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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남호 송성수님의 100일 염불수행

26일 결사(結社) (1)

 


염불수행은 평생 동안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 같지는 않아서 방일하거나 나태하기 쉽고, 또 막상 계속하겠다고 다짐하고서도 중도에 그만 두거나 흐지부지하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래서 염불수행자가 시간이나 기일을 정해 놓고 수행을 하게 되면 그 시간이나 기일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염불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염불하는 습관이 몸에 베고 염불의 묘미를 체득하게 되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염불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방편상 시간이나 기일을 정해 두고 하는 염불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염불은 하루 24시간 중에서 필요한 시간을 정해서 하는 염불이므로 이것은 그 수행자가 여건에 맞게 하루의 어느 때 몇 분 또는 몇 시간 염불 할 것인가를 정해서 하면 될 것이며, 이런 수행은 대개 개인적인 염불 수행에서 많이 이용하는 방편일 것이다.

그러나 기일을 정해 놓고 하는 염불은 개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대중적 또는 단체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1일, 3일, 7일, 21일, 백일, 천일, 만일 염불 등이 행해지고 있다. 얼마 동안의 기일을 정할 것인가는 개인이나 단체의 여건이나 근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일을 정하는 염불 수행은 만일이면 27년 5개월 동안이요, 천일 이면 2년 9개월 동안이며, 백일이면 석 달 열흘이나 된다. 이런 기일은 좀 긴 시간이지만 옛날부터 만일 동안의 염불회가 많았다. 중국에서 아미타불의 염불신앙이 처음 등장한 모임으로는 동진(東晋)때의 혜원(慧遠: 335~417)의 백련결사(白蓮結社)를 들 수 있다. 혜원은 21세 때에 도안(道安)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여 유불선 삼교에 정통하였고, 평생 철저한 지계주의자(持戒主義者)였다.


혜원이 나부산으로 가는 길에 여산(廬山)을 지나다가 그 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기묘한 산세를 좋아하여 혜영(慧永)의 힘을 빌려 동림사(東林寺)를 짓고 머물렀다. 그때 사방에서 도속(道俗)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많이 모여왔다. 그때 모인 도속으로서 뛰어난 이들이 혜원을 비롯하여 혜영, 혜지, 도생, 담순, 승예, 불타발타라, 불타야사, 담향, 도병, 담선, 도경, 유정지, 장야, 주속지, 장전, 종병, 뇌차종 등의 18현(賢)이 있었고 모두 합쳐 123인 이었다.


그들은 390년 7월 28일에 동림사 반야대의 아미타불 상(像) 앞에서 재회를 베풀고 향과 꽃을 올리며 일제히 정업(正業)을 닦아서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서원을 세웠다. 이 결사를 백련사(白蓮社)라 이름 붙였다. 백련사라 한 것은 산의 동쪽과 서쪽에 있는 연못에 흰 연꽃(白蓮)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혜원은 열반할 때까지 아미타불 염불을 하면서 산문 밖을 나오지 않고 대중과 함께 정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면서 명상으로써 마음에 아미타불을 염하였다. 실제로 혹은 꿈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기 위하여 하루 천 번씩 아미타불 염불과 48배의 예배를 드렸다. 또한 주간에 3회, 야간에 3회의 예불을 하였으며, 정근하고 나태함이 없으면서 발원이 견고했다고 한다.


이러한 백련결사는 일반 서민들 사이에 크게 침투되어 원(元), 명(明)시대에 이르러 민간신앙으로 연면히 이어져 중국 정토교의 기초를 이루었다.

《불조통기》 20권의 설명에 의하면 혜원은 처음 염불수행 11년 동안 세 번이나 아미타불을 친견하였으나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열반하기 직전 7월 그믐날 저녁에 반야대 토굴에서 정(定)에 들었을 때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 찼었고 그 광명 안에 많은 부처님이 계시고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물줄기가 14갈래로 나누어져 상하로 흘러들며 거기서 고(苦)⋅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의 법문소리가 들렸다. 아미타 부처님께서 “너는 7일 후에 나의 국토에 와 날 것이다.” 하셨는데, 과연 7일 후에 왕생하였다.


이상과 같이 혜원의 백련결사는 중국의 아미타 염불 신앙의 기초가 되었고 중국 정토교의 창시자로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 신라에 영향을 끼쳤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혜원의 염불신앙이 후세에 영향을 끼쳤음은 틀림없다. 특히 고려시대의 수정결사(水晶結社)나 백련결사에 크게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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