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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68일 법연스님

 

 

법연(法然:1133~1212)스님은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개조(開祖)이다.

휘는 원공(圓空)이고 호는 법연방(法然房)이다. 9세 때 부친의 유언에 따라 출가하여 13세 때 비예산 원광(願光)문하로 들어갔으며, 이어 황원(皇圓)에게 대승계를 받고 천태를 배웠다. 그는 학문에는 뛰어났으나 불교 교리를 납득할 수 없어 18세 때 흑곡(黑谷)으로 들어가 은거하여 예공(叡空)에게 배웠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므로 24세 때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명한 스승을 찾아가 각 종파의 깊은 뜻을 참구하였지만 해답을 얻지 못한 채 다시 흑곡으로 돌아와 보은장(報恩藏)에서 대장경을 열람하였다.

 

43세 때 드디어 중국 선도(善導)의 《관무량수경소》를 읽다가 염불의 길을 발견하고 지금까지의 의문의 구름이 걷히듯 환히 해결되었다. 이것이 전수염불종(專修念佛宗)의 개종이다.

 

드디어 동산 길수(吉水)에 암자를 짓고 사람들에게 아미타불의 염불을 권하였다. 종래의 일본불교는 자력(自力)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구한 것에 반해, 법연은 번뇌를 끊지 못한 범부를 위해 아미타불의 구제가 있다고 하여 오로지 염불할 것을 설하였다.

 

54세 때는 천태종 현진(顯眞)의 초청으로 대원승림원에서 전수염불의 가르침을 담론했는데,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법연에게 귀의하였으며, 그 명성이 널리 퍼졌다. 66세 때 법연은 전수염불의 교리를 조직화하기 위해 《선택본원염불집(選擇本願念佛集)》을 저술하였다.

 

한편 구불교의 비판도 심했다. 1204년에는 천태종의 승려들이, 다음해에는 구불교의 8종파(宗派)가 조정에 똑같은 호소문을 올려 1207년 2월에 전수염불 정지 명령이 내려지고, 법연은 75세의 나이에 환속되어 토좌(土佐)로 유배되었다. 법연은 그해 12월에 사면되었지만 수도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대판의 승미사(勝尾寺)에 머물렀다. 4년 후인 79세 때 겨우 수도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어 귀환했으나 고령과 피로로 인해 다음해 정월에 80세로 입적하였다.

 

법연은 원신(源信)의 《왕생요집》에 근거하여 정토사상을 심화시키고, 중국 선도의 《관무량수경소》에 의해 구칭(口稱)염불의 한 가지만을 택하여 전수염불을 확립하였다.

 

이리하여 법연은 정토종이라는 종파를 세우고,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과 세친의 《정토론》을 소의경론으로 삼았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내려오는 정토종의 계보를 세워 일본의 전수염불이 끊이지 않고 현재에 이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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