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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1. 실상 염불선

2. 제1장 불타관(佛陀觀) 제1절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염불선(念佛禪)

제1장 불타관(佛陀觀)

 

제1절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염불선(念佛禪)

 

1. 아미타불(阿彌陀佛)

아미타불은 줄여서 [아미타] 또는 [미타]라고도 하며 범본경전(梵本經典)에는 아미타유스붓다(Amitāyus-Buddha 무량수불) 아미타바붓다(Amitābha-Buddha 무량광불)의 이름이 있고, 밀교(密敎)에서는 아미리다붓다(Amta-Buddha 감로왕불)의 이름 등이 있으나 보편적으로 아미타불이나 무량수불로 불리어지고 있다.

『정토삼부경』에는 구원겁(久遠劫) 전에 법장보살이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세워 조재영겁(兆載永劫)의 오랜 수행을 쌓고 이미 십겁(十劫) 전에 성불하여 현재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계신 부처님을 아미타불이라 한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법신(法身…陀) ․ 보신(報身…彌) ․ 화신(化身…阿)의 삼신(三身)을 겸전한 부처님이 아미타불이라 하였고, 선종(禪宗)과 화엄종에서는 자성미타(自性彌陀) ․ 유심정토(唯心淨土)라 하여 일체 만법을 원만히 갖춘 참 성품인 마음이 바로 아미타불이며 극락세계 또한 청정한 마음 위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경계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그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으나, 비유와 상징을 떠난 근본 뜻을 생각한다면 시간 ․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여자성(眞如自性)으로서, 영겁(永劫)을 통하여 끊임없이 十법계(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천상 ․ 성문 ․ 연각 ․ 보살 ․ 불)의 의(依…국토) ∙ 정(正…마음과 몸)을 성기(性起)하는 우주 자체의 인격(人格)이 바로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미타경』에도 그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불이요 광명이 무량하므로 무량광불이라 하였으니, 그 무량한 수명은 영원한 시간과 자비를 상징하고, 무량한 광명은 무한한 공간과 지혜를 상징하므로, 자비와 지혜를 원만히 갖춘 영원한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아미타불임을 의미하였다.

 

또한 더욱 구체적인 이름으로 『무량수경』에서 十二광불(光佛)이라 하여 무량수불 외에 무량광불(無量光佛) ․ 무변광불(無邊光佛) ․ 무애광불(無碍光佛) ․ 무대광불(無對光佛) ․ 염왕광불(燄王光佛) ․ 청정광불(淸淨光佛) ․ 환희광불(歡喜光佛) ․ 지혜광불(智慧光佛) ․ 부단광불(不斷光佛) ․ 난사광불(難思光佛) ․ 무칭광불(無稱光佛) ․ 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등을 들고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주의 실상이자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바로 아미타불임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며, 그래서 여러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부처님의 명호(이름) 또한 진리의 대명사인 아미타불의 그 인연에 따른 상징과 비유의 이름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본원(本願)

 

본원이란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로서 모든 부처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성불하고자 뜻을 세운 여러 가지 서원을 말한다.

이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는데, 총원은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한 본원 곧 사홍서원(四弘誓願)이며, 별원은 부처님마다 중생 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우신바 아미타불의 사십팔원(四十八願)이나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십이원(十二願) 등을 들 수 있으나, 보통은 아미타불의 사십팔원을 말한다.

그런데 아미타불이 바로 진여실상(眞如實相)이요, 중생이 본래 갖춘 자성(自性)이라고 생각할 때, 아미타불이 성불 이전 법장보살 때 세운 사십팔의 서원은 곧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삼세(三世) 모든 부처님의 서원인 동시에 우주 자체에 내재(內在)한 목적 원인이며 또한 성불을 지향한 우리 중생의 서원이요, 이상(理想)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의 실현에는 먼저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서원이 전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3. 극락정토(極樂淨土)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으로 건립된 정토의 이름이 극락정토이며 흔히 극락세계라 하는데 범어 수하마제(須訶摩提 Suhāmati; Sukhāvatī)의 뜻 번역이다.

또한 극락세계의 다른 이름으로는 안양(安養) ․ 안락(安樂) ․ 안온(安穩) ․ 묘락(妙樂) ․ 무위(無爲) ․ 청정토(淸淨土) ․ 서방정토(西方淨土) ․ 불회(佛會) ․ 열반성(涅槃城) ․ 진여문(眞如門) ․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 밀엄국(密嚴國) ․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등 三十여 종의 별명이 있다.

그런데 극락정토란 청정하고 안락한 국토의 뜻으로서 다섯 가지 흐린 것(五濁)이 없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한 모든 괴로움이 없으며, 오직 즐거움만 있는 세계로서,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삼계(욕계 ․ 색계 ․ 무색계)를 뛰어넘은 영원한 낙토(樂土)임을 경전에서는 찬탄하여 마지않는다.

 

그래서 극락정토는 모든 불 ․ 보살이 수용(受用)하는 청정한 보토(報土)인 동시에 중생들 또한 번뇌 업장만 소멸하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 보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상주불멸(常住不滅)한 실상(實相)의 경계인 것이다.

이렇듯 극락세계는 시간 ․ 공간을 초월한 영생의 세계인데도 경(經)에는 십만 억 국토를 지난 아득한 서쪽에 있다고 한 것은 번뇌에 때 묻은 중생의 분상에는 실재하지 않는 꿈같은 세계이기 때문에 중생의 차원에 영합(迎合)한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임을 경전을 정독 음미할 때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범부의 망정(妄情)을 여읜 성자의 정견(正見)에는 사바세계 그대로 극락세계일지라도, 온갖 번뇌에 얽매이고 가지가지의 고액이 충만한 현실에 시달린 고해(苦海) 중생에게는 영생 안온한 극락세계란 역시 너무나 머나먼 이상향(理想鄕)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 중생은 필경 돌아가야 할 본래 고향인 극락세계를 동경하고 흠모하며, 거기에 이르기 위한 간절한 서원을 굳게 세우고, 한량없는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쌓아야 할 것이다.

 

 

4. 염불(念佛)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것, 곧 왕생(往生)함이 『정토삼부경』의 주제이다. 그리고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은 바른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성자(聖者)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온갖 번뇌를 소멸하고 정각(正覺)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도 또한 경전의 말씀과 같이 「적은 선근(善根)과 적은 복덕(福德)」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한 큰 선근과 거룩한 복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염불인 것이다. 우리 본래 자성이 부처님이요, 아미타불이란 부처님의 명호(이름)이기 때문에 염불이란 곧 자성불(自性佛)을 생각하고 자성불로 돌아가는 법이자연(法爾自然)의 수행법인 것이다.

또한 염불은 부처님의 본원에 들어맞는 수행법일 뿐 아니라 삼세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권장하고 기억하여 호념(護念)하시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다른 수행법에 비하여 불․보살의 가피가 수승함은 여러 경전이나 수많은 영험록(靈驗錄)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능엄경(楞嚴經)』에서도 석존께서 「나는 일찍이 수행할 때에 염불로써 무생법인에 들었느니라」(我本因地아본인지 以念佛心이염불심 入無生忍입무생인)하셨고,

 

『관무량수경』에는 「염불하는 이는 모든 사람 가운데 향기로운 연꽃이니라.」(若念佛者當知此人약염불자당지차인 是人中芬陀利華시인중분다리화)하셨다.

그래서 염불은 진여자성을 여의지 않는 자성선(自性禪)이라고도 하고 또한 모든 삼매(三昧)의 왕(王)이라 하여 보왕삼매(寶王三昧)라고도 하는 것이다.

염불(念佛)이란 부처님을 기억하여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또는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칭명(稱名)염불 ․ 관상(觀像)염불 ․ 관상(觀想)염불 ․ 실상(實相)염불 등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칭명염불(稱名念佛)로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부르는 것으로서 가장 간단하여 행하기 쉽다. 둘째는 관상염불(觀像念佛)로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모습)를 생각하는 염불이다. 셋째는 관상염불(觀想念佛) 고요히 앉아서 부처님의 지혜(智慧) 공덕(功德)을 생각하는 염불이다. 넷째는 실상염불(實相念佛) 부처님의 법신(法身) 곧 일체 만법의 본바탕은 있는 것(有)도 아니고 공(空)한 것도 아닌 중도(中道)의 실상(實相)임을 생각하는 염불이다.

 

이러한 四종 염불 외에도 호흡과 맞추어서 염불하는 수식염불(數息念佛), 아미타불을 화두(話頭)로 하여 참구(參究)하는 간화염불(看話念佛) 등이 있다. 그런데 어떠한 염불이든 자기 근기에 맞는 염불을 일심불란(一心不亂)하여 삼매(三昧)에 들면 되는 것이니 함부로 그 우열(優劣)을 시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위에 말한 염불 공부를 망념(妄念)이 섞이지 않도록 염념상속(念念相續)하여 일심으로 수행함을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 하고 이러한 수행이 성취되어 마음이 선정(禪定)에 들고, 혹은 부처님이 앞에 나타나시며, 또는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에 들어맞음(契合)을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한다.

 

『염불삼매경』에 이르기를 「염불삼매는 일체 모든 법을 다 포섭하였으니 이는 성문(聲聞) 연각(緣覺)의 二승(乘) 경계(境界)가 아니니라」(念佛三昧則爲總攝一切諸法염불삼매즉위총섭일체제법 是故非聲聞緣覺二乘境界시고비성문연각이승경계)하셨다.

선(禪)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佛心)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佛語)이니, 경전의 말과 문자에 걸리지 않고 마음을 밝힐 때 선과 교는 본래 둘이 아닌 진여자성(眞如自性)의 체용(體用)인 것이다.

또한 일체 만유의 근본 자성(自性)이 아미타불이요, 극락세계 역시 같은 자성(自性)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이루어진 경계이니, 마음이 오염(汚染)되면 그에 상응한 삼계(三界∙∙∙욕계 ․ 색계 ․ 무색계) 육도(六道…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천상)에 윤회(輪廻)하는 고뇌를 벗어날 수 없으며,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금생과 내세(來世)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常樂我淨)한 극락세계의 청정한 행복을 수용(受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극락세계를 염원(念願)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그 명호(이름)를 부르는 염불 공부는 진여자성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본래 우열(優劣)이 없으니, 염불과 선(禪)은 일치한 것이다.

그리고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닌 선정일치(禪淨一致)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法界)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三十二상(相)과 八十수형호(隨形好)를 갖춘 원만 덕상(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諸佛如來是法界身제불여래시법계신 入一切衆生心想中입일체중생심상중 是故汝等心想佛時시고여등심상불시 是心卽是三十二相八十隨形好시심즉시삼십이상 팔십수형호 是心作佛 是心是佛시심작불 시심시불)

 

5. 유심정토(唯心淨土) 자성미타(自性彌陀)

 

정토문(淨土門)에서는 정토를 서방 십만 억 국토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두고 아미타불을 그 극락세계의 부처로 보신불(報身佛)이라 하여 정토와 미타를 외계의 객관적인 존재로 하고 있으나, 제법유심(諸法唯心) 만법일여(萬法一如)의 성도문(聖道門) 특히 선종(禪宗)의 입장에서는 정토도 다만 자기 심내(心內)의 정토이며 아미타불도 자기 신중(身中)의 미타 이외는 없다고 한다.

이 유심사상(唯心思想)은 「유마경(維摩經)」 불국품에는 ‘약보살(若菩薩) 욕득정토(欲得淨土) 당정기심(當淨其心) 수기심정(隨其心淨) 즉정토정(卽淨土淨)’이라 있으며 더 올라가서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심뇌고중생뇌(心惱故衆生惱) 심정고중생정(心淨故衆生淨)’이라 하는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생사(生死)를 출리(出離)하는 방법은 다문(多門)이나 유유염불정토(唯有念佛淨土)에 생(生)함이 최요첩경(最要捷徑)이요 화엄(華嚴) · 법화(法華)의 원묘(圓妙)의 법문(法門)도 보현(普賢)의 묘행(妙行)도 모두 구경(究竟)의 정토(淨土)에 지귀(指歸)하고, 마명(馬鳴) · 용수(龍樹) 및 영명(永明) · 중봉(中峯) 제대조사(諸大祖師)도 다 같이 극력(極力) 정토일문(淨土一門)을 주장하였다. 이 법문은 삼근(三根)이 널리 닦는 법으로서 결코 하근(下根)을 위한 권설(權說)이 아니다. 「유마경(維摩經)」에 불토를 정(淨)코자 하면 마땅히 자심(自心)을 정(淨)케 하라고 설해 있음으로 구정토자(求淨土者)는 필히 지계청정(持戒淸淨)하여 마음을 정화(淨化)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