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 길 2권 1.(3)

 

 

 

 

*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덩어리입니다.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라, 부처님 몸이 법계 곧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진진찰찰(塵塵刹刹)이라, 티끌 하나도 부처님 아닌 것이 없습니다. 두두물물화화초초(頭頭物物花花草草)가 비로자나진법신(毘盧遮那眞法身)이라는 화엄경 말씀도 있듯이, 우주 삼라만상이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 원력은 부처님 무량공덕을 믿는 신앙심에서 생깁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란 말씀이 법성게에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을 세울 때가 바른 깨달음에 드는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원이 세워지지 않는 신앙이나 수행은 무력합니다. 원은 바로 힘의 원천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큰 기반입니다. 신앙은 도의 뿌리요 공덕[능력·수행력]의 어머니입니다.

 

* 신해(信解) 공덕인 믿음과 깨달음의 공덕은 오바라밀(五波羅密:육바라밀에서 반야바라밀을 뺀 공덕, 즉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의 다섯 가지 공덕)을 능가합니다. 믿음의 공덕이 이렇게 큽니다.

 

* 믿는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믿어야 합니다. 순수한 믿음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 우리의 염력(念力)은 광선보다 빠릅니다. 염력은 곧 우리 마음의 힘입니다.

 

 

*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이어감이 선정이고, 제일의제를 안 놓침이 정견(正見)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정에 잠겨야 합니다. 그래야 습기가 녹고 업장이 소멸됩니다. 성불에까지 못 갔어도, 부처님 명호를 외우거나 참선을 하면, 부처님과의 사이에 통로가 열립니다.

 

* 계행이 청정하지 못하면, 선정을 얻지 못합니다. 계는 법기(法器)입니다. 법을 담는 그릇이고, 계정혜(戒定慧)삼학 중에서 계를 첫째로 꼽고 있습니다. 부처님 열반시에도, 아난 존자가 “이제 누구를 스승으로 삼습니까”하자,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以戒爲師]하셨습니다. 또 계가 청정하지 못하면 삼매를 얻지 못한다.[尸羅不淸淨, 三昧不現前]고 하셨습니다.

 

* 사조(四祖)도신 스님도 염불선을 하시고 신라 무상스님[淨衆綜]도 염불선을 하셨습니다. 원통종교인 불교는 염불선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범부의 막히고 묶인 마음은 염불선으로 풀어야 합니다.

 

* 자기가 부처임을, 자기 본성이 불성임을 확인하기 위해 염불을 합니다. 우리 본각(本覺)의 참 성품을 깨닫는 것이 곧 참다운 염불입니다. 생각 생각에 부처를 안 떠나면서,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마음을 가질 때 참 염불입니다.

 

* 참선의 길은 복 받는 길입니다. 공부 잘하면 복도 최선으로 받습니다. 왜냐하면, 불성에 접근 할수록 무량한 복이 밀려옵니다. “천지우주가 부처님뿐이다.”고 믿으면, 부처와 나 사이에 접촉이 이루어집니다. 벌써 가피가 옵니다.

 

* 참 부처님은 생명의 부처님입니다. 곧 법신 부처님[法身佛]입니다. 자비도 원만, 지혜도 원만, 공덕도 원만한 것이 부처님입니다. 그런 참 부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상징적으로 등상불(等像佛)을 모십니다.

 

*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라, 부처님은 온 누리에 가득 차 있습니다. 부처님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바로 믿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성령 기운이 들어가소서”하여 봉불식(奉佛式)을 합니다.

 

* 물질 뿐만 아니라, 내 생각, 관념도 인연 따라 이루어집니다. 전생인과 부모연과 금생연 따라 내 생각이 이루어집니다. 인연생멸 하는 것이 내 마음입니다. 그래서 법신게(法身偈)에 “제법종연생(諸法從緣生) 역종인연멸(亦從因緣滅) 아사대성주(我師大聖主) 위아여시설(爲我如是說)[천지만유가 인연 따라 생기고, 또한 인연 따라 소멸하나니, 우리 대성자 부처님은 우리를 위해 이와 같이 설하신다.]”이라고 했습니다.

 

* 인연법은 우주의 도리입니다. 주고받는 것도 인연이며, 내가 하는 것도 인연으로 되어집니다. 불교는 인연법이라 간단합니다. 아는 것도 인연 따라서 압니다. 그래서 가장 옳은 생각은 부처님 생각이고, 참다운 스승은 성인뿐입니다.

 

* “정직한 분 가운데 가장 정직한 분은 부처님이다.”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정화 정도에 따라 마음이 깊어집니다. 우리 마음이 머무를 곳은 중도실상, 즉 지혜의 자리입니다. 이것이 염불이고 참선입니다.

 

* 공부를 하다 보면, 몸이 텅 비어버립니다 부처님 말씀이 고마워 며칠이고 웁니다. 공부해 보면 아십니다. 부처님께서 만유가 비었다고 하신 것은, 다 빈 것입니다. 부처님은 진실만 말씀하십니다.

 

* 천태지의 선사는 “우리 마음을 공가중(空假中)에 머물게 하라”고 했습니다. 곧 실상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참선이 됩니다. 실상자리는 부처님으로, 진리로도 표현됩니다.

 

* 두두물물이 부처요, 천지우주와 내가 이대로 부처라는 마음이 보리심입니다. 이 보리심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참선이 됩니다. 참 염불이 됩니다. 또한 염불선이 됩니다.

 

* 공부가 깊어질수록 믿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수행이 깊어질수록 밝은 빛이 비쳐옵니다. 부처님 광명이 처음에는 별빛만 하다가, 점점 넓어집니다. 이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몸도 가볍고 시원해집니다. 꼬집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 무량수경 유통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그지없이 기뻐하여 아미타불을 다만 한번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분명히 알아 두어라, 바로 이것은 위없는 공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니라.”

 

* 부처님이 미륵보살에게 부촉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설사 맹렬한 큰 불이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하다 하더라도, 한사코 뚫고 나가서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느니라. 환희심으로 믿고 지니며 외우고 기억하며, 가르침과 같이 수행해야 하느니라.”

 

* 염불선은 부처님 명호를 외우면서, 실상, 즉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님[진여불성 등]인 것을 관하는 수행입니다. 한 가지 더 간곡한 부처님부촉을 전하겠습니다.

“내가 중생들을 위하여 무량수경을 설하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관한 모든 공덕 장엄을 보고 듣고 알도록 하였으니, 마땅히 정진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간구할 것이며,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 정토삼부경에 “먼 미래에 이 세상에 불법이 망하고 모든 경전이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자비한 마음으로 말세 중생을 가엾이 여겨, 특히 이 무량수경만은 일백년을 더 오래 머물게 할 것이니라. 그래서 누구든지 이 무량수경을 만나서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는, 그들의 소원대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설만세계화(設滿世界火) 필과요문법(必過要聞法) 요당성불도(要當成佛道) 광제생사류(廣濟生死流)”라 하셨습니다. “설사 세계가 불로 가득하더라도, 반드시 꼭 들어가야 할 법문이니, 마땅히 성불하여 생사의 바다에 있는 중생을 널리 구하라”는 뜻입니다.

 

* 성자는 인간 해방을 몸소 체험하신 분입니다. 가을은 생물의 귀천성(歸川性), 동물의 귀소성(歸巢性), 식물의 귀근성(歸根性)처럼, 인간의 마음도 생명의 고향으로 가고픈 본능 때문에 외로워집니다. 이 마음이 부처님을 그리워하며 부르게 되어 있어, 가을은 참선의 계절입니다. 염불하는 사람들은 갈앙심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이 외로움을 통해 순수 신앙의 문이 열립니다. 푸른 하늘은 청공으로 열린 고향 같고, 부처님을 지향하고 진리를 우러르는 마음은 그지없이 순수해집니다.

 

* 수행은 자기 성향에 따라서 해야 진전이 빠릅니다. 맞지 않으면 시간 낭비입니다.

 

* 부처가 되게 하기 위한 우주의 원력과 법칙과 서원이 본원(本願)입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겠다는 뜻이 본원입니다. 우주가 본래 갖춘 서원이 본원입니다.

 

* 극락세계가 광명정토이고, 아미타불은 우리의 실상이자 본래면목이고 극락세계 교주이시며 우리 자신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므로 극락세계는 우리와 별개의 세계가 아닙니다. 또한 극락왕생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극락세계는 실존하는 세계입니다. 광명세계가 천상에 있다하더라도, 이 세계가 광명세계가 되어갑니다. 생각을 거듭하면 정화가 되어갑니다. 극락세계는 바로 보면 천지우주가 다 극락세계입니다. 왜냐하면, 천지우주가 부처님광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사스님은 이 우주를 일과명주(一顆明珠)라 했습니다. 한 덩이 밝은 구슬이란 말입니다. 불성광명에서 보면, 모두가 맞닿아 있는 찬란한 구슬입니다.

 

* 부처님 법에 여법(如法)하게 따르는 생활은 여법주의(如法主義)·불성주의(佛性主義)·인도주의입니다. 부처님과 진리와 윤리에 따르는 생활입니다. 항상 부처님을 앞세우고, 마음 가운데서 부처님이 떠나지 않는 생활입니다.

 

*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 삼계가 별도로 있지 않고, 오직 마음뿐입니다. 우리는 욕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욕계에도 높은 천상이 많습니다. 부처님은 어디에만 주재하지 않고, 천지우주에 가득 차 움직이는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도 부처님을 떠나있지 못합니다.

 

* 이승(二乘)은 인생을 고(苦)로 봅니다. 보살은 인생을 공(空)으로 봅니다. 부처님은 인생을 마음[心]으로 봅니다. 일체유심조로 봅니다. 마음이 열린 정도에 따라, 각각 보는 세계가 다릅니다. 그러나 오직 천지우주가 부처님뿐이라는 생각을 안 떠나면 그 마음을 일념법계(一念法界)라 합니다. 천상[극락]세계는 항상 일념법계입니다. 항상 염불(念佛)·염법(念法)·염승(念僧)의 염불소리가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 부처님을 성품으로 보면 불성, 인격으로 보면 부처님, 지혜로 보면 유식(唯識), 마음으로 보면 유심(唯心)입니다. 우리는 유식과 유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 원자핵이나 전자도 부동한 실체가 아닙니다. 움직이는 운동상(運動相)입니다. 상을 떠나면 에너지뿐입니다. 그리고 에너지의 실체를 불성, 부처님이라 합니다. 곧 상을 떠나면 마음뿐입니다. 불심뿐입니다.

 

* 초목무심호소승(草木無心號小乘)이라, 나무나 풀은 마음, 즉 식(識)이 없다고 보는 것을 소승이라 합니다. 만유를 본체[부처님]에서 보고, 본체에 입각해야 대승입니다. 만유를 상에서 보는 것이 또한 소승입니다.

 

* 산소·수소·질소 두두물물이 모두 부처로 되어 있습니다. 불성뿐입니다. 불성뿐인 실상을 잘못 보는 것이 번뇌요, 무명입니다.

 

* 낙엽을 밟으면서, 이 가을에는 인생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무상의 계절에도 무상을 무상으로 안보고 못 느껴서 문제입니다. 무상을 자기 행동으로 옮겨야합니다.

 

염불과 참선을 하되, 꼭 계를 지니셔야 합니다. 용수보살 법문에 “계를 지키는 자는 안 되는 것이 없다[持戒之者, 無事不得]”고 했습니다.

 

* 실상에서 보면 모두가 극락입니다. 이제 어떻게 닦아야 할 것인가?

첫째 쉽게 닦는 이행문을 택하여 염불을 하며, 둘째 정견으로써 천지우주만유와 내가 한 생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셋째 도덕적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 가장 높은 그리움은, 모든 존재의 근원 생명인 부처님을 향한 그리움입니다. 이 마음과 불성과는 거리가 없습니다. 닿아있습니다.

 

* 미운 사람도 예쁜 사람도 없는 그 자리에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마음 자리입니다.

 

* 참선은 구(求)함이 없어야 하지만, 그것은 구경의 목적지요, 처음에는 구하는 푯대[標主]가 있어야합니다. 구할 때는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함이 멈추어지는 경계에 도달합니다. 즉 유심에서 구함이 사무쳐서 무심이 됩니다. 이렇게 정화되면, 극에 이르러 불성과 접하게 됩니다.

 

* 염불선의 경우, 애써 구해서 사무치면, 구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미숙할 때는 처음에 생각을 내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내야 합니다. 구하는 생각이 들뜨면 안 됩니다. 가라앉히고 나서[구하는]생각을 냅니다.

 

* 우리가 보려는 금색광명도, 청정무비한 적광을 보아야지 태양광선을 생각하면 상기(上氣)됩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내 몸이 공한 것으로 믿고 공관(空觀)을 함이 좋습니다.

 

* 참선 중에 광명이 밝아옴을 보면 명득정(明得定)에 이른 것이며, 밝음이 더 느껴지면 명증정(明增定)에 이른 것이며, 다음에 마음과 몸이 비어오면 여기서 공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인순정(印順定)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 차서(次序)인데, 맨 처음 명득정은 유식론에서 붙인 이름이며 사선근에서는 난법상(煖法相)이라 하고, 명증정은 정법상(頂法相)이라 하여, 광명이 증가되어 갑니다. 다음 인순정을 인법(印法)이라 하고, 욕계의 가상(假相)이 허공 같음을 믿고 확실히 인증한다는 경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