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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왕생집

191. ●최노파(崔老婆)

191. ●최노파(崔老婆)

송(宋) 동평(東平) 양(梁)씨의 유모(乳母)였던 최노파(崔老婆)는 치주(緇州)사람이다. 평생(平生) 채식(菜食)만 하였고 매우 순박(醇朴)하여 남과 시비(是非)를 다툴 줄 몰랐다 주모(主母)인 조(晁)씨는 선학(禪學)에 마음을 쏟고 있었으나 최노파(崔老婆)는 조석(朝夕)으로 곁에서 그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만을 일심(一心)으로 부를 뿐이었다.


염주(念珠)를 갖지 않았으므로 몇 천 만(千萬)번이나 불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이 72세(歲)에 병(病)이 들어 소화(消化)를 시키지 못하고 설사만 하는 상태(狀態)에 서도 지념(持念)은 더욱 돈독(敦篤)하였다 잠시(暫時) 병(病)이 멈추자 이렇게 노래를 지어 끊임없이 불렀다


-서방(西方)의 한길 수행(修行)하기 수월하여 위에는 고개도 없고 아래는 구덩이도 없네 갈 때는 신이나 버선도 필요(必要)없어 걷기만 하면 연꽃이 걸음마다 피네-


누가 누구의 노래인가 하고 물으니 내가 지었어 !하였다 할머니는 언제 가시려오? 하니 신시(申時)에 갈거야 하였다 과연(果然)그 시각(時刻)에 갔다 스님의 법(法)을 따라 화장(火葬)했더니 혀만은 타지 않고 연화(蓮華)와 같은 형상(形狀)을 하고 있었다.


192.●오씨(吳氏)의 시비(侍婢)

송(宋)나라 현군(縣郡)인 오씨(吳氏)는 재계(齋戒)를 청정(淸淨)히 하던 이였다 시비(侍婢)가 있었는데 역시(亦是) 염불(念佛)을 정진(精進)하였다 어느 날 문득 발밑에서 금연화(金蓮華) 세 송이를 발견(發見)하였다 며칠 후(後)에는 무릎에서 보았고 또 며칠 후(後)에는 몸에서 보았으며 또 며칠 후(後)에는 얼굴에서 보았다 가운데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고 좌우(左右)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계셨다 또한 서방극락(西方極樂)의 당전(堂殿)이나 국토(國土)를 마치 손바닥을 들여 다 보듯 환하게 보았다 이렇게 3년(年)동안 늘 분명(分明)히 눈앞에 있었다. 나중에 갑자기 병(病)이 들더니 스스로 이젠 가야겠어 !하고는 죽었다


찬(贊)

오씨(吳氏)의 시비(侍婢)가 과연(果然) 이렇게 때때로 부처님을 친견(親見)할 수 있었을까? 관력(觀力)과 정진(精進)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마(魔)와 부처를 엄격(嚴格)히 구별(區別)할 수 있어야 한다. 사(邪)와 정(正)은 확실(確實)히 다른 것이다. 여인(女人)이 이러한 경우(境遇)를 보면 반드시 눈 밝은 자(者)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193.●정씨(鄭氏)

원(元) 정씨(鄭氏) 정안(淨安)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염불(念佛)하는 날을 헛되이 보낸 적이 없었다. 병(病)을 앓다가 공중(空中)에서 네가 갈 날은 정(定)해져 있다 태만(怠慢)하지 말라하는 소리를 들었고 또한 아미타(阿彌陀)부처님 몸의 금색(金色)을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즉시(卽時)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서(西)쪽을 향(向)하여 단정(端正)히 앉아 그의 출가(出家)한 아들인 의수(義修)스님을 불러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읽게 하고는 문득 죽었다 그의 딸의 꿈에 어머니가 나는 이미 서방정토(西方淨土)에 태어났다 수(修)스님에게도 알려라 하였다


194.●주노파(周老婆)

원(元)나라 운현(鄖縣) 보당(寶幢) 시장터의 주노파(周老婆)는 서방(西方)정토(淨土)를 정수(正修)하여 새해가 되면 일체(一切)말을 하지 않고 밤낮으로 앉아 있기만 하다가 그달이 넘어가서야 그만 두었다 여름에는 차(茶)를 보시(布施)하며 이런 일을 오랫동안 거르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큰 연(蓮)꽃 잎이 온 시장(市場)을 덮었는데 자신(自身)이 염주(念珠)를 들고 그 잎 위를 행도(行道)하는 꿈을 꾸었다 얼마 후에 경미(輕微)한 병(病)을 앓았는데 이웃사람이 밤에 보니 깃발과 보배로 된 일산(日傘)이 그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명(黎明)에 노파(老婆)는 이미 합장(合掌)하고 염불(念佛)하며 갔다


195.●설씨(薛氏)

대명(大明)의 설씨(薛氏)는 무당(武塘) 세족(世族)의 딸 이었다. 태어날 때 어머니가 장경성(長康星)<금성(金星)>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나중에 주(周)씨에게 출가(出家)하여 아들 다섯을 두고 과부가 되었다 수절(守節)할 것을 스스로 서원(誓願)하고 관음보살(觀音菩薩)에게 공양(供養)하니 향(香) 연기(煙氣)가 연꽃과 같이 얽혔다 정업(淨業)에 전심(專心)하고 보시(布施)하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했으며 15년(年)동안을 하루 같이 염불(念佛)하였다 만력(萬歷) 정해(丁亥) <1587> 5월(月)에 병(病)이 들어 의사(醫師)가 우유죽(牛乳粥) 을 바쳤으나 한사코 거절(拒絶)하며 결국 밥알마저 끊고 약(藥)도 물리쳤다


9월(月) 6일(日)에 스님을 모셔다 예참(禮懺)하게 하니 나흘이면 족(足)하다 나의 일은 끝났다하고는 서(西)쪽으로 아미타상(阿彌陀像)을 향(向)하여 밤낮으로 염불(念佛)하였다 그리고는 아들 익찬(翊贊)에게 부녀자(婦女子)들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부탁(付託)하였다 9월(月) 9일(日) 깨끗한 옷을 골라 깨끗한가를 확인(確認)하고 향수(香水)를 선상(禪床)에 뿌렸다 다음 날 아침 물을 떠서 손을 씻고 감로진언(甘露眞言)을 외우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공(誌公)모자를 썼다


그리고서 부처님 앞에 꿇어 앉아 찬불게(讚佛偈)를 염(念)하고 삼귀의(三歸依)를 부르고 염주(念珠)를 돌리며 염불(念佛) 108번을 하였다 정오(正午)가 되어 가부좌(跏趺坐)하고 앉아 결인(結印)하고 갔다 표정(表情)이 평화(平和)스러워 생존 시(生存時)에 비교(比較)해 더욱 밝아보였다 연꽃 향기(香氣)가 온방에 가득한 것을 곁에 있던 자(者)들이 모두 맡을 수 있었다 아들들이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감실(龕室)에 모실 때 구경하던 수천(數千) 명의 사람들이 환희정례(歡喜頂禮)하였다 그 밖에 자세(仔細)한 것은 본전(本傳)에 적혀있다


찬(讚)

어머니가 유명(遺命)으로 감실(龕室)을 마련하게 하니 관곽(棺槨)을 치웠고 귀신(鬼神)을 맞이하지 않았고 지전(紙錢)을 사르지 않았고 짐승을 죽여 제사(祭祀)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아들들은 모든 것을 어머니의 뜻에 따르고 위반(違反)하지 않았다 내가 들으니 옛날 임종(臨終)에 앉아서 죽은 자(者)가 있었다 한다. 자식 이 전통적(傳統的)인 도의(道義)에 어긋날까 두려워하여 아비의 발을 잡아당겨 펴려하였다 그랬더니 갑자기 아비가 팔을 뻗어 자식을 때렸다 자식은 두려워 아버지를 도와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했다고 한다.


지금 설씨(薛氏)의 아들을 보면 어떠한가? 전(前)에 어머니가 남은 생(生)을 위해 내가 와서 계(戒)를 설(說)해 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그때 마침 늦어질 일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때가 되었다 기다릴 수 없다 하고는 눈을 감으니 사람들이 무척 안타깝게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배에서 내리기 전에 갈마(羯磨)를 이미 마친 줄을 어찌 알았으랴 아 ! 모든 상선인(上善人)은 의례(依例)히 한곳에 모이게 마련이다 설씨(薛氏) 모자(母子)인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 갈마(羯磨): 소작(所作) 변사작법(辯事作法)이라 번역(翻譯)한다 수계(受戒) 참회(懺悔)할 때의 일종의 의식(儀式)상 의 작법(作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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