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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27일 결사(2)

 



우리나라는 신라 경덕왕 때(758) 고성군 원각사(지금의 건봉사)의 주지 발징(發徵)화상이 큰 서원을 세워 두타승 정신, 랑순 등 31인을 청하여 미타만일회를 시설하여 향도(香徒) 1,820인이 참여하여 염불 수행을 했으며, 그들이 모두 극락왕생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이보다 앞서 신라 진평왕(579~632)시대에 혜숙 스님이 미타사라는 절을 세워 염불 수행을 했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아미타불 염불 수행은 600년 전후 무렵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전한다. 그리고 원효(617~686)스님 이후로는 승속을 막론하고 염불 수행이 확산 되었는데, 700년대에 가장 성행하였다. 수많은 승속이 함께 모여 염불회라는 결사를 조직하여 회향할 정도였으므로 그 성행을 짐작할 수 있다. 선종(禪宗)이 도입된(812년) 이후에도 염불수행은 여전히 승속간에 널리 실천되었다.


고려시대에 염불수행은 중기까지는 천태종에 흡수되어 그 명맥을 이어갔다. 천태종은 ⟪법화경⟫사상에 입각하여 염불수행을 권장하였으므로 출가자들도 선호하였고, 승속이 함께 염불결사를 개설하여 성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성종 1년(982)에 신라 때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의 두 성인이 수행했던 도성암(道成巖)아래 지은 절에서 성범(成梵)스님이 만일미타 도량을 열어 50여년을 정근했다고 한다. 또 고려 인종 7년(1129)에 진억(津億)스님이 오대사를 수축하여 그 곳에서 맑고 깨끗한 수정에 비유하여 수정결사(水精結社)라 하는 염불도량을 개설하여 정진하였는데 참가자가 3천 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원묘국사 요세(了世: 1163~1245)가 전남 강진군 남해산 옆 만덕사 옛터에 80여 칸의 대가람을 개창하여 그 곳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개설하여 정토 왕생하기를 구했다고 하니, 승속 간에 염불수행이 성행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배불정책으로 인하여 전반적으로 불교의 활동은 미약해져서 염불수행도 성행하지 못했음은 물론이요, 조선 후기에는 일제의 간섭까지 심하여 사찰의 재정까지도 매우 어렵게 되었다. 이 시대에 각 사찰에서는 재정 확보와 불교부흥을 위해서 각종의 계(契) 모임과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라는 수행결사가 생기게 되었다.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고성군 건봉사 만일회

발징화상의 제1차 결사는 758년에 입제하여 787년에 회향하였고, 제2차 만일회는 순조 2년(1802)에, 제3차는 철종2년(1851)에, 제4차는 만화 관준스님이 1881년에 결성하여 1908년에 회향하였으며, 제5차는 금임 의훈스님이1908년에 개설하였고, 제6차가 1998년 8월6일 입재하여 2025년 12월21일에 회향할 예정으로 있다.


* 범어사 내원암 미타계(1875년 5월)

* 고양군 흥국사 만일회(1904년 11월)

* 범어사 극락암 만일회(1905년)

* 회계사 만일 염불회(1910년 12월 개설)

* 봉원사 만일회(1912년 2월)

* 개운사 만일회(1912년 4월)


1913년에 조선불교는 ‘선교 명의가 분명하므로 고성군 건봉사를 제외한 각 본말사에 있는 염불당(念佛堂)을 선당(禪堂)의 명의로 일체 변경할 것’을 결의하여 각 사찰의 염불당이 폐지되고서부터 염불은 거의 맥이 끊어지다시피 되었다. 그 후 10년 간 주춤하던 염불회는 1924년 김천 직지사 윤퇴운 화주가 서전암에 염불회를 개설하면서부터 해인사 (원당암 만일 염불회:1925년 1월)등에서 대규모로 염불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근간에 무심보광(無心普光: 韓普光) 스님이 회주가 되어 염불 신행인들이 성남시 청계산 정토사에서 만일염불회(2000년 6월6일 입재~ 2027년 10월 22일 회향예정)를 개설하여 정진하고 있는데, 앞으로 염불 민중화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참으로 경하할 일이다.


위에서 보면, 염불회 결사는 만일(萬日) 동안이어서 오랜 기간을 약정하고 있다. 물론 단기간의 소규모 결사도 있었을 것이나, 대개 소규모의 결사는 대소 사찰에서 단기간에 입재하여 회향했을 것이므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못하다.


앞으로 염불수행에서 반드시 만일회 또는 천일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좀 기간이 길어서 개설하기가 어려우면 단기간으로라도 약정해서 수행하면 좋을 것이다. 또 백일 정도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므로 대소 사찰에서 백일회(百日會)는 자주 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승속 간 염불 수행이 널리 성행했으면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일생동안의 염불 수행을 권장하였고, ⟪아미타경⟫에서는 1일부터 7일까지의 행을 설하셨으며, ⟪관무량수경⟫에서는 일념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설이 일정하지는 않다. 이에 대하여 회감(懷感)은 “염불의 많고 적음과 염불시간의 길고 짧음을 문제 삼지 않고 오직 이를 수행하는 사람이면 모두 빠짐없이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천태지의(天台智顗)는 “90일 동안 몸으로는 항시 수행하되 휴식함이 없어야 하고 입으로는 항상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되 쉬지 말아야 한다.”고 하여 90일 동안의 기일염불을 설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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