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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72일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신라시대 구사군(지금의 경남 창원시)북쪽에 산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며 산줄기가 수백 리에 뻗쳐 있어 정말로 아름다운 큰 산이 있는데, 이름이 백월산(白月山)이었다.

 

이 산의 동쪽으로 3천보쯤 되는 곳에 선천촌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노힐부득(努肹夫得)이요, 또 한 사람의 이름은 달달박박(怛怛朴朴)이었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속세를 초월한 높은 이상을 지녔으며 서로 좋은 친구 사이였다. 스무 살이 되자 동북쪽 고개 밖에 있는 법적방(지금의 창원)에 가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얼마 후 서남쪽 치산촌 법종곡(法宗谷)의 승도촌(僧道村)에 있는 오래된 절이 수양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는 함께 가서 대불전(大佛田), 소불전(小佛田)이라는 두 마을에 각각 살았다. 부득은 회진암(懷眞庵)에 살았고, 박박은 유리광사(瑠璃光寺)에 머물렀다. 이들은 모두 처자와 함께 살면서 생계를 꾸릴 일을 하며 서로 오갔다. 그러면서도 정신수양을 하며 속세를 떠날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드디어 의기가 투합하여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갔다.

 

박박 스님은 북쪽 고개의 사자암을 차지하여 판잣집 8척 방을 만들고 살았으므로 판방(板房)이라 하고 부득 스님은 동쪽 고개의 무더기 돌 아래 물이 있는 곳을 차지하여 역시 방을 만들어 살았으므로 뇌방(磊房)이라 하였다.

이들은 각각 암자에 살면서 부득은 미륵불을 성심껏 구했고, 박박은 아미타불을 정성껏 염송하고 있었다.

 

그런 지 3년이 못 되어 709년 4월8일은 성덕왕 즉위 8년째 되는 해였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한 낭자가 난초 향기를 풍기면서 갑자기 북쪽 암자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박박은 말하였다.

“절은 깨끗해야 하는 곳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어서 여기서 떠나 주시오.”

그리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낭자는 다시 부득 스님을 찾아가서 전과 같이 청하자 부득은 말하였다.

“이곳은 여인과 함께 있을 곳은 아니지만 중생의 뜻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까지 어두워졌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이에 그를 맞아들여 암자 안에 있게 하였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 밑에서 고요히 염불을 하였다.

 

밤이 깊었는데 낭자는 부득을 불러 말하였다.

“내가 불행히도 마침 산고(産苦)가 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짚자리를 준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부득은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은근히 촛불을 비추어 보았더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 다시 목욕하기를 청하였다. 부득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해서 마지못하여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는데, 이미 통 속 물에서 향기가 강하게 풍기면서 금물로 변하였다. 부득이 크게 놀라자 낭자가 말하였다.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득은 마지못해서 그 말대로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결이 금빛으로 변하며 그 옆을 보니 졸지에 연화대 하나가 생겼다.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관세음보살인데, 대사들을 도와 대보리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이 말을 마치더니 이내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박박은 ‘부득이 어젯밤에 틀림없이 계를 범했을 것이니, 가서 비웃어 주리라.’ 생각하고 가서 보았는데,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 미륵 존상이 되어 광명을 발하고 있었다. 박박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말하였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셨습니까?”

 

부득이 그리 된 까닭을 자세히 말해주자, 박박은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저는 아직 미혹하여 대성인을 만났는데도 도리어 대우하지 못했습니다. 큰 덕이 있고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루셨으니, 부디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마시고 저를 제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득이 말하였다.

“통속의 금물이 아직도 남았으니, 목욕함이 좋겠습니다.”

 

박박이 목욕을 하여 무량수불이 되었다. 두 부처님이 서로 엄연히 마주하고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 보고 감탄하면서 예배를 올렸다. 두 부처님은 그들에게 불법의 요지를 설하고 나서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경덕왕 즉위 14년(755) 왕이 이 일을 듣고 757년에 신하를 보내 큰 절을 세우고 이름을 백월산 남사(南寺)라 하였다. 764년 7월15일에 절이 완성되자, 다시 미륵존상을 만들어 금당에 모시고 편액을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 하였으며, 또 아미타불을 주조하여 강당에 모셨는데 남은 금물이 모자라 몸에 전부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미타불 상에는 역시 얼룩진 흔적이 있었다.

그 편액은 현신성도무량수전(現身成道無量壽殿)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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