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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94일 본원 비구니의 염불

 

 

조선 중기 명연(明衍)스님의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경상좌도 밀양에 사는 성은 현 씨(玄氏)요, 불명은 본원(本願)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기사년 12월 어느 날 마침 가사 불사 화주를 하는 스님이 시주를 청하였는데, 그녀는 갑자기 신심을 내어 시주를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날 밤 삼경(11시~1시 사이)에 저절로 자기 입에서 염불 소리가 나와 그 소리를 일상의 업으로 삼아 날마다 염불을 계속 하였다. 추우나 더우나, 가고 오고 하면서 밤과 낮이 길고 짧은 지도 모르고 큰소리로 염불을 하였다.

 

하루 밤낮 3만 번씩 염불하며 36개월이 되는 신미년 12월 24일 밤 삼경에 염불을 하고 있는데, 이때 서쪽으로부터 오색의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 한가로이 날리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악기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며 아름다운 누각 가운데 세 송이의 꽃이 있었다.

그리고 그 꽃 위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계셨다.

현 씨가 부처님을 우러러 보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염불하기를 3년을 채웠고 부처님 뵙기를 발원하면서 간절히 수행하므로 내가 너의 앞에 나타나 너를 위하여 말하는 것이다. 어서 스승을 정하여 참회하고 출가하여 산으로 들어가거라. 너의 자손과 밭과 땅과 재물이 태산같이 많지만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라.”

 

현 씨는 그 말을 듣고 잊어버리지 않고 믿고 받들어 출가하여 계(戒)를 받은 지 27년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며 염불하는 동안에 25번이나 부처님을 뵈었고 법문을 들었다.

그는 하루 저녁에 서쪽을 향하여 50번 씩 예배하며 일념으로 항상 염불하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함께 그를 본받아 염불하게 되었고, 재가 불자들도 하루 동안 입산 출가하여 초당에 머물면서 향을 사르고 연비를 하며 더욱 열심히 염불하면서 부처님의 원력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서원하였다.

 

현 씨는 목숨이 마치려는 때에 자손들을 모아 놓고 유언을 하였다.

“나의 목숨은 오늘 밖에 없다. 너희들은 모두 나의 말을 들어라. 나를 화장한 후에 《염불보권문》을 발행하여 일체 만인을 모두 극락정토로 인도하도록 해라. 나는 지금 부처님의 원력으로 마음이 즐겁기 짝이 없다. 나는 이제 서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그들 앞에 아미타 부처님이 나타나 말씀하였다.

“너희들 대중은 여러 경전의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믿고 받들어라. 무수한 방편을 설하였느니라. 이러한 까닭에 상근기와 중근기는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이 견고하여 득도하지만 하근기의 말법시대에는 여러 문이 열려 있거나 혹은 닫혀 있기도 하느니라. 이 말법에 고통과 번뇌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설하겠다. 이 시대에 일어나야 할 가장 적당한 수행은 정토문이니, 왕생을 구하며 염불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니라.”

 

이때 현 씨는 특별히 막내아들인 각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입산 출가하여 불도를 위하여야 할 것이며, 재물을 내어 판(板)을 새겨 《염불보권문》을 발행하여 일체 노소, 남녀 등에게 아미타불 염할 것을 권하여라. 매일 이른 아침에 서쪽을 향하여 예불 삼배를 하고 다음에 40번씩 염불하는 자는 내가 가는 국토의 연꽃에 모두 태어날 것이다.”

각성은 어머니 현 씨의 말씀을 듣고 받들어 봉행하여 《염불보권문》을 새로이 새겨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유치하였다.

본원 비구니 현 씨는 73세에 왕생극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