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염불수행자료/연종집요

(三). 염불의 사구(四句)의 구별(區別)

(三). 염불의 사구(四句)의 구별(區別)

 

 

사바세계는 생멸(生滅)이 덧없이 헛된 탁악세계(濁惡世界)요, 극락세계는 생사(生死)가 없고, 영구불변 진실한 청정세계건마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당장에 극락세계를 보지 못하고 찬탄(讚嘆)한 장엄(莊嚴)의 뛰어나고 훌륭한 말을 듣고 옅은 지견(知見)으로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많아서 도리어 사바세계를 진실한 세계로 인정하고 극락세계를 허망(虛妄)한 세계로 인정하여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세상 사람이 염불하는데 사구(四 句)의 구별이 생기게 되니 곧 무원염불(無願念佛) 속원염불(俗願念佛) 진원염불(眞願念佛) 양원염불(兩願念佛)이다.

 

(가) 무원염불은 극락왕생도 현세탁복(現世濁福) 곧 자손, 부귀, 장수 등도 발원하지 아니하고 다만 염불하면 좋다는 말만 듣고 염불하는 것이다.

원래 염불법문(念佛法門)은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염불하여야 왕생하게 되는 것인데 왕생 하려는 발원이 없이 염불만 하여서는 왕생하기가 어렵다.

 

(나) 속원염불(俗願念佛)은 현세(現世)의 속계(俗界) 탁복(濁福)만을 발원하여 염불 하는 것이니, 이는 미망(迷妄)한 최하의 비열(卑劣)한 발원이다.

부처님이 四十九년 동안을 설법하신 것은 육도(六道)를 중생들이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끝이 없이 전전(轉轉)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돌아가며 고를 받는 것을 제도(濟度)하시어 속히 성불(成佛)하는 길을 가르치신 것이거늘 육도를 벗어날 생각은 없고 현세에 눈이 어두워 이 탁악세계(濁惡世界)에서 고의 원인이 되는 탁복(濁福)만을 받으려 발원하니 실로 연민(憐憫)할 중생이다.

 

(다) 진원염불(眞願念佛)은 극락왕생만을 발원하고 염불하는 것이니 이것은 진정한 무상(무상)의 발원이므로 왕생만 발원하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면 저절로 현세에서는 몸과 마음이 안온(安穩)하고 가내가 태평하며 하는 일이 여의(如意)할 뿐 아니라 죽을 때에 반드시 왕생하게 될 것이니, 이와 같이 현세와 미래에 있어서의 효과는 참으로 일거양득의 법이니 염불하는 사람은 명심하여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라) 양원염불(兩願念佛)은 속원(俗願)과 진원(眞願)을 겸하여 염불하는 것이니 이것은 두 원(願)이 뒤섞이어 구별이 안 되어 발원이 한결같지 못하고 부처님의 본뜻과도 어긋나므로 왕생하기 어렵다.

 

 

: 지견(知見) 사리(事理)를 증지(證知)하는 견해를 말함이다. 헛갈리어 어지러운 실상과 진리를 실지로 사실로 아는 견해를 말한다.

 

 

 

                     (四) 염불삼매(念佛三昧)

 

삼매(三昧)는 옛말이오. 새말에는 삼마지(三摩地), 삼마제(三摩提)라 쓰고 정정(正定) 등지(等持)라 번역한다.

정정(正定)은 올바르지 못하고 어지러움을 여의므로 정(正)이라 하고 마음이 한 경(境)에 머물러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정(定)이라 한다.

등지(等持)는 정신이 혼미함과 마음의 산란함이 없으므로 등(等)이라 하고, 마음을 한 경(境)에 머무르게 하므로 지(持)라 한다.

 

염불삼매(念佛三昧)라 함은 염불하는 이가 마음으로써 부처님께 반연((攀緣)하며, 부처님으로써 마음에 얽매어 마음과 마음이 서로 상속(相續)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면, 이때에 안으로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밖으로 경계(境界)가 침입(侵入)하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수(受)를 받지 아니하고, 정수(正受)를 얻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염불삼매 라 한다.

 

염불삼매를 구별하면 두 가지가 있으니,

 

(一)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관념(觀念)하거나 혹은 일심으로 법신(法身)의 실상(實相)을 관념하거나 (이상 두 가지는 관상염불[觀相念佛])또는 일심으로 불명(佛名)을 칭념(稱念)하는 행법(行法)을 닦는 것을 염불삼매라 하니 이것은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라 한다.

 

(二) 위의 세 가지 인행이 과(果)를 이루어 마음이 선정(禪定)에 들어서 혹은 불신(佛身)이 눈앞에 나타나거나 혹은 법신(法身)의 실상에 꼭 들어맞는 것을 염불삼매라 하니 이것은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라 한다.

인행(因行)의 염불삼매는 이것을 수(修)라 하고 과성(果成)의 염불삼매는 이것을 발득(發得 곧 지혜가 생기므로 점점 얻게 되는)이라 한다.

 

『관불삼매해경(觀佛三昧海經)』에는

「염불삼매를 성취함에는 오연(五緣)이 있으니,

(1) 계행(戒行)을 지니고 범하지 아니 할 것.

(2) 사견(邪見)을 일으키지 아니할 것.

(3) 아첨(阿諂)하며 교만(僑慢)하지 아니 할 것.

(4)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성내고 원망하며 강새암하지 아니할 것.

(5) 용건정진(勇健精進)]할 것 이라」 하였다.

 

 

: 반연(攀緣) 원인을 도와서 결과를 맺게 하는 작용을 말함. 대경(對境)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제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칡덩굴이 다른 나무나 풀줄기가 없으면 감고 올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야 일어나는 것처럼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대경(對境)을 의지하고야 일어나니 이런 경우에 칡덩굴은 다른 나무나 풀을, 노인은 지팡이를, 마음은 대경을 반연하다. 이 반연은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된다.

 

    수(受) 수는 감각을 말함이니 바깥경계를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수(受)에는 고수(苦受), 낙수(樂受), 사수(捨受)의 세 가지 감각이 있다.

 

    정수(正受) 범어 삼매를 번역한 말이니 삼(三)은 정(正)이요, 매(昧)는 수(受) 니 선정의 다른 이름이다. 그릇됨과 산만을 여의므로 정이라 하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 사심(私心), 망념이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법을 들여서 마음에 있는 것을 수(受)라 하니 즉 맑은 거울이 무심히 물(物)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관심(觀心) 자기 마음의 본성을 똑똑히 관조(觀照)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은 만법의 주체로 어떠한 일도 마음에서 빠지는 것이 없으므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곧 온갖 법을 관찰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事)와 이(理)를 관찰함을 총괄하여 관심이라 한다.

 

 

             (五) 선지식(善知識)에게 배워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한 번 보고 들은 것이 선악(善惡)간에 머릿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바꾸어 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운 모양인데 이것을 선입견(先入見)이라 한다. 이 선입견이 있는 사람은 소견(所見)만 고집하며 또 옳은 법(法)을 가르쳐 주어도 시키는 대로 잘 쫒지 아니하고, 자기의 소견(所見)만 고집하며 또 옳은 법을 알지 못하므로, 이법 저 법을 섞어서 행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것은 모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선지식 이라는 것은 자기도 옳은 도(道)를 닦으면서 다른 사람을 옳은 도(道)로 가르쳐 이끄는 이를 말함이니 불보살도 선지식이요, 옳게 잘하는 이는 다 선지식 이다. (부정한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나 벗은 악지식(惡知識)이다).

 

경(經)에 말씀 하시기를

「도(道)를 얻는 데는 선지식이 전인연(全因緣)이라」하였고, 성암법사(省庵法師)는 「세간(世間)의 사소한 기술(技術)도 선생이 있어야 하거늘 하물며 불법에 있어 서랴.」하였으니 공부하는 데는 선지식을 만나야 하는 것이며, 임종 때에는 선지식이 더욱 긴요한 것이다.

만일 선지식을 만났거든 그의 지도하는 대로 곧 실행 하여야 하나니 다른 일을 핑계하고 차일피일 하다가 필경 실행하여 보지도 못하고 명(命)을 마치어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면 이 보다 더 큰 원통한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적실화상(寂室和尙)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이 정토를 닦으려 하거든 지금 몸이 건강할 때에 부지런히 닦을 것이다. 만일에 지금은 바쁘니까 조금 한가하거든 닦겠다 하거나, 지금은 가난하니까 부자가 되거든 닦겠다 하거나, 아직 나이 젊으니까 늙어지거든 닦겠다 하면서 닦지 아니 하다가 별안간에 죽게 되면 잘못 된 뒤에 아무리 후회 하여도 어찌 할 수가 없으리라」하였다.

 

 

: 악지식(惡知識) 나쁜 법과 사특(邪慝)한 법을 말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마도(魔道)에 들게 하는 이를 말함. 악사(惡師), 악우(惡友)와 같다.

 

    사특(邪慝) 간사하다는 뜻이다. 비뚤어진 마음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