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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4. 염불이란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똑똑히 불러

산란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합치되는 것이 염불이다.

 

4. 염불이란

 

염불이란 원래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세히 말하면 부처님의 이름 또는 모습 또는 지혜 또는 공덕 등을 생각하여 잊지 않는 것을 염불이라 합니다.

 

한편, 칭명稱名이란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염불과 칭명은 원래 다른 개념이었는데, 아미타불의 후신이라 불리는 선도화상께서 염불과 칭명을 동일시한 이래로 칭명=염불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칭명이 염불의 전부는 아닙니다. 남회근 선생은 「염불은 입으로 나무아미타불... 하고 외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불법을 비방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정리하면, 염불이란 다음 세 가지를 말합니다.

 

① 부처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는 것

② 소리는 내지 않고 속으로만 부르는 것

③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모습 등을 생각하는 것

 

염불은 주로 ①번을 말하지만, ②ㆍ③번도 당연히 염불에 포함됩니다. ②번은 특히 묵송默誦이라 하는데, 인광대사는 잠자리에 들었거나, 옷을 벗고 있거나, 목욕하거나, 대소변을 보고 있거나,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 있을 때에는 소리를 내는 것은 공경스럽지 않으므로 묵송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①번과 ②번을 합쳐서 칭명稱名염불 또는 지명持名염불이라 부르고, ③번을 관상觀想염불이라 합니다. 여기서 ③번도 당연히 염불에 해당됨을 유의해야 합니다. 중병에 걸려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①번이나 ②번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때 이 사람에게 불보살을 그린 불화나 불상사진을 보여주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보살을 생각하게 하는 것도 염불에 해당됩니다. 마음속으로만 불보살을 떠올려도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남회근 선생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염불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염불에서의 염念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염念의 뜻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지요.

 

일대의 종사宗師이셨던 남회근 선생의 말씀입니다. 「‘염念’은 어떤 일을 마음속에 항상 걸어놓고 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의 부모님이 곧 숨을 거두려 하시는데, 자기는 밖에서 근무하면서 손님을 접대해야 한다고 합시다. 비록 일을 처리하거나 말을 하지만 마음속에는 집에 계시는 부모님이 잊히지 않습니다. 일부러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도 생각이 시종 마음속에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염念’이라 합니다. 염念은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고 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저 입으로만 아미타불...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돈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생각 생각마다 돈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염불이 아닙니다.」라고 하였고, 또 「‘염念’이란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어미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생각마다 부지런해서 잠시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남녀 상이의 연애처럼 서로 그리움이 영원히 맺혀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맞으면서 영감靈感이 서로 통하듯이 해야 합니다. 마음 마음마다 생각 생각마다 아미타불이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남에게 빚을 져서 내일 오후 4시 30분 전까지 은행에 충분한 현금을 예치하지 않으면 수표를 부도내게 된다고 합시다. 당신은 자연히 수표를 부도낸 범인이 되고, 얼마 있지 않아 법원에서는 당신을 구치소에 집어넣으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사실 당신은 그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기 앉아서 염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내일 오후 4시 30분 전에 그 수표가 은행에 돌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걱정입니다.

 

그야말로 잠시라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습니다. 생각 생각마다 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온통 이 일에만 매달려 있으면서 잊히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염念이야말로 우리가 염불할 때 필요한 염念입니다. 마치 임종 직전에 보고 싶은 아들이 도착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넘어가는 숨을 참아가며 마음속에 그리운 마음이 걸려 있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우리는 아들을 그리워하고, 애인을 그리워하는 이 한 생각의 대상을 부처님으로 바꾸기만 하면 됩니다. 안타깝게도 일생동안 염불을 해 왔지만, 내내 이 도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진정한 염불로서의 ‘염念’이란 사실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곧 염한 것이 됩니다. 염불을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녀를 그리워하듯이, 아침저녁으로 생각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마음속에 간직한 채 해간다면 염불 길에 오르기 쉽습니다.」라고 하였고, 중국 근대의 고승이셨던 허운 선사는 「염불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면밀하게 한 자 한 자, 한 구절 한 구절 오롯이 염念해 가야 합니다. 부처가 와도 이렇게 염念하고, 마魔가 와도 이렇게 염念하여, ‘바람이 불어도 들어오지 않고 비가와도 젖지 않을[風吹不入 雨打不濕]’ 정도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날이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염불의 대상은 부처님인데, 그렇다면 부처님[佛]은 누구십니까.

《유마경》은 「부처님은 삼계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며, 삼계의 생사윤회를 벗어났다. 부처님 몸에는 번뇌가 없고, 어떠한 번뇌도 이미 끊어져 다했다.[佛爲世尊 過於三界 佛身無漏 諸漏已盡]」라고 하였고,《화엄경》은 「선남자여, 여래의 공덕은 가려 시방에 계시는 모든 일체 부처님께서 불가설불가설 불찰 극미진수겁을 지내면서 계속하여 말씀하더라도 다 말씀하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으며, 《법화경》은 「항하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불퇴전보살들이 일심一心으로 사유思惟하고 구하여도 부처님의 지혜는 알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부처님은 실상반야實相般若의 참 지혜를 말씀하시는 분이요, 자신이 몸소 깨달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말씀하시는 분이요,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똑같이 말씀하시는 분이요, 중생을 속이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 분이요, 궁극적으로는 일체중생이 다 부처가 되도록 이끌기 위한 가르침을 말씀하시는 분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회근 선생은 또 「부처님은 시방삼세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천상과 인간 등 일체중생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으며, 일체의 수행과 일체의 법문은 물론 사문왜도邪門歪道, 외도外道, 정도正道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에서 부처님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위없는 지혜와 위없는 공덕과 위없는 자비를 갖춘 분입니다. 부처님은 삼계의 일체 중생들의 스승이시자 영원토록 찬탄과 공경의 대상이 되시는 분입니다. 부처님은 업장이 완전히 소멸되고 인과因果가 없는 분입니다. 부처님은 견사혹見思惑과 일체의 습기習氣와 일체의 무명無明을 완전히 끊고 헤아릴 수 없이 기나긴 세월동안 무량한 선법과 공덕을 쌓았으며 일체 생명의 본체가 본래 불생불멸한다는 이치를 원만히 깨달은 분입니다. 부처님은 32상 80종호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三身과 무량백천삼매無量百千三昧와 무량백천다라니와 삼명육통三明六通과 사지四智와 오안五眼과 팔해탈八解脫과 십력十力과 사무외四無畏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등을 원만히 갖춘 분입니다.

 

도선도선 율사는 「시방세계에서 일시에 가랑비를 내려서 많은 시간이 경과해도 한 순간에 물방울의 개수를 부처님은 이미 다 알며, 시방의 강과 바닷가 모두 얼마의 양인지를 알며, 시방의 철위산과 수미산의 대지가 모두 얼마의 무게인지 안다. 티끌먼지처럼 많은 법계法界의 불국토와 혹은 허공계虛空界에 두루 존재하는 중생의 심행心行이 선한지 악한지 다 알며, 중생 하나하나가 어느 겁劫에 부처가 될 것인지를 다 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얻은 최고의 깨달음을 원각원각, 대각대각, 묘각妙覺, 구경각究竟覺, 무상보리無上菩提 등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부처님만의 깨달음을 무상정등정각이라고 하며, 이를 범어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일체종지一切種智라 하는데, 이는 일체의 법을 다 비추고 아는 지혜로서 대원경지大圓境智라고도 부릅니다. 이외 부처님의 지혜를 무루지無漏智(모든 번뇌를 여윈 청정한 지혜), 근본지근본지(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아는 지혜), 무분별지無分別智(올바르게 진여를 체득한 지혜), 권지權智(방편을 써서 중생을 교화하는 지혜)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에게는 10개의 칭호가 있으니, 여래如來/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세존世尊이 그것입니다. 이 외에 일체지자(일체지자 : 일체법에 대해 아는 자), 법왕(법왕 : 진리의 왕), 대웅大雄, 무상법왕無上法王, 공왕空王, 보왕寶王, 대의왕(大醫王 : 중생의 병을 낫게 해주시는 분), 양족존(兩足尊 : 복덕과 지혜 둘을 가진 자), 개도자(開道者 :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는 자) 등도 부처님을 가리는 말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선지식이요, 위없는 스승이신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행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염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조사님들과 고승들께서 이구동성으로 찬탄하시고 권하신 불가사의한 수행법입니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이 길을 따라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염불을 버리고 다른 수행법에 의지하려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다른 법문을 배우려고 하지도 말고, 기웃거려서도 안 됩니다. 오직 염불수행만 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문득 부처님이 경전에서 설하신 말씀들이 다 이해가 되고, 우주와 인생의 의문점들도 훤히 풀리게 될 것입니다. 선종의 조사님들이 남겨놓으신 선문답도 풀릴 것이고, 자기가 죽을 날짜도 저절로 알게 되는 등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성취하게 됩니다. 불교는 대과학이자 대지혜의 성취라고 남회근 선생은 말씀하셨습니다. 죽을 때 큰 짐이 되는 물질이나 명성을 탐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늘 간절히 애가 타도록 부처님만 생각하면서 부처님 이름을 부릅시다.

 

‘나무아미타불’은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광명을 지니신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염불할 때는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字로 해도 되고, “아미타불” 네 자만 염송해도 무방하지만, 처음에는 여섯 자로 하고 점점 네 자만 염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짧을수록 집중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인광대사는 「부처님 생각이 마음속에서 일어나, 소리가 입으로 나오고, 그 소리가 다시 귀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정공법사는 「경經을 읽는 것은 진언眞言을 외우는 것만 못하고, 진언을 외우는 것은 염불을 하는 것만 못하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명호는 단지 네 글자에 지나지 않아 매우 짧아서, 마음속으로 망상이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인광대사는 「염불법문은 설령 교리를 모르고 미혹과 업장을 다 끊지 못했더라도, 단지 믿음과 발원으로 아미타불 명호만 지송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면, 임종 때 틀림없이 부처님께서 친히 맞이해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염불을 할 때는 「내 몸이 연꽃에서 결가부좌하고 부처님은 연꽃에서 나를 접인接引하신다.」는 생각을 한 후에 일심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 합니다.

참고로, 허운선사의 전법제자인 중국의 관정寬淨선사는 「우리의 육근六根 가운데 귀가 제일 영민합니다. 염불을 할 때에는 천천히 하며 소리를 명랑하게 내야 합니다. 염불이 익숙해지면 귀가 스스로 염불하게 되거나 자기의 몸 안에서 저절로 염불하게 됩니다. 그때에 가서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저절로 염불하는 귀담아 들으며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막론하고 귀를 기울여 그 한마디 성호를 명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자성염불自性念佛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오묘한 일입니다. 체내가 자동적으로 끊임없이 부처님 명호를 외우게 되며 오래되면 점점 숙달되고, 자연히 만념을 일념에 귀착시키게 되며, 심령 속의 잡념 망상을 흡수하고 점령하고 개조하고 세척하고 치료하고 정화하고 통일하게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여 서방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법문을 염불법문이라고 하는데, 염불법문=정토법문=연종蓮宗=정종淨宗=정토종淨土宗임을, 또 염불하다=정토를 닦다=정토로 돌아가다=정토에 귀의하다=정토에 의지하다=정토수행을 하다=정업淨業을 닦다 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정토’라는 말과 ‘염불’이라는 말이 같은 뜻으로 자주 쓰인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예컨대, “위대하도다, 정토여!”라는 뜻이고, ‘정토를 꾸짖다’는 곧 ‘염불을 꾸짖다(무시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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