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10)


 

또한, 세친보살은 오백부의 소승론小乘論과 오백부의 대승론大乘論을 지었으므로 그를 천부논사千部論師라고 부르기도 하니, 그의 학식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지은 〈왕생론〉중의 첫머리에서 「세존이시어, 저는 일심으로 온 시바의 무량광여래에게 귀명하옵고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옵니다.」 하였다. 이와 같은 대보살들도 도리어 모두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였는데, 우리들은 생각해보면 저들의 몸에 난 한 올 털만큼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교만하여 정토법을 우습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지도 않으니 어찌 해괴한 일이 아니겠는가. - 방륜方倫〈정법개술淨法槪述〉

 

* 아만공고(我慢貢高) : 공고아만(貢高我慢)이라고도 한다. 자만심이나 아상(我相)이 높아 남을 없신여김. 자기만 선법(善法)을 알고 남들은 그러하지 못하다고 여김. 자기만 불법(佛法)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여기면서 남들을 무시함.

* 〈무량수경〉에 「교만하고 삿되고 게으른 자들은 정토법문을 만나도 믿지 않는다.[驕慢弊懈怠 難以信此法]라고 하였다.

* 세지총변(世智聰辯) : 세속의 지혜가 뛰어나고 총명함.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기억력이 뛰어나고 박학다식함. 자만심이 강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 하지 않음. 팔난(八難)에 들어감.

 

* 연지대사는 〈죽창수필〉에서 「잔에 담긴 물로는 한 수레 섶 더미의 불을 끄지 못하고, 반딧불로는 깊은 골짜기의 어둠을 밝히지 못한다. 조그만 지혜로 업을 얼마나 줄일 수 있겠는가.[杯水不能熄車薪之火螢光不能破幽谷之昏今之小智滅業幾何]」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우리 중생들은 모두 허환(虛幻)한 망상으로 부처님을 배우고 도(道)를 닦습니다. 그 결과 부처님을 배우지 않았으면 오히려 더 나앗을 것인데, 부처님을 배울수록 망상이 많아집니다. 모두 자기의 주관적인 선입견으로 불법을 해석하기 때문에, 배울수록 불법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할수록 멀어집니다. 심지어는 마구니의 길을 걸어가도 자신이 모릅니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 중에는 다른 신(神)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절해도 잘못이 없습니다. 이것은 덕 있는 자에 대한 일종의 완전히 자연스러운 존경입니다. 왜 그럴까요. 총명하고 정직한 사람이 죽어서 신(神)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로서 내가 꼭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범부들에게 대해서도 우리는 사람으로서 그를 존경해야 합니다. 존중하고 예의에 맞아야 합니다. 우리가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난 다음, 갑자기 스스로 위대해져서 “저런 작은 신(神)에게 뭐하려고 절을 해” 한다면 이것은 공고아만의 심리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은, 우리가 자존자중(自尊自重)하는 것이지, 도리어 남을 얕잡아 보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을 수호신인 토지신(土地神)을 깔보아서는 안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죽어서 토지신(土地神)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토지신은 말할 것도 없고 토지신의 아들이라도 될 자격이나 있습니까. 오만해서는 안됩니다. 일체중생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부처님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였다.

 

* 육조 혜능선사는 「항상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시비, 선악은 보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 오조(五祖) 법연(法演)선사는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공부하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라고 겸손해 하면서, 뒷날 선가(禪家)의 보물인 〈벽암록(碧巖錄)〉을 쓰게 되는 제자 원오(圓悟) 극근(克勤)선사에게 법연사계(法演四戒)를 내려 주어 경책(警責)했다. 법연사계는 이렇다. 세력을 다 쓰지 마라. 복을 다 누리지 마라. 법(규율)을 다 행하지(지키지) 마라. 좋은 말이라고 다 하지 마라.[勢不可使盡福不可受盡規矩不可行盡好語不可說盡]」

 

* 위 경책(警責)의 글을 제자에게 내려준 오조 볍연선사는 부연설명하기를, 세력을 다 쓰지 말라는 이유는 만일 세력을 다 쓰면(행사하면) 반드시 화(禍)가 생기기 때문이요, 복을 다 누리지 말라는 뜻은 만일 복을 누리면(받으면) 반드시 궁(窮)하게 되기 때문이요, 법(규율)을 다 행하지(지키지)말라는 이유는 규율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조리 지키기를 강요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귀찮게 여기기 때문이요, 좋은 말이라고 다 하지 말라는 뜻은 좋은 말이라고 해서 다하면, 들은 사람은 반드시 소홀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유식(唯識) : 유식이란 말은 ‘오직 마음’이란 뜻으로, 정신과 물질 등 안팎의 모든 것들은 오직 마음[心識]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따라서 심식(心識)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부처나 만법이 모두 자성(自性)이 변하여 나타난 것이라 본다. 유식학(唯識學)은 중국의 현장법사와 그의 제자 자은대사에 의해 법상종(法相宗)으로 체계화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측버사가 대표적인 학승이었다.

 

우익대사께서 집지명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정토법문은 심오하고 미묘하여 일체의 희론을 다 소멸시키며, 일체 의견을 다 베어버린다.」라고 하였다. ‘희론戱論’은 바로 연구하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하는 것과 같아서 한마디도 진실한 것이 없다.

 

마음이 청정해질 때까지 염불하여 일체 법문을 초월하게 되면,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한 것이 모두가 희론에 속한다는 말을 할 수가 있다. 오직 한 번의 부처님의 명호만이 일체를 포함하며, 그 나머지 마음을 관觀하거나 화두를 참구하거나 법어로 대화하는 것은 모두 희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염불법문은 오로지 마명馬鳴, 용수龍樹, 지자智者, 영명永明만이 감당할 수 있었으며, 그 나머지 그와 동등하거나 그보다 못한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중국의 8대 종파의 조사이며, 옛날 인도의 대보살이시다.

 

지자대사는 천태종의 조사이며, 영명연수대사는 참선으로 대철대오하여 명심견설 하였다. 그러나 만년에 고개를 돌려 오로지 정토를 넓혀 정토종의 6대 조사가 되었다. 그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이 이야기는 체한諦閑의 후계자 보정寶靜법사가 지은 〈미타요해친문기彌陀要解親聞記〉중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명염불은 지극히 원만하고 단박에 깨닫기 때문에, 어떠한 법문도 모두 부처님의 명호 안에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법상종의 조사인 규기窺基대사 역시 염불법문을 ‘위 없는 대법大法’이라고 말한 것이다. 염불은 하루 내지 칠일이면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법문은 다른 일체의 경론經論과 논論에는 없는 것으로, 오직 계속해서 염불해 나가기만 한다면 다른 방법에 의지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게 된다. - 정공법사

 

* 철오선사는 집지명호에 대해 「이른바 ‘집지명호’란 두 손으로 꽉 받들어 가슴에 새기고 지키는 걸 가리키며, 마음에 굳게 새기고 지녀 잠시도 잊지 않는다는 뜻이며, 혹 한 생각이라도 끊어진다면 이는 집지(執指)가 아니다. [所謂執指名號者 卽拳拳服膺之謂 謂牢持於心 而不暫忘也 稍或一念間斷 則非執持] 라고 하였다.

 

* 우익대사는 〈아미타경요해〉에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지명염불은 원래 간단하고 쉽고 곧바로 질러가는 길이며, 누차 말하지만 지극한 원돈(圓頓)의 법문이다. 생각 생각마다 곧 부처를 이루기 때문에 관상(觀想)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이치(교리)를 참구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 자리에서 당장 원융해지고 밝아져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當知執持名號 旣簡易直捷 仍至頓至圓 以念念卽佛故 不勞觀想 不必參究 當下圓明 無餘無欠] 라고 하였다.

 

* 희론(戱論) : 세속의 쓸데없는 말장난. 언어유희. 진리와 동떨어진 말.

 

정토 염불이 가장 뛰어난 수행법임은 마명보살이 〈대승기신론〉에서 보여주었소. 또 정토 염불이 가장 쉽고 가장 빨리 도달하는 길임은 용수보살이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밝히고 있소. 석가모니불의 후신인 지자대사가 〈십의론十疑論〉을 설하면서 오로지 서방극락에 초점을 맞추었고, 아미타불의 후신인 영명선사는 〈사료간〉을 지어 종신토록 염불을 행하며 가르쳤소. 담란대사가 지은 〈往生論註〉는 고금에 둘도 없이 미묘한 저술이오. 도작대사는 정토삼부경을 이백 번 남짓 강론했으며, 선도화상은 《정토삼부경》에 주석을 달아 대중들에게 염불수행에 전념할 것을 적극 권장하였소. - 인광대사

 

* 용수보살은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불법의 바다에 들어가는 데에는 수많은 문이 있다. 마치 세상의 길에 어려운 길이 있고 쉬운 길이 있는 것과 같다. 육지의 길에서 걸어가는 것은 힘들고, 바다의 길에서 배를 타는 것은 즐거운 것이니 보상의 길도 역시 이와 같다. 부지런히 행하여 정진하는 길이 있고, 혹은 믿음이라는 방편으로서 행하기 쉬운 길로 속히 아비발치에 이르는 길이 있다. 만약 사람이 속히 불퇴전지에 도달하려면 응당 공경심으로 부처님 명호를 꽉 잡고 불러야 한다.」 라고 하였는데, 믿음이라는 방편으로써 행하기 쉬운 길이 바로 이행문(易行門)이며 염불이 이행문인 것이다.

 



'염불수행자료 > 염불수행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정토법문(12)  (0) 2015.05.09
6.정토법문(11)  (0) 2015.05.01
6. 정토법문(9)  (0) 2015.04.17
6. 정토법문(8)  (0) 2015.04.10
6. 정토법문(7)  (0) 201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