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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92일 서뢰, 원친원, 정진비구니의 염불

 

 

서뢰(徐雷)의 염불

 

서뢰는 중국 절강성 낙청 사람으로 음주와 야연을 좋아하여 먹고 마시고 놀기를 하루도 그칠 줄 모르는 이었다. 경신년(1920) 정월 보름날 밤에 어떤 한 사람의 수족을 네 기둥에 묶어 놓고 두 귀졸들이 몽둥이로 타작하듯 그를 두들겨 패는데,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뢰가 가까이 가서 본즉 곧 맞는 이가 자기인지라 놀라고 두려워하는 가운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아픔을 참을 수 없어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때 마침 공중에서 염불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같이 따라서 염불을 하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러나 온몸은 아직도 아프고, 대단히 무서워서 평소에 방탕했던 일을 생각하니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곧 크게 반성하면서 “내가 들으니 불도를 배우면 가히 생사를 마칠 수 있고 지옥의 괴로움을 면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하고, 그 후부터 앞서 저지른 잘못을 몹시 후회하고 매일 아미타불 명호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을 외우더니, 하루는 저녁에 그의 처에게 말하기를 “내일은 불보살님이 오셔서 나를 접인(接引) 하실 터이니, 방을 깨끗이 하고 분향을 준비하시오.” 하고 이튿날 목욕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서 염불하며 갔다.

 

 

원친원(源親元)의 염불

 

옛날 일본 안방(安房)지방의 장관이었던 원친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소 전생에 범했던 죄를 후회하고 조석으로 극락왕생을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검비위사(檢非違使)로 있었던 동안에 은혜를 베풀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해주는 일이 많았다. 그는 동산(東山) 근처에 당을 세우고 아미타 삼존을 모셨다. 그리고 그곳에 비구의 상을 하나 만들어서 그 이름을 아법(阿法)이라고 붙였다. 이것은 자신이 출가할 때의 이름이었다.

 

그는 안방의 장관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고, 다만 불교 의식만을 하였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그 나라에 다섯 칸의 당을 만들고 일장 육척의 아미타불을 모셨다. 나라 안의 백성들에게 널리 염불을 권장해서 염불을 하는 횟수에 따라서 정부에 상납하는 조세를 면제해 주었다. 쌀 10말에 십만 번의 염불을 시켰던 것이다.

 

만약 죄를 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중에서 염불하는 자를 가려내어 죄를 용서해 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라는 풍요로워지고 백성들은 이 나라의 장관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복종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염불하는 소리가 집집마다 끊어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이것이 이웃나라에 까지 전해져서 그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존경하기도 하였다.

 

장관의 임무를 끝내고 상경할 때에 이별을 슬퍼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부모와 헤어질 때 같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수도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삼정사(三井寺)로 가서 삭발하고 출가하였다.

그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하늘의 음악이 귀에 들리는 갖가지 징조가 나타나 왕생을 이루었다는 것이 《후습유왕생전(後拾遺往生傳)》에 실려 있다.

 

 

정진(淨眞)비구니의 염불

 

정진은 당나라 때의 비구니로서 장안의 적선사(積善寺)에 있으면서 열성 있고 진실하게 염불하였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다섯 달 동안에 열 번이나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였고, 또 보배 연꽃 위에서 동자들이 유희하는 것을 보았으니, 나는 반드시 상품상생(上品上生)하게 될 것이다.” 하고 서향하여 가부좌하고 조용히 입적하니 서광이 절 안에 가득 찼었다.

-《연종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