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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52일 연지대사

 

 

연지(蓮池: 1535~1615)는 명대의 스님이다. 이름이 주굉(株宏)이고 법명은 불혜(佛慧)이며 호가 연지이다.

처음에 유교를 배우고 32세(1566)때 구족계를 받은 뒤 혼자 지팡이를 끌고 제방(諸方)을 유람하며 선지식을 두루 참방하였다. 소암(笑巖)선사에게서 크게 깨달은 뒤 바야흐로 선종을 접어두고 염불을 위주로 삼았다. 이것은 정토 법문의 수행이 완성되면 선종은 저절로 함께 얻어지기 때문이다.

 

융경5년(1571) 항주의 오운산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운서(雲棲)라 이름 지었다. 이곳은 북송 때 오월(吳越)의 전(錢)씨가 지봉(志逢)스님을 위해 운서사를 창건했던 곳인데, 연지대사가 복구하여 중창한 곳이다. 처음에는 초가집 한 칸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규모가 확장되어 도량을 이루고 마침내 명찰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대부분 정토법문을 위주로 하고 겨울에는 좌선에도 전념하며 대사가 함께 경론을 강론했는데, 매일 과정과 매월 점검과 매년 평가가 확실히 이루어져 무뢰배들은 아예 얼씬도 못했다고 한다. 평생 소박과 진실을 숭상하고 허식과 과장을 멀리 했으며, 곤궁 속에 검약을 생활화하고 명리를 부끄럽게 여겼다.

 

총림에 든 지 50년 가까이 1전의 돈도 함부로 쓴 일이 없었다. 도덕과 명망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사방의 납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대사마 송웅, 태재 육광조, 궁유 장원병등 명공 고관들이 찾아와 스승으로 모셨다.

 

저술은 경전 주석과 편집서와 저작등 무려 32종이 있으며, 특히 정토에 관한 48의문에 대한 답변인 《답정토사십팔문(答淨土四十八問)》과 정토에 관하여 의심을 밝히는 《정토의변(淨土疑辨)》이 유명하다. 또한 대사가 대중을 경책하는 여덟 가지 조목인 경중팔조(警衆八條)도 유명하다. 경중팔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출가할 때 어질지 못 하고 의롭지 못하고 버릇없고 지혜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설사 남들이 하라고 끌어들여도 저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면서 터럭 끝만큼도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2. 저는 출가한 뒤 사방 곳곳을 두루 참방하였는데, 당시 평융(平融)선사가 크게 명망을 떨쳤으므로 서울[京師]까지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더니 법사께서 말씀하기를 “그대는 본분을 잘 지키고 명예를 탐하거나 이익을 쫓아다니지 말며, 또한 바깥 사물의 인연에 끌리어 한눈팔지도 말게나. 오직 인과 법칙을 분명히 알고 한마음으로 염불을 하게나.” 하였으므로 저는 지금까지 그 가르침을 확실하게 준수해 오고 있으며, 일찍이 내팽개치거나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3. 저는 사방의 승가 대중을 공경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무릎을 꿇기 전에 제가 먼저 무릎을 꿇었고, 상대방이 절을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절을 하곤 했으며, 절대로 남을 업신여기거나 깔보지 않았습니다.

 

4. 도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으로는 믿음[信]이 첫째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 목숨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있다.’는 세존의 설법을 잠시도 잊지 않고 굳게 믿으면서 염불법문에 정진해야 합니다.

 

5. 새로 공부하는 후학 스님들은 염불 공부는 마음을 잘 다잡을 수 없다고 투덜대는데, 한량없는 겁 동안 심어 온 생사의 뿌리가 그렇게 금방 끊어질 수 있겠습니까? 오직 ‘나무아미타불’ 명호만 부지런히 염송하면 모르는 결에 잡념은 저절로 없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6. 칭명염불(稱名念佛)의 방법에는 소리를 내어 염불하거나[聲持], 마음속으로만 염하거나[黙持], 입술만 움직이는[金剛持]염불이 있지만, 어느 것이든 때와 장소에 따라 알맞게 하면 반드시 ‘나무아미타불’하는 명호가 한 구절 한 구절씩 또렷이 입에서 나와 귀로 들어가면서 소리 소리마다 절절히 자기 마음을 불러 일깨워야 합니다.

 

7. 요즘 사람들이 염불하려 들지 않는 것은 서방정토를 얕잡아 보기 때문인데, 서방정토왕생이 바로 가장 큰 덕과 복과 지혜를 두루 갖춘 위대한 성현만이 가능한 일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8. 저도 어렸을 적에는 염불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할머니가 매일 꼬박꼬박 수천 번씩 염불하는 것을 보고서,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물었더니, 할머니가 대답하기를 “전에 남편이 돌아가실 때 염불을 하셨는데, 아주 편안하게 잘 가셔서 나도 이렇게 염불을 한다오. 남편이 돌아가실 때는 아무런 아픈 데도 없고 단지 사람을 한 번 불러보더니 작별하였다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부처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염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대중을 경책하는 여덟 가지 조목이다.

대사는 만력 40년 7월7일 저녁에 말하기를 “나는 내일 가겠다.”고 하더니, 과연 이튿날 저녁에 눈을 감고 앉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대중에게 말하기를 “진실하게 염불하라.” 하고 서향하여 염불하면서 앉아서 가셨으니, 나이 81세였다.

-《연종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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