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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65일 서산대사

 

 

서산(西山: 1520~1604)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이요, 호는 청허(淸虛)이다. 서쪽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므로 서산(西山)이라 하고, 또 금강산 백화암에 오랫동안 계셔서 백화도인(白樺道人)이라 하며, 선교 양종 판사의 자리를 사임한 후에는 퇴은(退隱)이라 하였다.

 

대사는 평안도 안주 태생이며 일찍이 9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0세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함께 공부하던 동문들과 지리산에 들어가 경전을 공부하다가 선가(禪家)의 법을 깨닫고 숭인 스님에게 출가하였다.

그 후 명산 제찰을 찾아다니며 수도하여 도솔산 학묵 대사에게서 인가를 받았고, 어느 날 벗을 찾아 남원 땅을 지나다가 대낮 닭 울음소리를 듣고 크게 깨쳤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승병을 이끌고 관군을 도와 공을 세워 세상에 더욱 명성이 떨쳐졌다.

 

대사는 한국 선맥(禪脈)의 한 줄기를 이룬 대선사로 추앙 받고 있지만 그의 저술을 통해 염불 법의 깊은 뜻도 전하였다. 대사의 저서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염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염불이란 무엇인가? 입으로만 외우면 송불(誦佛)이요, 마음에 두고 해야 염불(念佛)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데 아무 도움이 없다.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를 생각하여 잊지 않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분명히 불러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에서 서로 합치되는 것이 염불이다. 오조 홍인 스님이 이르기를 “본래의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육조스님은 “다른 부처님을 생각하여서는 생사를 면치 못하며, 자신의 본마음을 지키면 저 언덕에 이른다.”고 하시고, “부처는 자신의 성품 가운데서 찾을 것이요,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미혹된 사람은 염불로 왕생을 구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할 뿐이다.”하였으며, 또 “대저 중생이 마음을 깨우쳐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위에서 말씀한 여러 어른들은 본심을 바로 가리킨 것이요, 다른 방편은 없었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진실로 그렇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극락세계가 실지로 있으며, 아미타 부처님은 48대원이 있어서 누구든지 열 번만 염불하면 이 원력(願力)에 힘입어서 연꽃 태속에 가 태어나고 바로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이 다 같이 말씀하셨고, 시방(十方)의 보살들도 모두 그곳에 왕생하기를 원하였다. 하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이 분명하게 전해오고 있으니, 바라건대 공부하는 이들은 부디 잘못 알지 말고 열심히 하고 열심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옛 성인이 말씀하기를 “염불한 마디에 천마(天魔)들은 가슴이 서늘해지고 그의 이름이 저승 장부에서 지워지며 연꽃이 금 못에서 피어난다.”고 하셨다. 또 참법(懺法)에서 말하기를 “자기의 힘[自力]과 남의 힘[他力]이 있는데, 하나는 더디고 하나는 빠르다.”고 하였다.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이 이제 나무를 심어 배를 만들어서 간다면 더디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자기의 힘에 비유한 것이요,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이 배를 빌려 바다를 건넌다면 빠르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원력에 비유한 것이다.

 

또 세간에서 어린 아이가 물이나 불의 위험에 빠졌을 때에 큰 소리로 부르며 절규하면 그의 부모가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와 구원해 주는 것처럼,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 큰소리로 염불하면 곧 부처님이 신통을 갖추어서 단연코 오시어 맞이한다. 이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자비는 부모보다 뛰어나고 중생이 겪는 생사의 고통은 물이나 불의 위험보다 심하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의 마음이 정토[唯心淨土]인데 다시 정토에 나기를 바랄 것이 없으며, 자기의 성품이 아미타불[自性彌陀]인데 아미타불을 보려고 애쓸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옳은 듯 하면서도 그른 것이다. 저 부처님은 탐냄과 성냄이 없는데, 나도 그럼 탐냄과 성냄이 없는가? 저 부처님은 지옥을 바꾸어서 연꽃 세계로 만들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데, 나는 죄업으로 항상 지옥에 떨어질까 겁만 내거든 하물며 그것을 바꾸어 연꽃이 되게 할 수 있는가? 저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계를 눈앞에서 보시는 듯한데, 우리는 담 밖의 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시방세계를 눈앞에서 볼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마다 성품은 비록 부처라 하더라도 실지 행동은 중생이므로 그 이치와 현실을 말한다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때의 배짱으로 영원히 악도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마명(馬鳴)과 용수(龍樹)는 다 조사(祖師)이지만 모두 분명히 가르침을 펴서 깊이 왕생을 권하였거늘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왕생의 길을 닦지 않을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어 십만 팔천 국토를 지나가야 한다.”고 하신 것은 우둔한 근기를 위하여 현실을 말씀하신 것이요,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않다. 곧 마음이 부처이다.”라고 하신 것은 영리한 근기를 위하여 성품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가르침에는 방편과 진실이 있고, 말씀에도 드러남과 감추어짐이 있다. 만일 앎과 행이 상응한다면 멀고 가까운 것이 모두 함께 통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의 문하에도 역시 ‘아미타불’을 부르는 이가 있었고, ‘주인공(主人公)’을 부르는 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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