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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61일 원묘국사

 

 

 

원묘 요세(圓妙了世 : 1163~1245)국사는 고려 스님이고 신변현 사람이며 자는 안빈(安貧)이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 승선(僧選)에 뽑혔다. 처음 영동산 장연사에서 개당 설법하였고, 당시 조계의 목우자(牧牛子)가 회불갑에 있으면서 참선하기를 권하였다. 목우자와 법우가 되어 수선사에 참여하여 정진하다가 얼마 후에 보조국사를 떠나 천태 교관에 의한 염불수행을 결심하고 염불에 매진하기로 하였다.

 

강진의 신도 최표 등의 청으로 강진군 남해산 옆 만덕사 옛터에 80여 칸의 가람을 개창(1211~1216)하여 그곳에 백련결사(白蓮結社)를 개설하였다. 이곳에서 나이 70세인 1232년부터 보현 도량을 열어 법화삼매를 닦아 정토왕생을 구하였으며, 천태삼매의 이치에 의해 법화참(法華懺)을 닦는 것을 행법으로 삼아 결사(結社)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때 참여한 대중으로 직접 제도한 스님 38명 등 사부대중이 3백여 명이었으며, 개경에서 내려온 유학자도 수십 명이었다.

스님은 지극히 생활이 검소하여 방에는 항상 세 벌의 옷과 발우 하나뿐이었으며, 스스로 지관(止觀)을 행하고 독송하며 가르쳤다.

후에 몸은 늙었으나 참선하는 여가에 날마다 《법화경》1부, 준제진언 1천편, 아미타불 1만 번을 매일 쉬지 않고 외웠으며, 밤에는 불을 켜지 않았고 요도 깔지 않았다.

 

스님은 83세 되던 해 6월 그믐날 감원 스님을 불러 “내가 유행할 때가 되었으니, 대나무로 만든 평상[床]을 하나 만들어다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곧 평상을 만들어 드렸더니, 그 위에 앉아 보고는 대단히 만족하시며 칭찬을 많이 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7월6일이 되었는데, 만덕사 별원에서 스님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하루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입정(入定)하고 있었다.

 

날이 저물 때 수제자 천인(天因)을 불러서 불승의 대의를 부탁하여 이르고 “이젠 가을이 되어서 나의 갈 길에 걱정이 없어졌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천인이 “스님의 동정이 평일보다 조금 다르십니다. 무슨 일이십니까?”하고 묻자, 스님은 말하길 “내가 가려고 한 지가 벌써 오래되었지만, 날이 너무 더워서 너희들에게 큰 고생이 되겠기에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제는 입추가 되었으니 아무 걱정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새벽 축시(1시~3시)쯤 되어서 물을 가져오라 하여 다시 세수를 하고 법복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한 뒤에 경쇠를 치게 하여 대중을 모아놓고 말하였다.

“오십 년 동안 산중의 썩은 물건이 이제는 간다. 여러분은 아무쪼록 법을 위하여 많은 노력하시오.”

그러면서 이별을 고하였다.

천인이 “임종할 때 선정에 들어있는 마음이 곧 정토인데, 가시기는 어디를 가신다고 하십니까?”하고 물었더니 요세 스님은 “이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당처에 현전하나니, 나는 감이 없이 가고 그대는 옴이 없이 오니라. 중생의 마음과 부처의 마음이 결합하니, 실로 마음 밖의 일이 아니냐?” 하고는, 마음을 거두고 선정의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으므로 혹시 입정하였는가 하여 곁에 가까이 가서 본즉 벌써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에도 얼굴이 이상하게 희고 수족이 생전과 같이 부드러웠으며, 머리가 오래도록 식지 않고 따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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