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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91일 보현행원품, 무애거사, 일타스님 외증조 할머니

 

 

보현행원품

 

《화엄경》의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서는 십대원왕(十大願王)으로 극락에 귀향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보현행원품〉에는 보현보살이 “원하옵건대 이 목숨이 마치려 할 때 모든 장애가 다 없어져서 찰나 동안에 아미타불을 친견하옵고, 그 자리서 곧장 극락세계에 왕생하오며, 그리하여 저 부처님의 수기 받잡고 수없는 백구지의 화신 나투어 광대한 지혜의 힘 시방에 두루하여 온갖 중생세계를 널리 이익되게 하여지이다.”라고 하였다. 염불로 극락왕생하는 법문이 화엄경의 일생 성불의 최후 종착역임을 말수 있다.

 

연지(蓮池)대사와 우익(蕅益)대사 같은 분들도 모두 이 경전을 극진히 찬양하였다. 특히 우익대사는 《아미타경요해》에서 이렇게 극찬하였다.

“여래의 한 평생 교화 가운데 오직 《화엄경》만이 일생의 원만함을 밝히셨다. 일생의 원만함의 원인은 맨 끝에 보현보살이 십대원왕으로 극락세계에 귀향하도록 인도하며, 선재동자(善財童子)와 모든 화장해중(華藏海衆)에게 함께 이 길로 정진하라고 권청함에 있다. 오호라! 화엄에서 밝히신 뜻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천하 고금에 이를 믿는 자는 적고 의심만 많아 말은 번잡하고 뜻은 애매모호하도다. 내 단지 심장을 갈라 피를 뿌리고 싶을 따름이다.”

 

그래서 무은(無隱)대사는 “《화엄경》은 넓게 설한 아미타경이고, 아미타경은 요약한 《화엄경》이다.”라고 말하였다.

두 대사의 말을 볼진대, 경전을 보면서 원만하게 단박 꿰뚫는 혜안이 없으면, 부처님의 자상하고 깊은 은혜를 얼마나 많이 헛되게 지나치는지 알 수 없다.

-《가언록》

무애(無碍)거사

 

무애(1920~2004)거사의 휘는 돈각(敦珏)이요, 성은 서(徐)씨이며 무애는 법호이다. 거사는 대한민국 학계에 명망 높은 대가로서 동국대와 경북대 총장을 지내셨고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도 지내셨다. 또 독실한 불자요 덕망 있는 재가불자의 지도자로서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에 재직하기도 하였다.

 

거사는 일찍이 일본 경도(京都)대학 법학부에 유학 도중 일본 정토종 광명수양회(光明修養會)와 인연을 맺으면서 염불 수행을 하게 되었는데, 광명회 법당에서 염불하다가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성취하여 부처님을 친견한 경험을 평생 지니고 살면서 일생동안 정토 수행에 매진하였고, 재가불자로서 불교의 대중화 · 생활화 · 현대화를 앞장서서 이끌어갔다.

 

거사는 집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예불과 독경, 108배를 올리며 지성으로 예배하였고, 또 정토사(淨土寺)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결사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염불의 대중화에 힘썼던 분이다.

 

일타(日陀)스님 외증조 할머니

 

몇 년 전 1999년 11월 29일에 입적한 큰스님이었던 일타스님의 《불자의 마음가짐과 수행법 》이라는 법어집(法語集) 제2장 ‘불교의 4대 수행법’중 ‘참선과 염불’이라는 제목의 염불왕생문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나의 외증조 할머니는 나이 일흔에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시작하여 여든여덟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한결같이 염불하였다. 살아생전에도 가끔씩 신통한 일을 보였던 외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7일장을 지내는 동안 매일같이 방광(放光)을 하는 것이었다.

낮에는 햇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밤이 되면 그 빛을 본 사람들이 ‘불이 났다’며 물통을 들고 달려오기를 매일같이 하였다. 그리고 문상객으로 붐비는 집 안 역시 불을 켜지 않아도 대낮같이 밝았다.

그야말로 외증조 할머니는 염불을 통하여 아미타 부처님의 무량한 빛을 얻었고,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우리 집안 친가(親家) · 외가(外家) 41인은 모두 승려가 되었다.”

 

그 자손이 되는 41인이 집을 떠나 모두 스님이 되었다니 참으로 경탄할 일이다. 한 집안에서 아들 하나 스님이 되어도 9족이 천상에 가서 난다[一子出家九族生天]고 하는데, 한 사람 두 사람도 아닌 41인이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다 하니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그 자손들이 직접 그 영험을 보고 얼마나 크게 감동하였기에 그 많은 자손들이 스님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직접 보지 않은 우리들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미타불’ 염불의 공덕은 이토록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