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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82일 승예, 준식, 원조스님, 법신부인

 

 

승예(僧叡)스님

진(晋)나라 때의 장악 출신으로 여산에 들어가 혜원(慧遠)에 의지하여 염불의 정업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가고 서고 앉고 눕고 간에 서쪽을 등지지 않더니, 원가 16년에 병 없이 문득 대중스님들을 모아 작별을 고하고, 목욕한 후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합장하고 입적하니 오색의 향연(香煙)이 온 천지에 가득하였다. 세수는 67세였다.

 

-《연종집요》

 

준식(遵式)스님

준식(964~1032)스님은 중국 송나라 분이며 지백(知白), 선혜(禪慧) 또는 자운참주(慈雲懺主)라고도 한다. 처음에 선을 배우면서 계율을 겸하여 닦았다. 뒤에 천태산 국청사의 보현보살상 앞에서 한 손가락을 태워 천태교학 연구하기를 맹세하여 사명산 보운 의통에게 천태교를 배우고, 지례(知禮)와 사귀었다.

 

그 뒤 천태산의 서편에 암자를 짓고 대중과 함께 염불삼매를 닦았다. 그는 《왕생정토결의행원이문(往生淨土決疑行願二門)》을 저술하여 선종을 비판함과 동시에 또한 유심정토(有心淨土)의 설을 주창하였고, 《관무량수경소》와 《아미타경소》를 저술하여 천태의 설을 이어받으면서 선을 비판하고 지례의 설도 논파하며 염불에 힘썼다. 명도 1년에 세수 69세로 입적하였다.

 

법신(法信)의 염불

송나라 풍 씨 부인은 이름이 법신이다. 어렸을 때 병이 많더니 시집가서는 더욱 심하여 의원도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유명한 수심 선사(守心禪師)를 찾아갔더니, 《보현행원품》과 《관무량수경》을 주며 말하였다.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면서 이 경들을 독송하시오”

법신은 스님의 말씀과 같이하며 10년 동안 경들을 독송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병도 낫고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임종 때 “성인의 가르침에 어찌 거짓이 있으리오. 내 서방정토를 보건대 《화엄경》과 《관무량수경》에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도다.”하고, 서방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서 죽었다.

 

인연 따라 지은 업(業)대로

허다한 때에 부질없이 늙은 소가

밭을 가는 것같이 되었도다.

몸과 마음 다 소멸되어 돌아가노니

코뚜레 끼는 것은 면하였구나.

 

-《화엄경 영험록》

 

원조(元照)대사

원조(?~116)스님은 중국 전당 출신이며 율종의 스님이다. 자는 잠여(湛如)이고 호는 안인자(安忍子)이다. 처음 율사에게 계율을 배우고 뒤에 천태의 교학과 관심법(觀心法)을 연구하였다. 항상 베옷을 입고 석장을 끌고 발우를 들고 시가에서 걸식하며 지냈다.

 

만년에는 서호 영지의 승복사에서 30년을 지냈는데, 스님의 가르침을 받는 도속(道俗)이 언제나 300여 인이 있었다. 일찍이 정토에 귀의하는 것을 가벼이 여기더니 후에 중병을 얻어 천태 대사의 《십의론》을 읽고는 정토염불을 독신하여 염불에 정진하였으며, 정토염불을 크게 펼쳤다. 정화6년 세수 69세에 입적하였고, 시호는 대지(大智)율사이다. 정토교의 저서로 《관무량수경소》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