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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13)

 

 

* 당나라의 규봉종밀 선사는 「‘선(禪)’ 이란 무엇인가. 선(禪)은 인도 말이다. 즉, ‘선나(禪那)’를 줄인 말로서 중국에서는 ‘생각으로 닦는다.[思惟修]’ 또는 ‘고요히 생각한다.[靜慮]’로 번역하였는데 모두 선정과 지혜를 함께 부른 것이다. 일체의 중생이 갖고 있는 본래의 성품을 불성(佛性), 또는 심지(心地)라고 하는데, 이를 깨닫는 것을 지혜라 하고 닦아가는 것을 선정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정과 지혜를 통틀어 선(禪)이라 부른다. 중생들이 참된 것에 미혹하고 번뇌에 합하는 것을 산란하다 하고, 번뇌를 등지고 참된 것에 합하는 것을 선정(禪定)이라 한다. 만일 본래의 성품을 논한다면 이는 참된 것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며 등지는 것도 없고 합하는 것도 없다.

 

또 고요한 것도 없고 산란한 것도 없는데 누가 선(禪)을 말하겠는가. 이 성품은 선문(禪門)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만법(萬法)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법성(法性)이라 하고, 또 중생이 미혹하고 깨닫는 근원이 되므로 여래장장식(如來藏藏識)이라 하며, 또 모든 부처님의 여러 가지 덕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이름을 불러 불성(佛性)이라 한다. 또 보살의 온갖 행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심지(心地)라 부르기도 한다. 《범망경(梵網經)》 심지법문품(心地法門品)에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근본 원리며, 보살도를 행하는 근본이고 대중 여러 불자(佛子)의 근본이다.” 하였다. 온갖 행(行)이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 등 육바라밀(六波羅蜜)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선문(禪門)은 단지 이 여섯 가운데 하나로서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그러니 어찌 선행만을 가지고 참된 성품을 한꺼번에 닦아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선행은 매우 싱그럽고 묘하여 일체의 지혜와 묘한 작용과 온갖 덕행과 덕을 일으키고, 신통 광명이 모두 선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들이 도를 구할 때는 반드시 선정을 닦아야 한다. 이것을 여의고서는 문이 없고 길이 없다. 심지어 염불하며 극락세계에 나기를 원할 때에도 생각이 다른 데로 흩어지지 않게 삼매(三昧)를 닦아야 한다. 또 참된 성품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라서 성인이나 범부에게 차별이 없지마는 선에는 얕고 깊음이 있어서 계급이 같지 않다.

 

말하자면 이상한 계교를 부려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여 마음을 닦는 것을 외도선(外道禪)이라 하고, 인과를 믿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닦는 것을 범부선(凡夫禪)이라 하며, 나는 공(空)하지만 법은 있다고 주장하여 닦는 것을 소승선(小乘禪)이라 하고, 나와 법이 모두 공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닦는 것을 대승선(大乘禪)이라 한다.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없으며, 지혜의 성품이 스스로 갖추어져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깨달아, 이 마음을 의지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고 또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하고 또 일행삼매(一行三昧), 진여삼매(眞如三昧)라 한다. 이것은 모든 삼매의 근본이 되므로 생각 생각에 닦고 익히면 자연히 백 천만의 삼매를 얻을 것이다. 달마(達磨)문하에서 새로 전해온 것이 바로 이 선(禪)이다.」 라고 하였다.

 

* 규봉종밀 선사는 또 「교(敎)는 모든 부처님이 말한 경론이고, 선(禪)은 모든 선지식들이 지어 놓은 글귀다. 그러므로 불경은 삼천대천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이고, 선의 글귀는 경(經)의 뜻을 뭉쳐서 간략히 해놓은 것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서 교를 세우고, 스님들이 상황에 따라 사람을 제도하는 일은 각기 다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없는 미래세까지 의지해야하기 때문에 이치를 자세히 밝히신 것이고, 스님들의 교훈은 상황에 따라 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뜻이 깊어야 통할 수 있다.

 

뜻이 깊어야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언어를 잊어버리고 언어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단지 문자에 집착하여 불도(佛道)를 구하는 이는 알아야 할 것이다. 글자를 알고 경을 외우는 것, 그 자체는 깨달음이 아니요, 문자를 알고 뜻을 해석하는 데에만 그친다면 오히려 삿된 견해만 발달하게 될 것이다. 많이 듣고 많이 아는 아난(阿難)을 보아라. 아난은 총명하여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오랜 세월 깨달음을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부처님이 교를 세우시고 한량없는 이익과 사람을 제도하신 방법은 각기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니 구태여 문자만을 숭상할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 불보살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데에는 절복(折伏)과 섭수(攝受)라는 두 가지 문(門)이 있다. 절복은 중생을 강제로 굴복시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하고, 섭수는 불보살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포용하여 가르쳐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보시섭(普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利行攝) 그리고 동사섭(同事攝)이 그것이다. 섭수(攝受)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을 고려해서 싸우지 않고 완만히 설득해서 점차로 정법으로 이끄는 방법인데 반해서, 절복(折伏)은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을 용인하지 않고 그 잘못을 철저하게 깨뜨려서 정법(正法)으로 이끄는 엄격한 방법이다. 《승만경(勝鬘經)》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자는 결코 지나쳐 버리지 않고, 절복할 자는 절복하고, 섭수할 자는 섭수하겠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 인광대사는 「일체의 모든 사람을 모두 보살로 보고, 오직 나 한 사람만 참으로 범부로 여기시오. 내가 말한바 대로 과연 수행하면 반드시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소.」라고 하였다.

 

* 달마대사의 〈관심론(觀心論)〉에 「만약 진여(眞如)의 마음을 깨쳐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음을 깨달으면 성인(聖人)이라고 하고, 만일 물든 마음을 따라 악한 짓을 지어 그 업에 얽히고 덮이게 되면 이를 범부라 한다.」라고 하였다.

 

* 논(論) : 경(經)을 풀이한 것을 말한다. 참고로, 논(論)을 풀이한 것을 ‘소(疏)’라 하고, 소(疏)를 풀이한 것을 ‘초(鈔)’라 한다.

 

* 율(律)은 율종(律宗)을, 교(敎)는 교종(敎宗)을, 선은 선종(禪宗)을 가리킨다. 율종은 계율을 닦고 지키는 것을 중시하는 종파(宗派)이고, 교종은 경전이나 교리(敎理)를 중시하는 종파이며, 선종은 자성(自性)을 보거나 화두(話頭)를 참구하거나 좌선(坐禪)을 통해 불성(佛聖)을 깨닫고자 하는 종파이다. 우리나라 최대 조계종(曹溪宗)은 선종(특히, 임제종)에 속한다.

 

정토법문은 상중하 세 근기에게 두루 가피를 주고, 율律과 교敎와 선禪을 포함한다. 두루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단비와 같고,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이는 큰 바다와 같아서 성인과 범부를 이끌어 함께 정토에 이르게 한다. 고로 구계九界가 모두 정토법문에 귀의하고 시방세계가 함께 찬탄하는 것이다. 경전마다 정토법문을 밝히고 수많은 논마다 고르게 정토법문을 드날리니 가히 부처님 한평생 설법의 최고봉이자 위없는 일승一乘의 큰 가르침이라 이를 만하다. - 인광대사

 

* 구계(九界) :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 성문/ 연각/ 보살을 말한다. 구법계(九法界)라고도 한다. 이중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을 육도(六道)라 하고, 성문/ 연각을 이승(二乘)이라 부른다. 중국 위앙종의 개조인 위산(潙山)선사는 「육도(六道)의 도(道)는 선을 떠난 악이요 악을 떠난 선이고, 이승(二乘)의 도는 유루(有漏)를 떠난 무루(無漏)이며, 보살의 도는 치우친 견해를 떠난 중도(中道)이고, 부처님의 도는 떠남도 없고 도달할 곳도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온갖 법이 곧 부처님의 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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