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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70일 발징화상

 

 

발징(發徵: ?~796)화상은 신라 스님이다. 경덕왕17년(758)에 건봉사(옛 이름: 원각사)주지로 있으면서 큰 서원을 세워, 랑순 등 31인을 청하여 미타만일회(彌陀萬日會)를 설치하여 지성으로 염불 수행을 하였는데, 향도(香徒)가 1,820인이었다. 그 중 1,700인은 죽과 밥을 담당하는 시주자가 되어 해마다 집집을 돌아다니며 백미 1말, 기름 1되, 오종포 1단색을 오랜 기간 동안 함께 마련하였다.

 

787년 7월 17일 한밤중에 큰비가 쏟아져 도량 밖까지 넘치더니, 아미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두 분이 자금연대(紫金蓮臺)를 타고 문 앞에 이르러 금빛의 팔을 펴 염불하는 대중을 맞이하였다. 부처님은 대중을 거느리고 반야선(般若船)에 올라 48원을 부르면서 극락세계로 가서 상품상생을 명하였다.

 

이때 발징 화상은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금성에 도착하여 낭무아간의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큰 빛이 그 방을 비췄으므로 놀라 일어났다. 관세음보살이 발징 화상에게 말했다.

“그대 도량의 스님들은 부처님의 인도로 서방정토의 상상품(上上品)에 왕생하였으니, 빨리 가보아라.”

발징 화상이 즉시 가려고 하자 낭무아간이 말하였다.

“스님은 처음 발원하실 때 우리 어리석은 중생을 먼저 제도한 후에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적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거늘 오늘 우리들을 버리고 어찌 혼자 가시려합니까?

낭무아간은 온몸으로 땅을 치면서 통곡하였다.

발징 화상은 이에 낭무 등을 거느리고 31명의 스님들을 가서 보니 모두 육신은 그대로 두고 등화(登化)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도량을 향하여 1,300여 번 절을 하고난 뒤 그들의 다비식을 하였다.

 

그리고는 향도들의 집을 두루두루 돌아다녀 보았더니, 913인은 도량의 스님들과 같은 시간에 단정히 서쪽을 향해 왕생하였다. 나머지가 907인이었는데, 화상은 그로부터 7일 후에 또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였다.

“저의 향도들 가운데 아직 제도되지 못한 이가 있으면 저 혼자 먼저 가는 것은 저의 본원이 아니옵니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18인은 상품중생(上品中生)으로 왕생될 것이니 그 나머지는 업이 성숙한 뒤에 제도 될 것이니라.”

향도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전해 듣고 슬피 울면서, “우리들은 무슨 죄업이 그리도 많기에 왕생을 못하는가.” 하고는, 밤낮을 쉬지 않고 염불하였다.

 

그러자 7일째 되는 날 한밤중에 아미타 부처님이 다시 배를 타고 오시어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세운 원력 때문에 너희들을 맞이하노니, 나와 같이 가야겠다.”

발징 화상은 울먹이며 다시 사양하며 아뢰었다.

“만일 신도들 중에 무거운 죄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왕생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저는 맹세코 그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 그 고통을 받으며 영원히 그 죄들이 소멸하여 모두가 왕생하게 된 연후에야 저는 왕생하겠나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 두어라. 31인은 상품하생(上品下生)할 것이며, 그 나머지는 그대가 먼저 왕생하여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얻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달아 신통과 지혜로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와서 모두 구제하여라.”

 

발징 화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발에 예배한 뒤에 31인과 함께 배를 타고 서방정토에 왕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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