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념상속(念念相續) 필경위증(畢竟僞證)이라, 생각 생각에 부처님 경계, 부처님 성품을 놓치지 않고, 내 밖이나 안이나 충만한 광명자리를 훤히 느끼면서 부처님 이름을 참구하면, 십즉십증(十卽十證), 백즉백증(百卽百證)이라, 모두 성불한다는 말입니다.
심불상속고 부달결정신(心不相續故 不達決定信)이라, 마음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으므로, 결정적인 믿음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했다 말았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마음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하고 무장무애(無障無礙)하여, 걸림이 없고 자취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허무하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實相)은 무한 능력을 갖춘 생명의 광명으로서, 바로 불성 곧 부처님입니다. 심즉시불 불즉시심(心卽是佛 佛卽是心)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고, 부처가 마음입니다.
* 인간을 비롯한 일체만유는, 모두 한결같이 불성의 광명으로 이루어진 화신입니다.
* 우주의 실상은 장엄 찬란한 연화장 세계요, 극락세계입니다. 한 발짝 옮길 것도 없이 이대로가 극락입니다. 다만 못 볼 뿐입니다.
* 우주만유는 그대로 부처님 자신의 몸이며, 나고 죽는 일체 만상도 또한 부처님 자신의 심심 미묘한 활동 모습입니다.
보리방편문 끝부분에, “내외생멸상(內外生滅相)인 무수중생(無數衆生)의 무상제행(無常諸行)을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인달하야 미타(彌陀)의 일대행상(一大行相)으로 사유관찰(思惟觀察)할지니라”는 구절을 상기하십시오.
* 진실한 부처님은 법신 부처님입니다. 바로 우주 자체이십니다. 부처님은 또 온 누리에 충만하신 부사의한 생명의 광명이십니다.
* 참선 곧 선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하여, 산란하지 않게 하는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의 수행법입니다.
* 물질이란 다만 부처님의 현상화입니다. 부처님 실상이 상으로 나투신 것입니다.
* “만연도방하(萬緣都放下) 단념아미타(但念阿彌陀) 즉시여래선(卽是如來禪) 역시조사선(亦是祖師禪)이라, 모든 반연은 모두 쉬고서, 다만 아미타불만 염하니, 곧 여래선이며, 그것이 바로 조사선일세”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 상을 여의고 보면, 모두가 다 하나로 보입니다. 하나로 어떻게 보일 것인가? 모두가 불성으로 보입니다. 불성이 인연 따라서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산이 되었든 냇물이 되었든, 근본실상은 불성뿐입니다.
* 석가모니나 예수나 공자나, 실상의 본바탕은 다 같은 불성입니다. 그러나 지금 업장에 가려서, 스스로 참된 자아를 못 보는 것입니다.
* 껍질은 지옥 껍질을 썼더라도, 알맹이는 그대로 부처입니다. 우주는 모두 성불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참선·염불로 잘 닦아야, 자기 생명의 본 목적과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 “선으로 하거나 염불하거나 간에 다 불성이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선행적으로 꼭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야만이 이른바 선오후수(先悟後修)입니다.
* 외도도 많고 잡설도 많아서, 바른 견해[正見]를 못 가지면, 한 걸음도 바로 못 갑니다 우리 마음이 바른 견해[正見]로 딱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못 갑니다. 바른 견해[正見]를 가지십시오.
* 천지우주가 불성뿐이기 때문에,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라, 모두가 마음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 참다운 삼매는, 천지우주가 나와 하나이며, 참다운 하나의 생명으로 환원시켜 거기에 몰입하는 것이며, 또는 하나의 진리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 참선에 있어서 정(定)은, 마음을 진리에 두고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 진정한 만족은 천지 우주가 나와 하나가 될 때 옵니다. 또는 성자나 도인인 될 때 진정한 만족이 옵니다.
* 믿음이란, 진리는 분명히 있다고 믿음이 참 믿음이며, 처음부터 의심해서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 무아(無我)를 안 믿으면, 불교를 안 믿는 것과 같습니다. 무아가 우리의 목표요, 무아가 우리의 구경의 안식처입니다.
* 대승은 못 가도 무아는 믿어야 합니다. 무아를 믿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망아(妄我)를 못 벗어납니다.
* 모든 것은 수중월(水中月), 경중화(鏡中花)임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실상이 없습니다.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이며, 거울 속에 비추어진 꽃과 같음을 꼭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습니다.
* 가아(假我)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즉, 진아를 인정한 사람만이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이 만져지는 얼굴이 실제로 있어서 만져진다고 생각해서는, 실상과 진아를 볼 수가 없습니다.
* 내 존재 근원만이 아니라, 참다운 존재는 모두 진아 이므로, 진아로 가는 길은 무한합니다. 진아는 자타를 벗어난 경계이므로, 너와 나의 생명의 구별도 없습니다.
* 표덕문(表德門)[사덕지향, 상락아정]과 차정문(遮情門)[사념주, 고 공 무상 무아]을 중도적으로 느껴야 합니다. 표덕문은 적극적으로 모든 법의 진리나 본래 갖춘 공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차정문은 진리의 표현 방법을 적극적이 아닌, 소극적 부정적으로 설명합니다. 마음을 표덕문에 두고 차정문을 부정해야 합니다.
* 공의 본질이 중도이니, 공만 닦으면 중도가 됩니다.
* 계가 없으면 삼매를 얻지 못하고, 삼매라야 삼계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시라불청정(尸羅不淸淨)이면, 좌선무익(坐禪無益)입니다. 아무리 선정을 닦아도, 도덕적인 계행이 바르지 못하면, 불과(佛果)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 삼매 없이는 영원히 참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번뇌가 잠들지 않는 한, 삼매 역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몸과 마음이 오염되면 삼매에 못갑니다.
* 우리 수행자들이 마음이 중생과 같이 있으면 사회 참여가 됩니다. 임진왜란 때 전쟁터에 안 나간 진묵스님의 공도, 그런 뜻에서 서산 스님에 못지않습니다.
* 삼세 부처님은 영원히 존재하시고, 무수한 선신(善神)도 우리와 같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일거일동을 다 듣고 다 보고 계시는 부처님이요, 선신들입니다. 천지우주는 하나의 불성 덩어리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천지우주와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천지우주는 불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있습니다.
* 총탄도 사람을 보고 피해갑니다. 탄환 속에 부처님과 선신이 계십니다. 어느 한 사건도 인과를 벗어난 우연은 없습니다. 천지우주는 제망찰해(帝網刹海)입니다. 그물과 같은 ‘인드라망’ 무진 연기 속에 있습니다.
* 우리 행동이 바르면, 성중(聖衆)들의 감응을 얻고 영향을 받습니다.
* 부처님 기운이 내가 되고, 별이 되고, 현상계가 되었습니다. 현상계만 이렇게 다르게 보이지, 부처님 기운[에너지]은 같은 하나입니다. 또한 부처님 기운은 변동이 없습니다. 현상계는 비록 변화하고 생멸하는 가상이지만, 실상의 그림자입니다.
* 부처님과 선신의 가호는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우주의 의지요, 진리의 성품이며 본원입니다.
* 밀교에서 초목에 식(識)이 없다함은 소승입니다. 우리는 만법유식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승입니다. 만법유식은 초목에도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대승은 만유를 생명으로 봅니다. 동시에 만유를 하나로 된 생명으로 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무생물이나 생명 없는 것은 없습니다.
* 반야의 도리에서 보면, 우리 몸은 텅 빈 염파(念波)에 불과합니다. 반야는 실상을 보는 지혜입니다. 실상에서 보면, 반야바라밀에서 보면, 현상은 모두 비었습니다. 색은 공성(空性)의 여여상(如如相)이요, 그래서 색과 공이 따로 있지 않고, 공체의 환화(幻化)로서 공과 색이 다르지 않습니다.
* 먼저 수행에 앞서 정신(正信)이 필요합니다. 정신은 “천지우주 이대로가 부처님의 심심미묘(甚深微妙)한 생명”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정견입니다.
* 수행에 앞서, 참선·주문·염불 어느 것을 두고서도, “천지우주가 부처님이다, 부처뿐이다.”하는 정견이 선오후수로 앞세워져야 합니다.
* 이 천지우주가 바로 극락세계입니다. 이대로가 행복의 고향, 우리 본래 생명 자리인 극락세계입니다.
* 우리에게 만족이 아직 없다면, 내 신앙에 만족 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바른 견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 신앙은 부처님에 대한 흠모심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흠모, 갈앙심이 없으면, 신앙에 초월이 없어서, 삼매도 성불도 늦어집니다.
* 인연의 가장 최초의 제일 원인은 불성입니다. 부처님입니다.
* 내가 비었다는 아공(我空)을 느끼고서 법공(法空)을 못 느끼면, 소승(小乘)이고, 아공·법공을 다 느껴야 대승(大乘)인 것입니다.
* 전자나 원소는 에너지의 파동입니다. 소립자도 에너지의 파동이며, 공의 모임, 곧 공취(空聚)입니다. 공의 알맹이, 순수 에너지의 본체가 불성입니다. 인간의 본질도 불성, 일체 만유의 본질도 불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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