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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9)


 

* 청량국사(淸凉國師) : 중국 당나라 때의 화엄종의 고승. 이름은 징관(澄觀). 화엄뿐 아니라 계율을 익히고, 열 가지의 서원을 세우는 등 수행을 철저히 했다. 내전(內典)은 화엄 이외에 법화, 천태학, 우두선, 남종선, 북종선, 삼론교학을 배웠으며, 외전(外典)은 경전자사(經傳子史)를 비롯한 중국의 구류이학(九類異學)은 물론 인도의 4베다, 5명(明)등을 두루 섭렵했다. 그의 박학다식함은 대흥선사에서 진행된 역경장에 참가하여 6년간 경전 77부를 번역하는데 기여하였다.

 

저서는 총 42종 600여권 가운데 현재 21종 400여권이 남아 있다. 〈임간록(林間錄)에 「조백(棗栢)」거사와 청량징관(淸凉澄觀)국사는 모두 화엄경을 널리 밝히신 분으로 그들의 논소(論疏)는 천하에서 으뜸이었다. 그러나 두 분의 몸가지음은 전혀 달랐다. 조백거사(이통현 장자를 말함)는 거리낌 없이 맨발로 다니며 호탕하고 자유자재하여 모든 일에 걸림 없는 마음을 지녔지만, 청량국사는 꼼꼼하고 엄숙하여 옥을 깎아 다듬듯 하였으며, 오욕번뇌(五慾煩惱)를 두려워하고 10가지 서원[十願]으로 몸가짐을 지켰다.〉」 라고 하였다.

 

* 사심신선사 :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 진헐료선사 : 중국 송나라 때의 고승

* 자수심선사 : 중국 송나라 때 운문종(雲門宗)의 고승.

 

* 원조본선선사 : 중국 송나라 때 운문종의 고승. 〈인천보감〉에 「원조 종본(圓照宗本)선사는 상주 사람인데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여 겉치레를 하지 않았다. 천의의회(天衣義懷)선사에게 귀의하여 헤진 옷에 때 묻은 얼굴을 하고, 물 긷고 방아 찧고 밥 짓는 일을 맡아 보았다. 낮에는 스님네들 뒷바라지에 밤이면 새벽까지 좌선하며 고생을 무릎 쓰고 정진하였는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행하면서 대중의 일도 맡고 있으니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하니 선사는 “한 법이라도 버리면 원만한 공부라 할 수 없다. 결단코 이 생에서 이 몸으로 깨치려는데 감히 고단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라고 하였다.

 

* 중봉본선사 : 중국 원나라 대 고승. 《원각경》 《능엄경》 등을 비롯한 경론은 물론 〈전등록〉을 비롯한 선서(禪書)에도 해박했고 , 유교와 도교를 비롯한 제자서(諸子書), 나아가 시(詩)와 부(賦)에도 뛰어 났다. 「요즘 수행하는 사람들이 영험(靈驗)을 얻지 못하는 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옛날 사람과 같은 진실한 지기(志氣)가 없고, 둘째 생사(生死)와 무상(無常)에 대해 철저히 파고들지 않으며, 셋째 오랜 세월 익혀온 버릇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을 남겼다.

* 위 경문에서 “서방을 항하였다” 라든지 “정토로 돌아가게 하였다”, “정업에 뜻이 간절하였다”는 모두 염불수행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 위 경문의 “선(禪)과 정업(淨業)을 겸수(兼修)하여”는 참선과 염불수행을 아울러 닦았다는 의미다.

 

요즘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선인先人들에게 미치지 못함에도, 아만공고我慢貢高하고 세지총변世智聰辯하여 도리어 선인先人을 비방하면서 염불도 하지 않고 극락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나같은 깊은 학식을 갖춘 자가 만약 불법佛法을 닦는다면 적어도 선禪을 공부하거나 유식唯識 정도는 되어야 겨우 분分에 맞을 것이다. 이런 정토소법淨土小法 따위는 그저 늙은이들에게나 설해야 옳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이런 견해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대세지보살은 등각보살이었으니, 《무량수경》에서 말하기를, 「그는 최존제일最尊第一이니 위신광명이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춘다.」 하였고, 《관음경》에서는, 「그가 걸어갈 때 에는 시방세계가 모두 진동하며, 앉을 때에는 칠보국토가 한꺼번에 요동하며, 아래로 금강불찰金剛佛刹로부터 위로는 광명왕불찰光明王佛刹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량없는 분신의 무량수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두 운집하였다.」 하니, 그의 위신력과 복덕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이 능엄회상에서 도리어 스스로 말씀하기를, 「염불로 말미암아 극락에 태어났다.」하였다.

 

또한 보현보살도 등각보살이었으니, 백옥과 같은 몸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있었다. 《화엄경》에 그가 선재善財를 위하여 십대원왕을 설하여 널리 선재와 화장해중華藏海衆으로 하여금 서방정토에 회향왕생하여 원만불과圓滿佛果를 기약하게 하였던 것이다.

 

용수보살은 능히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으며, 철탑鐵塔을 열고 비밀장秘密藏을 전했던 분이다. 그리고 〈대지도론〉 〈회정론〉 〈중론〉 〈십주비바사론〉 〈대승이십론〉 등을 지었으니, 그의 학문에 대한 조예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입능가경》에서 석가세존이 미리 수기授記하시기를, 「대혜여, 너는 잘 알아야 한다. 부처는 열반 후 미래세에 반드시 나의 법을 부지扶持할 자는 남천축국의 대명덕 비구이니 그의 이름은 용수龍樹이다. 능히 유무종有無宗을 깨뜨리고 세간중에 나의 무상대승법無上大乘法을 드러내며 초환희지初歡喜地를 얻어 안락국에 왕생할 것이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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