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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8)

 

 

여산廬山 혜원법사慧遠法師는 마하반야摩訶般若의 깊은 뜻을 깨달아 동방의 호법보살護法菩薩이라 불렸다. 종일토록 염불하여 세 번 성상聖像을 친견하고 극락에 왕생하였다. 천태天台지자대사智者大師는 《법화경》을 깊이 깨달아 일가一家의 교관敎觀일뿐더러 만대의 종조宗祖이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서방을 향하였고 〈변십종의辯十種疑〉 〈소십육관疏十六觀〉 등의 저술을 남겨 정토를 드러내어 밝혔다.

 

백장대사百丈大師는 마조馬祖에게서 도道를 전해 받은 적자嫡子로서 천하 총림叢林의 공종共宗이었다. 병든 스님을 위해 기도하거나 혹은 죽은 스님을 천도遷都할 때는 언제나 정토로 돌아가게 하였다.

 

청량국사淸凉國師는 화엄조사華嚴祖師의 자리를 이었던 분으로 문수보살의 후신後身이라고도 불린다. 아미타부처님이 바로 노사나盧舍那부처님이라고 지적했으며, 또한《관무량수경》을 해석하여 서방정토를 널리 선양宣揚하였다.

 

영명영수선사永明延壽禪師는 막힘이 없는 변재辨才를 얻어 종문宗門의 초석礎石이기도 한 분이다. 〈사료간四料簡〉을 지어 유독 서방정토를 예찬하였고, 상상품上上品에 왕생하여 명부冥府에서까지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사심신선사死心新禪師는 황룡선사黃龍禪師의 법석法席을 이어받아 종품宗風을 크게 떨쳤다. 정업淨業에 뜻이 간절하였고 권념염불〈勸念佛文〉을 저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과 믿음을 일으키게 하였다.

 

진헐료선사眞歇了禪師는 단하순공丹霞淳公의 법을 이어 조동종曹洞宗의 문하門下가 스님에 이르러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보타산普陀山에 암자를 짓고 염불에 전념하였다. 〈정토설淨土說〉이 세상에 전한다.

 

자수심선사慈受深禪師는 염불에 전념하여 수행의 첩경은 정토만한 것이 없다 하고 서방도량을 세워 입이 쓰도록 대중에게 권고하니, 그를 따르는 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원조본선사圓照本禪師는 도道는 천의天衣를 이었고, 종宗은 설두雪竇를 본받아 법의 우레가 천지를 진동했으며, 송나라 신종神宗과 철종哲宗의 사표師表가 되기도 했던 분이다.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兼修하여 이름이 상품上品에 표시되었다. 中峰本禪師는 고봉高峰화상에게서 법을 받아 배우는 자들이 마치 태산泰山이나 북두北斗처럼 우러러 보았는데, 「선禪이란 정토의 선禪이요, 정토란 선禪의 정토다.」 라고 하였다. 정토를 사모思慕하는 시詩 백수百數를 남겨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장하였다. -연지대사〈往生集〉

 

* 혜원법사는 나태한 제자들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고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전한다. 「석양의 빛은 멀리 비출 수 없다. 다만 아침에 솟아오르는 해처럼 찬란하게 시대를 밝히기를 바랄뿐이다.」

 

* 원효대사는 〈무량수경종요〉에서 「부처님이 설하신 정토는 모두가 여래의 원(願)과 행(行)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저 정토에 왕생한 이들의 자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예토(穢土) 등의 기세계(器世界)가 오직 중생의 공업(共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르다.[所說淨土 皆是如來願行所成 非生彼 者自力小辨 不如穢土外器世界 唯由衆生共業所成]」라고 하였다.

 

* 중국 명대(明代)의 4대 고승중의 한 분인 감산덕청(憨山德淸)대사는 연지대사를 아미타불의 후신(後身)이라고 하였다.

 

* 연지대사는 〈왕생집〉 서문(序文)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왕생했다는 자가 많았다고 하나, 세월이 오래되어 이젠 보기도 듣기도 어렵게 됐다. 그동안 여러 문헌을 본 것 중에서 그 인과가 분명한 것만을 발췌하고 보니, 어느덧 11년 동안에 천여 가지의 이야기를 모으게 되었다. 이에 나는 산자락에 한 칸 초옥을 얽은 뒤 문을 닫아걸고 왕래를 끊었다. 그리고 이 얘기들 중 166가지의 사실을 정리하고 찬(贊)을 붙여 왕생집이라 이름 붙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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