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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2. 진리의 길

진리의길 2권 1.(1)

 

천지우주가 다 부처님입니다.

 

 

*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믿으십시오. 부처님은 무한의 힘입니다.

 

* 참다운 님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을 흠모하고 추구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맑아지고 안온한 충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 부처님은 내 몸에도 가득 차 있고, 우주 공간에도 충만해 있습니다.

부처님을 인격적 생명체로 생각하지 않고 원리로만 추구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 극락· 도· 보리· 본질· 본래면목· 주인공· 진아· 진여· 부처님은 나의 본질, 내 생명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 진여불성이 바로 우리 마음이라는 생각을 여의지 않으면, 그 공부는 다 옳습니다.

 

* 불자의 목적은 성불에 있지만, 전생 금생 업장으로 성불은 먼먼 길입니다. 이때는 깊은 참회와 이행문(易行門)을 통한 염불이 성불하는 데 가장 쉽습니다. 닦는 길이 어려우면, 도중에 포기합니다. 성불의 문, 수행의 문은 쉬운 문을 택해야 합니다.

 

* 인생은 무수만생(無數萬生) 오랜 나그네 길입니다. 성불을 못하면 다시 몇 생이고 윤회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향이며 우리의 본성이요 본질인 영원한 불성에 못 가면, 몇 생을 헤매야 합니다.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겪어야 합니다.

 

* 어떤 불행도 우리가 지어서 받는 액운입니다. 어느 것도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지어서 받는 자업자득이니, 남을 원망하지 말고 참회해야 업장이 녹습니다. 업장을 벗으면 인과를 초월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한번 하면 그만큼 업장이 녹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 바로 우주의 이름이기 때문에, 우주 에너지의 우주음(宇宙音)이기 때문에, 업장이 녹습니다.

 

* 귀신이나 신장이나 나무아미타불을 가장 숭배합니다. 그래서 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우주의 순수생명을 음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한번 외우면 외운 만큼 업장이 녹습니다. 그래서 신장들도 굽어보는 것입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끊임없이 하십시오. 금생에 그렁저렁 아무 것도 못 깨닫고 죽는다 하더라도, 금생 내내 나무아미타불 하신 분은 이 몸뚱이를 버릴 때는 번연히 깨달아, 나무아미타불 몇 마디에 극락세계를 가는 것입니다.

 

* 어떤 종교나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보려고 애씁니다. 예수님도 유대 사람이 우매하여 방편이나 비유로만 말했습니다. 우주와 자성을 보는 가장 빠른 길이 참선이고 염불입니다.

 

* 성자나 도인의 말 가운데서 알맹이만 추리면 다 같으므로, 종교 간에 다툴 것이 없습니다. 성자나 도인의 말은 옳은 말이며, 거짓이 없습니다.

 

* 여러 종교 가운데서 인간 본질에 관한 진리를 체계화 한 것은 불교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세계의 석학들의 말입니다. 불교는 인간의 본질을 부처라고 봅니다. 이 본질을 보는 가장 합리적인 체계가 염불· 참선입니다.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美]은 불교의 정(定)에 해당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眞]은 불교의 혜(慧)에 해당하며, 선을 추구하는 [善]은 불교의 계(戒)에 해당합니다. 또한 수행법으로 해서 인간성을 종합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은 참 염불· 곧 염불선입니다.

 

* 공부도 우리 마음이 갖추고 있는 본질적 요소와 상응해서 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만 치우치면 불성과 상응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법이자연(法爾自然)입니다.

 

* 불교 공부는 쉬운 문[易行門]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도 인간성 본질에 맞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쉬운 문이 정토문(淨土門)인데, 이것이 타력문(他力門)이고, 부처님 이름을 외우는 염불문입니다.

 

* 이행문은 “내가 부처다.” “내가 본래 성불해 있다.”고 생각하고 닦는 문입니다. 참선은 난행 문인데 비해서, 염불은 이행문이라고 합니다.

 

* 이해가 안 되는 중생을 위해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극락이 십만 억 국토를 지나서 있다고 하는 것은, 이행문의 말씀입니다. 난행 문에서는 유심정토(唯心淨土), 마음이 극락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시 극락이란 부처를 성취한 자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 불성· 자성 자리만 믿고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인격적으로 흠모 추구하여 ‘믿음’으로 닦는 것입니다. 이것이 염불입니다.

 

* 부처님은 내 생명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입니다. 또 일체 공덕을 갖춘 생명체가 부처님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을 갈앙하는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흠모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닦아 가십시오.

 

* 부처님에 대한 사모와 그리움이 있어야, 우리 감성이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한층 성불의 길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내 생명으로 갈앙하고 연모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이 그리움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함과 같습니다.

이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고 비약시킵니다. 친구 간에도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미워하면 얼마나 추해집니까? 사람 사이도 그러한데, 지고(至高)하신 부처님, 본래면목인 생명의 부처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우리 마음을 얼마나 정화하고 비약시킬 것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염불입니다.

 

* 송과선(松果腺)은 머리 뒤쪽 간뇌 위쪽에 있는, 척추동물의 중추 의식 활동을 총괄하는 기관입니다. 칠세 까지만 발달하고, 마음이 불순해지고 오염되면 발달을 정지한다고 합니다. 송과선이 활동해야 영생의 부처님을 봅니다. 부처님을 부르면 송과선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부처님을 간절히 부르면, 우리의 생리와 심리가 정화됩니다.

 

* 신방편(信方便)이란 부처님을 사모하고 갈앙하는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흠모 추구하는 마음으로 믿으면, 속득 아유월치(速得阿惟越致) 즉 후퇴가 없는 자리, 희락지(喜樂地)에 이른다고 용수보살이 말씀하셨습니다.

 

* 부처님을 그리며 추구하는 방법은, 부처님 영상[무량공덕을 갖춘 영상]을 상기하며 부처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무량광명을 상상하든지, 부처님의 원만덕상을 상상하든지, 부처님을 상상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워하며 부릅니다. 영상을 못 갖추고 그냥 명호만 불러도,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 명호[이름]에 공덕이 묻어 있어서 불성이 밝아집니다.

 

* 자선 사업만 사회를 정화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생각 바로 먹는 정념(正念)이 우주를 정화시킵니다. 악한 마음은 우주를 오염시키고, 선한 마음은 사회와 우주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출전했는데, 진묵대사는 안했으므로 사회참여를 안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나, 현장 출병만이 출전이 아닙니다. 얼마나 순순히 닦고 밝은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바라문이 승가를 무위도식(無爲徒食)이라 했을 때, 부처님은 심전개발(心田開發)이라 했습니다. 한 사람의 수행자가 선방에 앉아 수행한다면, 그가 백번 출전한 것보다 나은 참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공해 현장에 가서만 환경정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맑은 생각이 더 많은 영향력으로 사회나 환경정화에 참여한 효과를 거양(擧揚)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참선자는 부처님 체성을 간직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보면 모두가 부처요 천지우주가 부처님인 것을 꼭 믿어 버리면 정견(正見)을 갖는다는 말이고, 부처님 체성을 간직했다는 말이 됩니다. 참선의 보배는 정혜요, 참선의 원수는 혼침입니다.

 

* 참선을 하다 보면, 끝에 가서 확 터져서 우주와 하나가 됩니다.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아미타불이 어디 계시는가?

마음에 새기고 새겨 간절히 잊지 않고 생각하면

생각이 다하고 다한 끝 이르러

여섯문(眼耳鼻舌身意)마다 자마금색 부처님 광명이 항상 비추리!

 

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 청량여래불(淸凉如來佛), 한도 끝도 없이 우리 심신을 청량하게 하시는 부처님, 또는 청량지, 열반과 같이 괴로움 이 없는 청료(淸了)한 자리, 청량삼매, 일체의 밉고 곱고의 증애심이 없는 자리 등의 말은 참선의 개운한 맛을 나타낸 말입니다.

 

* 우리 잠재의식은 꿈속에서도 공부합니다. 그래서 오매일여(寤寐一如), 청량삼매(淸凉三昧), 동정무간(動靜無間)이라는 말씀이 나왔습니다. 우리의 나태한 신심을 얼마나 격발시켜 주는 말입니까?

 

* 부처님은 생명의 본질로 계시니, 안팎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은 상징적인 부처님이며, 천지 우주에 충만한 부처님은 안 계신 곳이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 부처님을 믿는 한, 염불은 평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법이자연한 수행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행은 부처님을 여의지 않는 수행이라야 합니다.

 

* 부처님 이름은 공덕 따라서 부릅니다. 모두 하나의 부처님인데, 부처님 공덕이 하도 많으니까, 그 공덕에 맞는 부처님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중생구제에는 관세음보살, 지혜에는 문수보살로 공덕에 맞춘 이름, 명호를 쓰게 됩니다.

 

* 모든 참선의 선행요건은, 먼저 천지우주를 부처로 보는 견해[正見]를 세우고 닦아야 합니다.

 

* 우주 모두를 한꺼번에 다 비추어 아는 부처님 공덕을 아축여래(阿閦如來)라 합니다. 오지여래(五智如來) 법문입니다. 오지여래(五智如來)는 부처님 공덕을 다섯 가지 속성으로 구분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대일여래(大日如來)·불공여래(不空如來)·미타여래(彌陀如來)·아축여래(阿閦如來)·보생여래(寶生如來)입니다. 부처님은 오직 한 부처님인데, 공덕이 많으니까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우선 다섯 가지로 구분한 것입니다.

 

* 수식염불(數息念佛)은 호흡을 헤아려 가며 하는 염불이고, 참구(參究)염불은 소리 없이 마음으로 부르는 염불입니다. 간화(看話)염불은 부처님 명호를 화두로 해서 부처를 구하는 염불입니다.

 

* 관음염불은 천지우주가 부처님의 자비로운 성령이며 관음화신이라 믿고 하는 염불입니다. 즉 일체 존재를 관음화신으로 알고 하는 염불입니다.

 

* 하심(下心) 하려면 법의 실상, 우주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하심이란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경전에 범하심자 만복자귀의(凡下心者 萬福自歸依), 즉 하심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에게는 만 가지 복이 스스로 온다고 했습니다.

 

* 참으로 있는 것은, 주객을 떠난 오직 부처님뿐입니다. 실상묘해(實相妙解)라, 천지우주의 실상은 오직 부처님뿐임을 얻는 것, 우주에 참으로 계시는 것은 영원한 부처님뿐이라는 것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 실상묘해(實相妙解)라,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깨쳐서, 이를 안 놓쳐야 진실설(眞實說)이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라는 것은 실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즉 부처와 내가, 법성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가장 바른 참회로서 무생참회(無生懺悔)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곳에 내 마음을 머무르게 하는 참회입니다. 자기라는 망집(妄執)을 부정하는 것이 참회입니다.

 

* 차별심을 버리고 내가 부처임을 꼭 믿어야 합니다. 내가 부처임을 믿지 못하면 선오후수(先悟後修)가 못되고, 따라서 참선이 못됩니다. 대 수행인은 만법(萬法)이 자신의 소현(所現)임을 관찰합니다.

 

* 비록 관찰도 참구도 않고 이름만 외운다 하더라도, 꼭 성불을 합니다. 원래 부처인지라, 또는 부처님 명호는 사람 이름과 달라서 부처님의 공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 자체가 부사의[名號不思義]합니다. 부처님 이름은 부처님께서 친히 무량공덕을 담아[藏] 만드신 진리의 이름입니다.

 

* 무주선원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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