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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69일 친란대사

 

 

친란(親鸞:1173~1262)대사는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조이다. 법명은 범연(範宴) 또는 선신(善信)이다.

9세 때 청련원 자원(慈圓)에게 출가하였고, 비예산의 대승원에서 천태학을 배웠으며 20년간 수행하였다. 29세 때 경도의 육강당에서 백일 동안 기도하였는데, 95일째 되는 새벽꿈에 성덕태자(聖德太子)의 계시를 받았다. 백일기도가 끝나자 길수의 법연(法然)을 찾아가 염불문에 들어가고 이름을 작공(綽空)이라고 고쳤다.

 

1207년 정부의 염불 정지령으로 월후(越後)로 귀양 갔으며, 이것을 계기로 친란은 우독(愚禿)이라 이름붙이고 스님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非僧非俗]생활을 보냈다. 월후의 생활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혜신니(惠信尼)라는 부인을 맞이하여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5년 후에 사면이 되었으나 2년간 더 머무른 뒤 1214년에 가족과 함께 관동을 떠났다.

 

관동에서 20여 년간 머무르며 그곳의 농민을 중심으로 포교하여 많은 제자를 얻었다. 60세가 지나서 경도로 돌아왔으며, 만년의 30년간은 제자들의 사찰에 몸을 의탁하여 저술에 힘을 쏟았다.

친란의 일생은 29세 때 법연과의 만남을 통해 배운 염불 왕생의 가르침을 스승에 대한 보은의 생각에서 한결같이 믿으면서 그 즐거움을 인연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서로 나누었으며, 또한 그 신의를 저술로 완성하여 바쳤다.

 

그는 출가해서 불도를 구한다는 옛날의 수계방식을 버리고 가정생활을 기반으로 본원염불(本願念佛)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수행방법을 택하였으며, 이것은 만 사람에게 알려진 도(道)라고 하여 정토진종(淨土眞宗)이라 불렀다.

그러나 스승인 법연을 개조(開祖)로 받들고, 자신은 새로운 종파를 열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친란은 제자를 한 사람도 가지지 않는다’는 자세로 시종일관하였다.

 

친란은 종래의 정토신앙이 사후 왕생을 목표로 임종을 중시하는 것에 반해, 현생에서 미래불이 된다는 확신으로 현생정정취(現生正定聚)의 가르침을 설하였으며, 임종래영(臨終來迎)을 기다리는 일이 없이 살아있는 동안에 구제 받는 것을 강조하고, 보은 감사를 제일 첫째로 삼았다.

 

그리고 법연이 구칭염불을 설한 것에 대해, 염불의 자력적인 면을 모두 버리고 절대 타력의 수행과 믿음을 주창하였다.

친란의 행동은 법연과는 달리 계(戒)의 수계를 부정하고 비승비속의 입장에서 결혼을 하는 등 재가불교의 성격을 명확히 표현하면서도 하나의 종파를 연다는 의식은 없었다.

 

이러한 친란의 사상적 심화와 독자적인 실천은 정토교의 긴 역사를 통해 볼 때 종래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혁명적인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친란은 1225년 전수사를 지었고, 1235년 금직사를 짓고 나서 선법원에서 90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1876년 견진대사(見眞大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현재 일본불교의 정토진종은 경도(京都)의 지은암(知恩庵)과 동경(東京)의 증상사(增上寺)와 불광사(佛光寺)를 본산(本山)으로 하여 널리 발달되어 있어 일본불교의 큰 흐름을 형성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교행신중》6권, 《정토문류취초(淨土文類聚鈔)》1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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