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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63일 나옹선사

 

나옹(懶翁: 1320~1376) 선사는 고려 말 때의 스님으로 이름은 혜근(惠勤)이고 호는 나옹이며, 당호는 강월헌(江月軒)이다.

영해 출신이며, 20세 때 이웃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많은 이들에게 물었으나 시원하게 아는 이가 없었으므로 비통한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에 가서 요연(요연)에게 출가하였다.

 

요연이 물었다.

“여기 온 것은 무슨 물건이냐?”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습니다만, 보려하여도 볼 수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수 없나이다.

“나도 너와 같아서 알 수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보아라.”

그리하여 스님은 그곳을 떠나 여러 곳으로 떠돌아다니다가 1344년 양주 회암사에서 4년 동안 좌선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중국 원나라 때 북경에 가서 지공(指空)선사를 뵙고 개오한 바 있었고, 2년 동안 공부하였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서 법의와 불자를 받고, 사방을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은 뒤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았다.

 

칙명으로 대도(大都)의 광제선사에 있다가 1358년 귀국하여 가는 곳마다 법을 설하였다. 1379년 정월 지공의 영골이 화엄사에 도착하자 영골에 예를 올리고 광명사에서 안거 하였다. 9월에는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승려들을 시험하는 공부선(工夫選)을 관장하였다.

 

공민왕 20년(1371) 8월에 왕사로 책봉되었고, 우왕 2년(1376)봄에는 회암사에서 중창불사를 마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 번잡하였으므로 밀양 영원사로 가는 도중 여주의 신륵사에서 세수 57세, 법랍 37세로 입적하였다.

 

스님은 대선사였으나 민중을 위해 염불 법문을 권장한 선문과 정토문의 대선지식이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권하는 <서왕가(西往歌)>를 지었고, 또 <승원가(僧元歌)>를 지어 일상생활 가운데서 실천할 수 있는 염불법을 알기 쉽게 가르쳤다. 그 노래들 가운데 두어 구절씩을 옮겨본다.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권하는 <서왕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염불 않는 중생들아, 몇 생(生)이나 살려고

세상 일만 탐착하여 애욕에 잠기는가.

백 년 동안 탐낸 재물 하루아침의 티끌이요

삼 일 동안 염불하면 백천만겁의 보배일세.

 

아! 이 보배, 천겁을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만세에 이르러도 길이 값진 보배로다.

하늘과 땅이 넓다 한들 이 염불에 미치겠고

해와 달이 밝다 한들 이 염불에 비길 건가.

 

또 ‘불제자의 근본이 되는 노래’라는 뜻을 가진 <승원가>는 염불을 말하는 것인데, 이 <승원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염치없이 일생 동안 말 잡고 소를 잡은

도살장의 극악인(極惡人)도 임종에 염불하여

지옥 보(報)가 소멸되어 극락으로 바로 갔네.

 

신심으로 염불하여 선망 부모 천도하고

일체 중생 제도하며 세상사 다 버리고

연화선(蓮華船)을 얻어 타고 극락으로 어서 가세.

 

그리고 스님은 ‘염불하는 이들에게 보인다[示諸念佛人]라는 제목으로 남긴 8수(首)의 게송중 제 7수와 8수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몇 겁(劫)이나 괴로운 육도(六道)를 돌고 돌았던가.

금생에 받은 인간 참으로 다행일세.

권하노니 여러분! 어서 아미타불 염불하소.

부디 이 좋은 때를 놓치지 말게.

 

육도윤회를 어느 때나 그칠런가.

떨어질 곳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네.

오직 염불에만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상 번뇌 탈탈 털고 내 고향에 돌아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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