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있는 것은, 불생불멸하는 불성만 존재합니다.
* 인연을 바로 알면, 무엇에 집착이 안 갑니다. 그러나 인연도 소중하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 불성, 남의 불성을 개발케 해 주어야 합니다. 인연 성취가 쉬운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입니다. 성취 가능성이 높으면 좋은 사회입니다. 인생은 영체(靈體)가 부모 인연을 만나 생사윤회 하는 과정입니다. 윤회를 멸하는 길은 정견뿐입니다. 이 정견은 “내가 없다”는 무아의 견해입니다.
* 최초의 번뇌가 아(我)입니다. 무명의 근본도 아입니다.
* 삼매에 들면 추위도 더위도 없습니다. 인간적 의식에서만 추위·더위가 있습니다.
* 다원적 사회에서는 자기의 절대적 가치관이 없으면 못삽니다.
* 아뢰야식은 잠재의식 중에서 가장 깊은 것입니다. 아뢰야식은 제 팔식, 또는 장식(藏識)입니다. 아뢰야식의 ‘아’는 무, ‘뢰야’는 멸진의 뜻으로, 멸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전 우주가 거기에 가담하지 않고는, 한 사건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의 관계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 범부는 아집과 법집을 못 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집착은 곧 번뇌입니다.
* 방편설은,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도 있고, 선업을 쌓으면 천상에 나고, 악업을 쌓으면 고를 면할 수 없다는 상식적인 차원의 법문입니다.
* 진실설은, 일체 중생의 근본이 같다는 말씀, 모두 뿌리와 본질에 관한 말씀이며, 모두 하나의 생명이며 하나의 진리라는 법문입니다. 진실설은 생명일원·진리일원·광명일원·불성일원의 법문입니다.
* 참선은 마음을 불성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즉 실상, 부처님 생각을 떠나지 않고 참구하는 것입니다. 진리, 즉 부처님을 떠나면 외도일 뿐 불교의 참선이 못됩니다.
* 참 지혜라는 것은, 성(性) 상(相) 중에서, 성에서 현상이 이루어짐을 보는 지혜이고, 또 성품과 현상이 하나임을 아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도인은 현상과 뿌리, 즉 성품을 다 봅니다. 그러나 중생은 뿌리, 즉 성품은 못 보고, 현상의 상만 봅니다.
* 불성은 모든 존재의 순수 에너지, 텅 비어 버린 곳이며, 불생불멸하고 일체 공덕의 곳집이고, 우리의 근원자리를 말합니다.
* 불성을 믿는 것이, 방편을 떠난 진실한 신앙입니다. 불성을 믿지 못하면, 불교의 신앙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불성은 바로 인격입니다. 불성차원에서는 너와 나가 없습니다. 모두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불교의 신앙은 내 본성이 불성임을 믿는 것입니다.
* 진사리(眞舍利)는, 천지우주가 다 불성뿐이구나 하고 믿어야, 그 훈기가 모여 진사리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 우주는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생명을 내던지면, 신비한 힘이 내게로 옵니다.
* 중생은 사태와 사물의 본바탕을 못 봅니다. 반야가 있어야 바탕을 볼 수 있습니다.
* 상식이나 과학으로는 인간의 참 모습을 못 봅니다. 철학과 종교만이 압니다.
* 무엇이 바른 견해인가? 철학과 종교의 견해입니다.
* 무수한 인과 연이 합해서 한 사태가 됩니다. 즉 천지 우주의 무수 중생의 인연이 합해서 한 사태가 됩니다. 꽃 한 송이도 한 원인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 부처 같은 마음이 우리 본래 마음입니다. 불신 시대는 자기 마음의 밑바탕을 믿지 않는 시대입니다.
기독교의 원죄 사상은, “인간의 마음은 본래 나쁘다[카인의 후예]”고 보니 남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른 인간의 마음, 본래 부처인 마음, 인간의 본질을 바로 잡아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을 닦고 성불해야 할 의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각자 본질을 잡아내는 것이, 이 세상을 극락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 ‘비로자나불’은, 온 우주에 본래로 두루 계시는 참으로 영원한 부처님입니다. 즉 법신불을 말합니다. 법신불은 광명으로 된 부처님으로, 우주의 근원이요 만유의 근본 뿌리이십니다.
석가모니불이 나오시건 말건 이 우주가 없어지건 말건, 영원히 계시는 부처님, 참으로 계시는 참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광명변조(光明遍照)라 합니다.
* 세 가지 공덕의 부처님을 달[月]에 비교해서 설명하는 것을, 일월삼신(一月三身)의 비유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법신은 비로자나불 광명변조라, 우주에 두루한 부처님을 달의 본체[月體]에 비교하고, 보신은 달빛에, 화신은 달빛으로 만들어지는 달그림자, 즉 물속에 떠 있는 수천만의 달의 화신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중생은 화신입니다. 근원은 보신과 법신입니다.
화신경계(化身境界)에서만 천차만별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법신과 보신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동체대비입니다. 화신만 보고서는, 대비심 내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 한 마음 돌이키면, 악도에 떨어질 운명을 돌이켜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앙굴리마라의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구백구십구 명을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 부처님을 떠올리며 바로 보면, 그 사람 마음 가운데의 법신(法身) 보신(報身)이 보입니다.
* 제법본공(諸法本空)이라, 일체의 현상은 본래 비었습니다. 오온이 모두 비었습니다.[皆空] 너와 나가 없습니다.
* 천지우주를 법신으로 봅니다. 감이 안 잡히더라도, 비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인생의 모순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모순은 무엇인가? 견해에 따라 다르겠으나, 차별과 유한성입니다. 천지우주를 법신 보신으로 보면, 천지우주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차별의 보신이 없어집니다. 진공묘유의 중도실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생불멸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천지우주가 하나의 부처님뿐이라는 일승묘법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빈자리가 부처라는 제법실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제법본공의 도리를 방편적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제법본공의 도리를 모르거나 불신하면, 불교를 부정하는 결과가 됩니다.
제법본공의 도리는 바로 반야의 도리입니다. 제법본공이 되어야, 제법실상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법본공의 도리는 불교의 과학이요, 우주의 도리입니다. 제법본공이 설명되어야, “범소유상개시허망(凡所有相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가 설명될 수 있습니다.
* 부처님의 행복을 느끼려면, 제법본공(諸法本空) 즉 제법이 본래 있은 바가 없고, “나라고 내세울 자리”가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 제법본공이 아니면, 무아 무소유의 당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 마음의 본체를 법신이라 하고, 그 마음에 일어나는 작용을 보신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부처님은 하나의 부처입니다.
* 어떻게 삼신(三身)자리로,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갈까? 방편수행이 아니라, 진실로 성불의 길, 제일의제를 수행해야 합니다. 제일의제 수행이란 것은 내 마음이, 일체만유가 본래 부처라고 믿어 버리고 수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 양자·전자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그 무엇, 신비스런 에너지입니다. 이것을 규명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또한 과학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불교입니다. 이 신비한 에너지, 순수에너지이며 장(場)에너지는 곧 불성입니다. 일체존재의 근원이 불성임을 아는 것이 성불의 첩경입니다.
* 일체가 부처님임을 믿고[信] 느끼고[解] 안 놓치면[行]. 화두건 염불이건 성불, 곧 증명을 하는 것입니다.
* 부처님을 이치나 원리 법칙으로 믿으면 신심이 안 납니다. 감성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 부처님 공덕을 환희심과 감격이 충만한 마음으로 추구해 들어가야 합니다. 부처님을 인격으로 구할 때는 염불이 쉽습니다. 염불이나 부처님 법의 수행은 먼저 부처님을 인격으로 보고, 부처님 공덕을 환희 찬탄하는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 우리는 천지우주의 순리에 따라야 합니다. 우주 도리가 불법의 도리입니다.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어디서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도리, 우주의 질서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어디서 빌려온 도리가 아니라, 이 생명 이대로 부처님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바로 우주의 도리로 계십니다. 부처님은 누구신가? 자연의 도리, 우주의 질서, 내 생명 이대로가 부처입니다.
* 선은 본체로 보면, 천지우주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그대로 참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가 이대로 선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 장(場)에너지란, 우주에 충만한 우주의 순수 생명이고, 불성 광명이며, 불성입니다.
* 제주 관음사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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