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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연종집요

제 五장 연종(蓮宗)의 염불방법(念佛方法)

제 五장 연종(蓮宗)의 염불방법(念佛方法)

 

 

              一. 염불(念佛)의 의의(意義)

 

 

연종(蓮宗)에서 염불하는 본뜻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의 힘으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염(念)하는 것인데, 이는 아미타불 이 세우신 四十八원(願)중에 [유정(有精)]이 내 이름을 지성(至誠)으로 염하면 임종시(臨終時)에 내 나라에 낳게 하신다]는 원(願)이 있는 까닭이 있다.

 

그 밖에도 다음의 여섯 가지 까닭이 있다.

(-)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가장 수승하시고 가장 존귀하시고 자비(慈悲)하시다.

(=)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유정(有情)과 연(緣)을 맺으신 것이 가장 깊으시다.

(三) 시방제불(十方諸佛)중에 아미타불이 원력(願力)으로 유정을 접인(接引)하시는 것이 가장 많으시다.

(四)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정토(淨土)중에 아미타불의 정토가 가장 좋다.

(五)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정토 중에서 아미타불의 정토가 가장 가깝다.

(六) 시방제불(十方諸佛)의 명호(名號)중에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는 공덕이 가장 많다.

그러므로 아미타불을 오로지 염하고 다른 부처님을 염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二. 염불(念佛)의 종류(種類)

 

 

염불법(念佛法)에 실상염불(實相念佛), 관상염불(觀像念佛), 관상염불(觀想念佛), 칭명염불(稱名念佛)의 네 가지가 있다.

(-) 실상염불(實相念佛)은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空)한것도 아닌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이(理)임을 관념(觀念)하는 것인데, 이것은 유정(有情)의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해오(解悟)하는 이가 드문 법이다.

(=) 관상염불(觀相念佛)은 단정히 앉아서 부처님의 만든 상(像)또는 화상(畵像)등의 상신(像身)을 관념하는 것이니 상신이 없어지면 그 관념이 사이가 떨어져 끊어지는 염불법이다.

(三) 관상염불(觀相念佛)은 고요히 앉아서 부처님의 원만하신 상호(相好)만 상념(想念)하는 것인데, 이것은 유정(有情)의 마음은 굵고 경(境)은 가늘어서 능히 묘관(妙觀)을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四) 칭명염불(稱名念佛)은 지명염불(持名念佛)이라고도 하며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염(念) 또는 창(唱)하는 것인데, 이것은 가장 간단하고 수행(修行)하기 쉬우며 왕생하기 쉬운 것이므로 네 가지 염불법 중에 손쉬운 방법이다.

 

 

: 실상염불(實相念佛) 네 가지 염불법의 하나이다. 자신과 일체 우주 만물의 진실한 자성인 법신을 관념하는 것이다.

 

    관상염불(觀像念佛) 네 가지 염불법의 하나이다. 염불을 해석하면 염(念)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부르는 것이요, 불(佛)은 불상과 불체(佛體)와 불명(佛名)에 통하므로 네 가지로 염불법을 나눈 것이다. 이 염불은 일심으로 한 부처님의 불상을 관념하고 생각하는 염불이다. 이 염불을 닦는 이는 죽은 뒤에 그 부처님의 정토에 왕생한다고 한다.

 

    관상염불(觀想念佛) 네 가지 염불법의 하나이다. 단정히 앉아서 순일(純一)한 마음으로 한 부처님의 상호(相好), 공덕(功德)을 관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삼매에 들면 분명히 부처님의 볼 수 있고 한 부처님을 보게 되면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닦는 이는 그 불토에 왕생한다고 한다.

 

    칭명염불(稱名念佛) 네 가지 염불법의 하나이다. 이 염불은 불명을 부르는 즉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는 염불을 말한다.

 

    중도실상(中道實相) 우주 만유의 진실한 체상(體相)을 말한다. 이변(二邊)이 편사(偏邪)를 여읜 불편중정(不偏中正)의 도를 말한 것이다. 중도에 대한 해석은 각 종파에 따라 같지 아니하니 법상종은 유식(唯識), 천태종은 실상(實相), 화엄종은 법계를 중도로 한다. 중도실상이란 말로 나타내는 뜻도 또한 깊고 얕은 구별이 있다.

 

 

               三. 염불수행(念佛修行)의 요건(要件)

 

 

염불법문(念佛法門)에는 신(信), 원(願), 행(行)의 세 조건을 구비하여야 극락에 왕생하기 쉽고, 구비하지 못하면 왕생하기 어려운 것이다.

신(信)은 믿는 것이니 아미타불의 四十八원(願)과 석가모니불의 교어(敎語)와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찬탄(讚歎)을 굳게 믿는 것이다.

『유마경(維摩經)』에는[서방정토(西方淨土)에 가고자 할진대 깊이 믿는 것이 견고(堅固)하여야 하나니 정토의 항하사(恒河沙)제불(諸佛)은 모두 정토를 정신(正信)하던 사람들이라]하셨고 『연지대사(蓮池大師)』는 [정토에 왕생하려면 진심으로 믿어야 하나니 千사람이 믿으면 千사람이 왕생하고 만(萬)사람이 믿으면 萬사람이 왕생한다]하였고, 『종경록(倧鏡錄)』에는[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천불(千佛)이라도 구(救)할수 없느니라]하였다.

 

원(願)은 어느 때에나 항상 사바세계의 생사고(生死苦)를 싫어하고 극락정토의 보리의 낙(樂)을 사모(思慕)하여 선악(善惡)의 업(業)을 짓는 대로 선업(善業)은 회향(廻向)하여 정토에 나기를 원(願)하고, 악업(惡業)은 참회(懺悔)하여 정토에 낳기를 원하되 자기 혼자서만 왕생할 것을 원할 것이 아니라 일체 중생이 함께 왕생하기를 원할 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도 [행(行)만 하는 공덕은 성취 할 수 없으므로 원이 있어야 하나니 비유(臂喩)하면 소가 수레를 끌 수 있지만 모는 사람이 있어야 가려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정토에 왕생하는 원도 이와 같으니 행하는 복덕(福德)은 소와 같고 원은 모는 사람과 같다]하였고, 『화엄경행원품(華嚴經行願品)』에는 [이 사람이 임종(臨終)할 때에 최후 찰나에 온갖 근(根)들이 모두 흩어져 망가지고 온갖 친속(親屬)들을 모두 여의어 버리고 온갖 위세(威勢)를 모두 잃어버리고 내지는 코끼리 말 타고 다니는 수레 진보(珍寶)등이 하나도 따라오지 못하지마는 이 원력(願力)만은 떠나지 아니하고 어느 때에나 항상 그 앞을 인도(引導)하여 한 찰나 중에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된다]고 하였다.

 

행(行)에는 정행(正行)과 조행(助行)이 있으니, 정행(正行)은 나무아미타불의 여섯자(字))혹은 아미타불의 넉자를 항상 염(念) 혹은 송(誦)하는 것이다.

조행(助行)은 (1) 예배 공양하고 (2)주문(呪文)경문(經文)을 염송(念誦)하고 (3)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하고 (4)애정을 끊고 (5)모든 선사(善事)를 행하고 (6)닦은 공덕을 극락에 회향(廻向)하는 것이다.

신, 원, 행의 신, 원은 눈과 같고 행은 발고 같으며 또 신, 원은 소와 같고 행은 수레와 같으며 또 신, 원은 바둑판의 줄과 같고 행은 바둑과 같으므로 이 신, 원, 행의 셋 중에서 하나만 없어도 성취하지 못한다.

더욱 신, 원이 주재(主宰)가 되어 인도하는 것이므로 신, 원만 한결같이 되면 모든 선행(善行)이 모두 정토(淨土)의 자량(資糧)이 되며 설혹 불행히 잘못 악사(惡事)를 지었더라도 성심으로 참회(懺悔)하고 상속심(相續心)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족히 왕생의 묘행(妙行)이 되는 것이다

 

 

: 자량(資糧) 자재(資財)와 식량(食糧)의 뜻이니 보살 수행의 다섯 계위(階位)중의 처음 계위를 자량위(資糧位)라 하는데, 이것은 보살이 보리,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선근, 공덕의 자량을 닦아 모으는 뜻이므로 이렇게 이름하는 것임.

 

    상속심(相續心) 다른 생각을 섞지 않고 오직 아미타불만 생각하는 마음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