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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24)

 

 

윤회하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자 하려거든 지명염불로 극락왕생을 구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반드시 극락에 왕생하고자 하려거든 믿음을 전도前導로 삼고, 발원을 後鞭으로 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만약 믿음이 굳세고 발원이 간절하면 비록 흐트러진 마음으로 염불해도 반드시 왕생할 수 있지만, 믿음이 진실치 못하고 발원이 강하지 못하면, 일심으로 염불하더라도 왕생하지 못한다. -우익대사

 

* 방륜은 〈정법개술〉에서 「신원행(信願行)이 정토의 삼자량(三資糧)인 것은 이미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 자량(資糧)을 다 갖추지 못하면 절대 왕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발원은 정토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불이 옛적에 48원을 발함으로써 극락국의 연기(緣起)가 되었고, 그 후로 시방 중생들도 왕생을 발원함으로써 정행(淨行)의 근거가 되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접인(接引)하기를 원하셨고, 중생은 왕생하기를 원하여 이 두 원(願)이 구전(俱全)하여야만 자타이력(自他二力)이 비로소 완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업(淨業)을 닦는 자는 반드시 왕생하겠다는 발원(發願)을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고해를 빨리 벗어나 단박에 불도를 이루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정토법문을 말씀하셨다. 이 정토법문에 의지함으로써 일체 중생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이번 생에서 바로 윤회고를 벗고 부처를 이루게 된다.」 라고 하였다.

 

* 옛 고덕께서 「고통과 번뇌의 세계는 끝이 없으나, 마음을 돌리면 곧 피안(彼岸)에 이른다. 여기 극락에 가는 길이 있나니, 믿음만 일으키면 바로 극락에 왕생하느니라.」 라고 하였다.

 

* 《화엄경》십회향품(十廻向品)에 다음과 같은 ‘발원’이 있다.

「나는 모든 중생의 집이 되리라. 그들의 고난을 없애 주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구호자가 되리라. 그들을 번뇌로부터 해탈시켜 주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귀의처가 되리라. 그들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목적지가 되리라. 그들이 모든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안락처가 되리라. 그들이 지혜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횃불이 되리라. 그들이 무명을 깨뜨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등불이 되리라. 그들이 청정한 나라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길잡이가 되리라. 그들을 진리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중생의 큰 스승이 되리라. 그들이 걸림 없는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하여」

 

* 전도(前導)는 앞에서 인도한다는 뜻이고, 후편(後鞭)은 뒤에서 채찍질한다는 뜻임. 즉 앞에서는 당기고 밀어준다는 의미임.

 

염불이야말로 수행의 지름길이다. 그중에서도 지명염불은 지름길중의 지름길이다.

-원영대사〈아미타경요해강의〉

 

* 원영대사께서 직접 겪은 자신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사람의 목숨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 는 말씀은 나에게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다. 심근경색을 앓고 있던 나는 3년 동안 몇 번이나 심장발작을 겪었다. 고비를 넘긴 후 자세히 회상해보니 그때 내가 받은 고통은 바로 내가 집에서 도살한 돼지가 겪은 고통과 같은 것이었다. 1993년 당시 진(우리나라의 면과 같은 행정단위)의 대표를 맡고 있던 장금문 선생이 나를 찾아와 차를 좀 밀어줄 것을 청하였다. 나는 감기가 든 상태여서 몸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힘껏 차를 밀고 나서 갑자기 심장에 격렬한 통증이 오면서 쓰러졌다. 장 선생이 그때의 이야기를 나중에 해주었다.

 

당시에 이미 나는 쇼크 상태여서 만약 즉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죽었지만, 심식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심장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몸의 상태가 분리되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 생각에 끊어지지 않고 항상 염불해야 임종에 이르러 비로소 정념(正念)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장 선생이 쓰러진 나를 차에 실어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고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장 선생이 집안사람들을 고함쳐 부르는 소리와 서로 나누는 대화를 명료하게 듣고 있었다.

 

일찍이 내가 그 가족에게 염불을 권해서 장 선생의 부인과 그 모친이 모두 와서 나를 위해 염불을 해주었다. 그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들이 염하는 부처님 명호 한 마디 한 구절이 허공에서 빛을 발하면서 나타났다. 즉시 내 몸도 가벼워지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람마다 염불하면서 발하는 광명의 밝기와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장 선생의 부인이 평소에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온 까닭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밝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불편 듯 나도 염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염불을 했다.

 

그때 나는 자신이 직접 하는 염불의 광명이 특히 더 밝고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염불할 때는 우리는 그 공덕의 7분의 1만 받는다고 한 《지장경》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발작으로 심신이 압박받고 있을 때, 나는 다행히 장 선생 가족이 도와주는 조념염불(助念念佛)의 광명과 인도로 정념을 유지하면서 염불할 수 있었고, 그래서 고통을 덜고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너무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그 병원의 의사도 나를 보고는 이미 저승으로 갔으니 의학적인 처치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직계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시술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장 선생은 그 말에 화가 나서 다투었다. 그는 직계가족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한 참 걸릴 텐데 그러면 환자를 살리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화를 냈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그만 전심(專心)으로 염불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은 장 대표 한 사람뿐이어서 염불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따라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정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즉시 나는 내가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구름 비행기를 탄 것같이 빠르게 줄곧 떨어지는데 마치 한빙지옥에 이른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어둡고 추웠다. 온 몸을 칼로 베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내가 느낀 감각을 표현하자면, 경전에 이른 것과 같이 ‘바람칼로 온 몸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평소에 염불을 열심히 해온 공덕이 있어서 위기일발의 시점에 선근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 염불 일념이 문득 떠오른 것이었다. 슬프게 한 구절의 ‘아미타불’을 토해내었다.(나중에 들었는데, 이때 내가 한 염불소리가 커서 병원사람들이 모두 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그 즉시 눈앞에 조그만 광명이 나타났다. 곧 이어 다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자 그 광명은 앞에서 더 크게 커졌다. 그러자 몸이 가벼워졌고 눈을 뜨고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저승의 귀신문에서 나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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