조(音調)와 호흡을 맞추면 되겠죠. 억지로 맞추려 할 때 거북하면 그때는 안 맞추면 되고 말입니다. 아무튼 공부를 오랫동안 해보면 자기한테 맞는 요령이 딱 생깁니다.

어느 분들은 우선 말로만 다하려고 합니다만 그것은 안 됩니다. 갑은 갑대로 박가는 박가대로 오랫동안 공부해보면 자기한테 맞는 방법이 생겨납니다. 자기한테 맞는 방법을 자기가 공부해서 자기 스스로 얻어야 합니다. 남들은 그 사람한데 맞는 법을 다 말을 못합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아까 서두에 말한 것과 같이 지관타좌(只管打坐), 오로지 앉아라. 그러면 심신탈락(心身脫落)한다 말입니다. 몸과 마음의 오염(汚染)이 딱 빠져서 참다운 자성(自性) 기운이 차근차근 빛나옵니다.

 

좌선하는 이상적(理想的)인 모양은 ‘정소슬로(頂巢膝蘆)’라, 이마정(頂)자, 집소(巢)자, 무릎슬(膝)자, 갈대로(蘆)자, 이마 위의 새집이 정소(頂巢), 아래 땅에서 솟아올라 무릎을 뚫어 오르는 갈대, 이것이 슬로(膝蘆)입니다. 숲속에서 공부 할 때, 좌선 할 때, 앉는 그 모습이 하도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으니까 까치가 잘못 알고 머리에다 집을 짓습니다. 그런 정도로 오랫동안 참고 고요하게 앉아야 하고,

 

또는 아래서 솟아오르는 갈대가 자기 허벅지를 뚫더라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럴 정도로 좌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좌선의 만상이라, 이것이 이상형(理想型)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과거에 공부할 때는 그와 같이 했다는 것입니다. 정소슬로(頂巢膝蘆)라, 새가 머리에 집을 짓고, 갈대가 솟아 올라와 무릎을 뚫는 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은 너무나 안이(安易)하게 도(道)를 구하려고 합니다. 요샛말로 안락의자(安樂椅子)에 앉아서 도를 구하려고 합니다. 이래서는 구(求)할 수가 없습니다.

 

역시 우리는 오욕(五欲)을 어느 정도는 억제해야 하기 때문에 꼭 고행(苦行)이 필요합니다. 음식 함부로 먹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가령 참선(參禪)할 때 고기를 많이 먹어보십시오. 느끼한 언짢은 기분 때문에 좀처럼 호흡도 바로 안 되고 마음도 맑아지지 않습니다. 지방분(脂肪分)이 많은 사람들은 참선을 잘 못합니다.

 

우리는 좌선할 때에는 꼭 음식을 주의해서 너무 많이 먹지 말고, 너무 배고프지 말고,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약간 배고플 정도로 먹어야만이 우리 호흡이 조화가 잘 되서 수기(水氣)가 올라오고 화기(火氣)가 내려갑니다. 많이 먹어보십시오. 아래 기운(氣運)이 위로 못가고, 윗 기운이 아래로 못갑니다. 그러면 숨만 헐떡거립니다. 좌선할 때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그때는 원수(怨讐)입니다.

 

따라서 성불(成佛)의 가장 지름길이 참선(參禪)이고, 참선하는 제일 좋은 모습이 좌선(坐禪)인데, 좌선할 때는 그와 같이 여러가지 금지(禁止) 사항이 붙습니다.

 

오행(五行)

 

음식을 바로 먹어야 쓰고, 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중국(中國)의 천태지의(天台智顗)선사 그분이 공부하는 25방편을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맨 첨에 오행(五行)이라, 하나의 지계청정(持戒淸淨)이라. 계행이 안 바르면 좌선을 바로 깊이 못 들어갑니다. 나가서 함부로 싸움하고 좌선이 되겠습니까? 음탕한 짓, 욕설, 술, 그런 행동을 해서는 좌선에 못 들어갑니다. 자기 마음에 꺼림이 없어야만 좌선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먼저 계행이 앞서야 합니다.

 

지계청정(持戒淸淨)이라 이것이 처음이고, 그 다음은 한거정처(閑居靜處)라 고요한 곳에 앉아야 합니다. 물론 시중(市中)가서 해야 하고 조용한 곳을 골라가서 해야 하지만은, 기왕이면 고요한 곳에서 해야 능률이 잘 오릅니다. 한거정처(閑居靜處)는 한가할한(閑)자, 살거(居)자, 고요할정(靜)자, 곳처(處)자입니다.

그 다음은 의식구족(衣食具足)이라. 우리가 너무나 옷이나 음식이 없어서도 안 되겠지요. 의식이 자기 먹을 만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우리 하나의 선방(禪房)을 꾸민다고 하더라도 선방에서 불안스러우면 참선을 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최저한도로 의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의식구족이라.

 

그 다음은 외식제연(外息諸緣:息諸緣務)이라. 밖외(外)자, 쉴식(息)자, 뭇제(諸)자. 연연(緣)자, 밖으로 모든 인연(因緣)을 피한다는 말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고 여러가지 팔방미인(八方美人)도 좋습니다만 이렇게 저렇게 복잡한 연(緣)으로는 참선은 못합니다. 역시 외로워야 합니다.

 

[니체] 같은 사람도 역시 ‘외로운 가운데 그대의 길을 가라’는 말을 했듯이, 위대한 사람은 보통 고독(孤獨)을 좋아합니다. 고독해야 만이 우리 마음이 깊이 심화(深化)됩니다. 특히 참선은 역시 고독해야 만이 됩니다. 사람 좋아해 보십시오. 일 좋아해 보십시오. 외식제연(外息諸緣)이라. 모든 인연(因緣)을 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정적(家庭的)인 여러 의무(義務)를 망각(忘却)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우리가 번다한 연(緣)을 피해야 만이 좌선에 들어가집니다.

 

그 다음에는 근선지식(近善知識)이라. 가까울근(近)자, 선지식은 착한 스승입니다. 착한 스승 착한 벗이 선지식입니다. 역시 자기 길을 인도(引導)하고 우리 공부를 이렇게 점검(點檢)하고 권유(勸諭)하고 격려(激勵)하는 벗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선지식(善知識)이 아닙니까. 선지식이 항시 근처(近處)에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오행(五行)이라, 지계청정(持戒淸淨), 한거정처(閑居靜處), 의식구족(衣食具足), 외식제연(外息諸緣), 근선지식(近善知識)이라, 이와 같이 해야만 참선의 바른 길로 빨리 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좌선을 해서 꼭 이번에 설사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고 우리 마음이 분별시비라든가 여러가지 혼침 때문에 견성오도(見性悟道)까지는 미처 못 간다 하더라도,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경안(輕安)이라, 자기 몸도 마음도 부담이 없는 아주 시원스런, 마치 하늘로 올라가 버릴 것 같은 쾌적(快適)한 그런 기분까지는 꼭 얻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 마칩니다.

 

 

나무아미타불!

 

* 19850801-태안사 하계용맹정진중 두 번째 법문

<설법 무주당 청화(淸華)대종사>

1. 19850801-카셋 녹음 태안사 방송실 스님

2. 19950000-펜글씨 녹취 : 법륜행(法輪行)

3. 20160216-워드정리 : 본정(本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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