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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47일 전등대사

 

전등(傳燈)대사는 명나라 만력(萬曆)부터 천계(天啓)사이에 생존한 천태종의 중흥조(中興祖)인데, 정토사상을 크게 선양한 스님이다. 천태산 유계에 있는 고명사에 주석하였으므로 유계(幽溪)대사라고도 불린다. 《유마경》, 《능엄경》, 《법화경》등에 대해 주소(註疏)를 달고, 《천태전불심인기주(天台傳佛心印記註)》와 《성선악론》등을 썼다. 뿐만 아니라 우익대사가 선정한 《정토십요》에 아홉 번째로 실린 《정토생부생론(淨土生無生論)》을 지었는데, 이 법문을 신창 석성사(石城寺)에서 강설하려고 매번 법좌에 오를 때마다 공중에서 천상음악[天樂]이 가득히 울려 퍼져 법회에 동참한 대중이 모두 함께 들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대사가 설한 정토법어(法語)중 일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염불의 우수성을 말한다.

 

무릇 수행법문이란 여래께서 중생들의 질병에 처방을 내리신 좋은 약이다. 약 처방이 질병에 따라 많아지다 보니 그 수가 갠지스 강의 모래 수보다 많은 형편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간단명료하고 종요로우면서 지극히 빠른 지름길은 서방극락정토 왕생을 구하는 염불법문이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수없이 되풀이 하여 지극한 말씀으로 칭송찬탄 하였고, 또 역대 조사들께서 깊이 통달하여 널리 펼치어 사람들이 마음으로 높이 받들어 행하는 법문이기 때문이다. 정토법문은 정말로 생사윤회를 재빨리 벗어나는 현묘한 관문이자 깨달음의 도를 신속히 성취하는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일반 수행으로 생사윤회를 벗어남에는 모름지기 세 가지의 힘에 의지하여야 한다. 첫째는 자기 혼자의 힘[自力]이요, 둘째는 남의 힘에 의지하여 이루는 힘[他力]이며, 셋째는 본래 지닌 공덕의 힘[本有功德之力]이다. 세존이 생존하셨을 때와 정법(正法)시대에 출현하셨던 대보살님과 성문 연각 및 여러 위대한 조사들은 오직 자기 수행에 힘써 자력에 의하여 깨달은 분들이지만, 그 뒤 상법(像法)과 말법(末法)시대에 내려와서는 중생들의 근기가 약해서 비록 수행하더라도 깨닫지 못하거나 또는 깨달았다 하더라도 정통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여러 불보살님들이 다른 방편을 곡진하게 마련해 놓으셨다. 바로 그것이 타력에 의지하는 법문이며,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법문이다.

 

이 법문을 깨닫는 자는 중생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평등하여, 마음의 정토와 부처님의 정토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통달하게 되며, 더 이상 윤회의 음계에 미혹되지 않고 한번 극락정토에 들게 되면 영원히 들게 되어 다시는 물러나거나 타락함이 없다. 그래서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중생들은 모두가 아비발치(阿鞞跋致=不退轉)에 드는데 그 수가 몹시 많다.”고 하신 것이다.

 

2. 우리가 지금 할 일은 염불 수행이다.

 

우리는 지금 염불로 자기 마음을 오롯이 하나로 모으고, 부처님 명호를 간절히 지송하여 뜻을 흐트러뜨림이 없이 집중 전념하는 일이 우리가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할 공부이다. 그런데 마음을 놓고 염불하지 않거나 또는 염불하더라도 한마음으로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애욕과 애착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부모, 처자식, 형제, 친구, 부귀, 공명, 문장, 재주, 도술, 기예, 의복, 음식, 가옥, 전답, 산림, 화초, 보석, 골동품등 온갖 미묘하고 좋은 것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이 많다. 이것들에 대한 사랑이 바로 애착이다. 요컨대 위의 한 물건이라도 마음에 잊지 못하는 것이 바로 애착이요, 한 생각이라도 마음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애착이다. 한 가지 애착이라도 마음속에 품으면 염불이 하나로 오롯이 집중되지 못하고, 집중되지 못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때때로 스스로를 일깨워 애착일랑 날마다 털어 버리려고 힘써야 할 것이다. 만일 바깥 경계에 부딪혀서 애착이 일어나면 그것이 텅 빈 것[空]인줄 깨달으면 된다. 곧 ‘온갖 법이 본래 스스로 있지 않나니, 있는 것(만법을 있게 하는 것)은 감정(感情)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3.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는 방법

 

바깥 경계를 막으려면 만물이 본래 텅 비었음을 체득하는 것이요, 만물이 본래 텅 빈 줄 체득하면 감정이 저절로 끊어질 것이며, 감정이 저절로 끊어지면 애착이 생겨나지 않고 오직 마음만이 드러나면서 생각이 하나로 통일 될 것이다. 이 생각을 하나로 통일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그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믿음[信]이요, 둘째는 수행[行]이며, 셋째는 발원[願]이다.

 

첫째. 의심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믿음이라 한다. 의심이 있으면 마음이 하나로 통일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락왕생을 구하는 사람은 먼저 돈독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그에 따른 수행이다. 앞의 첫 번째의 돈독한 믿음이 눈으로 보는 것[目視]이라면 이제 수행은 발로 길을 가는 것[足行]이다. 믿기만 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이는 눈만 있고 발은 없는 것과 같다. 반대로 수행은 하면서도 믿지 않으면 발만 있고 눈이 없는 것과 같다. 셋째는 믿음과 수행에는 발원이 있어야 한다. 무릇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반야선(般若船: 지혜의 배)은 모름지기 믿음[信]으로 뱃머리를 삼아 앞의 물길을 더듬고 물살을 헤치며, 염불수행[行]으로 돛을 달고 노를 저어 나아가면서, 발원[願]으로 뱃전의 키를 삼아 방향을 올바로 잡아 주어야한다.

 

뱃머리의 물길 탐색이 없으면 물길의 깊이와 암초를 알 수가 없고, 돛과 노의 추진력이 없으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으며, 키의 방향 조정이 없으면 목적지를 향한 항로 통제를 할 수 없다.

위와 같은 믿음, 수행, 발원의 세 가지 법문은 극락정토에 나아가는 삼대 강령이자 아미타불을 뵙는 보배로운 뗏목이다. 일체의 정토법문은 모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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