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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연종집요

(八). 아미타불의 상형(像形)과 인상(印相)

  (八). 아미타불의 상형(像形)과 인상(印相)

 

 

아미타불의 색탈�(色身像)은 관무량수불경(觀無量壽佛經)에 말씀하셨거니와 그 상형과 인상이 현교와 밀교가 각각 다르다. 현교에는 좌상 입상의 구별이 있고 밀교에는 금강계와 태상계의 구별이 있다.

현교에는 좌상 입상이 다 라발(螺髮)의 출가형(出家形)이요, 밀교에서는 좌상은 금강계, 태장계의 양부가 모두 정인(定印)을 맺었으니 이것은 미타성도자리(彌陀成道自利)의 상(相)이요. 입상은 이 정인을 분리하여 상하로 나누어 오른손을 들고 왼 손을 내리지 이것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공중에 머물러 서 계신 아미타불이니 중생을 맞아서 정토로 접인 하시는 화타(化他)의 모습이다.

밀교에서는 금강계의 좌상은 보관형(寶冠形)으로 정인을 맺으신 모습이고, 태장계의 좌상은 라발형으로 정인을 맺고 두 눈을 조금 감고 아래를 보시는 모습이다.

지금 인도에 남아있는 불상을 보면 중인도에는 라발형의 불상이 많고 북인도 건태라지방의 불상에는 대개 파상(波狀) 모양이 있는데,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라발형의 불상을 모신다.

 

 

: 색신(色身) 빛깔과 형상(形象)이 있는 몸을 말함. 즉 육신(肉身)이다. 불보살의 상호신(相好身)을 말하는데, 빛깔도 형상도 없는 법신에 대하여 빛깔과 형상이 있는 신상(身相)을 말한다.

 

    인상(印相) 인계(印契), 계인(契印), 수인(手印)이라고도 한다. 손가락 끝으로 각종의 형상(形相)을 짓는 것을 말함. 불보살등이 본서(本誓)를 표치(標幟)하는 것을 말함이다.

 

    정인(定印) 입정(入定)한 모습을 표시하는 인상(印象)이다. 정인이 각각 다르고 많이 있으나 그 중 현저한 것은 미타정인(彌陀定印 묘관찰지정인)과 법계정인(法界定印 대일정인)이다. 미타정인은 배꼽 앞에서 두 손을 제쳐서 서로 엇섞고 둘째손가락을 세워서 서로 등을 대고 좌우 엄지손가락으로서 좌우의 둘째손가락 끝에 대는 것이다. 법계정인은 배꼽 앞에서 두 손을 제쳐서 오른 손 네 손가락의 등을 왼 손 네 손가락위에 놓고 두 엄지손가락의 끝을 서로 대서 네 손가락 위에 세우는 것이다.

 

    접인(接印) 중생을 받아들여 인도함을 말한다.

 

    입정(入定) 선정(禪定)에 드는 것이니 마음을 한 곳에 정하고 고요히 생각하는 것을 말함. 출가인의 죽음을 입정이라 한다.

 

 

              (九).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해석(解釋)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나무(南無)는 나모(南謨 南模 南牟 那謨 娜謨 娜母), 나마(南摩 那摩), 나망(南忙), 납막(納莫), 납모(衲慕), 낭막(曩莫), 낭모(曩謨)라고도 쓰며 귀명(皈命), 귀의(歸依), 귀투(歸投), 귀례(歸禮), 예배(禮拜), 경례(璥禮), 신종(信從), 계수(稽首), 굴슬(屈膝), 구제(救濟), 구아(救我), 도아(度我)라 번역한다.

귀명(皈命)의 귀(皈)는 백(白)으로 돌이킨(反)다는 뜻이니 곧 물들(染)은 것을 돌이켜서 정(淨)을 이룬다는 뜻이다. 또 귀명에서 세 가지 해석이 있다.

(一). 나의 신명(身命)을 던져 불타(佛陀)에 귀취(歸趣)하는 뜻이요

(二). 부처님의 교명(敎命)에 귀순(歸順)하는 뜻이고,

(三). 명근(命根)으로써 일심(一心)의 본원(本源)에 환귀(還歸)하는 뜻이니 곧 중생의 육근(六根)이 일심(一心)으로부터 생겨서 그 근원을 배반하고, 육진(六塵)으로 나타나서 八萬四千의 진로(塵勞)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이제 명근으로서 육근을 통틀어 거두어들여 그 일심의 근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므로 귀명이라 한다.

 

통틀어 말하면 중생이 불타를 향하여 지심(至心)으로 귀의(歸依) 신순(信順)하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아미타(阿彌陀)]는 범어(梵語)로 두 이름이 있다.

하나는 아미타유사(阿彌陀臾斯)니 무량수(無量壽)라 번역하고, 다른 하나는 아미타바(阿彌陀婆)니 무량광(無量光)이라 번역한다.

무량수(無量壽)는 아미타불의 수명이 무량무변(無量無邊) 아승기겁(阿僧祈劫)이니 곧 아미타불의 수명은 한량이 없어서 수로 계산할 수도 없는 까닭으로 무량수라 한다.

불수(佛壽)에는 법신수(法身壽), 보신수(報身壽), 응신수(應身壽)의 세가지가 있다,

법신수는 빛도 없고 형상도 없이 삼제(三際)에 통하므로 무시무종(無始無終) 즉 시초도 없고 종말도 없어서 수량(壽量)의 장단(長短)을 말할 수 없는 것이요.

보신수는 인위(因位)에서 지은 한량없는 원(願)과 행(行)의 과보(果報)로 나타난 만덕(萬德)이 원만한 불신이므로 한번 얻으면 유시무종(有始無終) 즉 시초는 있고 종말은 없는 것이니 수(壽)가 무량(無量)이고  응신수는 왕궁(王宮)에 탄생하셨다가 쌍림(雙林)에 열반(涅槃)하신 서가모니불과 청태국(靑泰國)의 아미타불과 같이 중생을 교화하시려는 부처님이 중생의 기류(機類)에 따라 나타내시는 몸이므로 유시무종(有始無終) 즉 시초도 있고 종말도 있어서 수량(壽量)에 기한(期限)이 있는 것이다,

 

[불명경(佛名經)]에 의하면 응신불(應身佛)의 수명이

월면불(月面佛)은 一일 一야,

일면불(一面佛)은 千八白세(歲)

묘성분성불(妙聲分聲佛)은 六十白세

지자재불(智自在佛)은 十二千세

범면불(梵面佛)은 二十二千세

대중자재불(大衆自在佛)은 六十千세

위덕자재불(威德自在佛)七十六千세

마혜수라불(摩醯首羅佛)一億세

범성불(梵聲佛)은 十億세

또 현겁(賢劫)의 七불(佛)인

비사부불(毘舍浮佛)은 二千겁(劫)

시기불(尸棄佛)은 六十千겁

비바시불(毘바尸佛)은 八十千겁(劫)

구류손불(拘留孫佛)은 十四소겁(小)

가섭불(泇葉佛)은 二十소겁

구나함모니불(痀那含牟尼佛)은 三十소겁

석가모니불(釋泇牟尼佛)은 一白년이라]하였다.

[무량광(無量光)]은 아미타불의 광명이 무량(無量)하시고 장애(障礙)없이 시방국(十方國)에 두루 비친다는 뜻이다.

 

광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신광(身光: 즉 몸광 또는 외광(外光), 색광(色光)이라고도 한다.)이니 몸에서 나는 광이요, 다른 하나는 심광(心光 즉 마음광 또는 내광(內光), 지혜광(智慧光)이라고도 한다)이니 심지(心地)가 명랑한 것인데 불보살의 광명이 지혜로서 나오므로 지혜가 광명이요 광명이 지혜다. 또 광명에 상광(常光)과 방광(放光 또는 현기광[現起光]이라고도 한다)이 있으니 상광은 불보살의 머리나 몸에 항상 있는 원광(圓光)이요, 방광은 필요한 때에 임시로 놓으시는 광이니 가령 발, 무릎, 배꼽, 마음, 입, 눈썹 사이 등에서 놓으시는 광 같은 것인데

부처님께서 발 아래로 놓으시는 광은 지옥도(地獄道)에 비추어 유익(有益)하게 하시는 것이요,

무릎에서 놓으시는 광은 축생도(畜生道)를, 음장(陰藏)에서 놓으시는 광은 귀도(鬼道)를, 배꼽은 아수라도(阿修羅道)를, 마음은 인도(人道)를, 입은 이승(二乘)사람을 눈썹 사이는 대승(大乘)사람이라한다.

 

[불(佛)은 불타(佛陀)를 약한 말이요 또 부타(浮陀, 部陀), 부도(浮圖 浮屠), 부두(浮頭), 발타(勃陀), 발타(勃馱), 모타(母陀), 몰타(沒陀), 몰타(沒馱)라고도 하며 각자(覺者) 지자(智者)번역한다.

각자(覺者)의 각(覺)에는 각찰(覺察), 각오(覺梧)의 두 뜻이 있으니

(一). 각찰(覺察)은 번뇌(煩惱)를 깨달아 살펴서 해(害)하지 않게 하는 것이 세상 사람이 적(敵) 있는 것을 각지(覺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일체지(一切智)라 한다.

(二).각오(覺悟)는 제법(諸法)의 사리(事理)를 각지(覺知)하여 요료(了了)분명한 것이 잠이나 꿈을 깨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일체종지(一切種智)라 말한다.

스스로 깨달으며 또는 능히 다른 이를 깨닫게 하여 자타(自他)의 각행(覺行곧 스스로 깨닫고 자비로 행하는 것) 이 아주 부족함이 없는 것을 불(佛)이라 칭하니 즉 자각(自覺)은 범부(凡夫)와 다르고 각타(覺他)는 이승(二乘)과 다르며 각행(覺行)이 아주 부족함이 없는 것이 보살과 다른 것을 말한 것이니 그 이유는 범부는 자각할 수 없고 이승은 자각하되 각타의 행(行)이 없고 보살은 자각하되 각행(覺行)이 원만하지 못한 것이다.

 

지자(智者)는 이지(二智)를 충분히 갖추어 일체제법(一切諸法)을 각지(覺知)하는 것이 요료분명한 까닭으로 지자(智者)라 하며 세 가지의 지혜가 있다.

(一).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총상(總相)을 개괄적(槪括的)으로 아는 지혜인 일체지(一切智)와

(二). 중생을 교화(敎化)하기 위하여 능히 화도(化道)의 종류와 차별을 아는 지혜인 도종지(道種智또는 化道智, 薩智)와

(三)일체만법(一切萬法)의 별상(別相)을 낱낱이 정밀하게 아는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삼종이 있다.

 

: 귀명(皈命) 귀(皈)는 백(白)으로 반(反 돌이키다)하는 뜻이니 즉 염(染 물들음)을 돌이켜서 정(淨 깨끗함)을 이루는 뜻이다. 귀명은 一. 신명(身命)을 던져 불타(佛陀)에게 돌아가 의탁하는 뜻이요. 二. 부처님의 교명(敎命)에 따름의 뜻이요. 三. 명근(命根)을 그 근본에 돌려보내는 뜻이다. 통틀어 말하면 중생이 부처님께 향(向)하여 지극히 성실한 마음으로 귀의(歸依), 신순(信順)하는 뜻이다.

 

    불타(佛陀)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불(佛)이라 약칭한다. 불타는 미망(迷妄)을 여의고 스스로 모든 법의 진리를 깨닫고 또 다른 중생을 교도하여 깨닫게 하는 자각(自覺), 각타(覺他)의 이행(二行)을 원만히 성취한 이를 말함. 이 불타란 말은 처음 보리나무 아래서 성도(成道)하신 서가모니불에 대한 칭호로 쓴 것으로 불타는 서가모니불 뿐이었으나 뒤에 불교의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있게 되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으로 발전하여 드디어 그 수가 한량없게 되었다.

 

    귀취(皈趣) 돌아가 의탁(依託)함을 말한다.

 

    명근(命根) 생명의 근원이란 뜻이다.

 

    일심(一心) 만유(萬有)의 실체인 진여(眞如)를 말함. 우리들 평상시의 마음을 말한다.

 

    본원(本源) 근본(根本). 근원(根源). 본근(本根)의 뜻이다.

 

    환귀(還皈) 돌려보낸다는 뜻이다.

 

    진로(塵勞) 진로는 번뇌의 별명이니 중생의 번뇌에 八萬四千이 있다는 것이다. 진로에 두 뜻이 있으니 一. 진(塵)은 육진(六塵)을 말함이요 노(勞)는 피로하여 싫증을 낸다는 뜻이다. 즉 객관세계인 육진의 경계를 따라 마음의 번뇌가 일어나서 피곤하게 되므로 번뇌를 진로라고 한다. 二. 진(塵)은 오심(汚心)이요, 노(勞)는 근로(勤勞)와 고생(苦生)의 뜻이니 번뇌는 마음을 어지럽게 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괴롭고 애쓰게 하므로 진로라 한다.

 

    귀의(皈依) 귀입(皈入), 귀투(皈投)의 뜻이다. 돌아가 의지하여 구원을 청함을 말한다.

 

    삼제(三際) 삼세(三世)와 같다. 전제(前際 과거), 중제(中際 현재), 후제(後際 미래)다.

 

    쌍림(雙林)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숲을 말함. 서가모니불이 입멸(入滅) 하신 곳이다.

 

    열반(涅槃) 불교의 최고 이상을 말한다. 열반을 구칭(舊稱)에는 니왈(泥曰),니원(泥洹), 니반(泥畔), 열반나(涅槃那)라 하고 신칭(新稱)에는 파리닐박남(波利暱縛喃)이라 한다. 구역에는 멸(滅), 멸도(滅度), 적멸(寂滅), 불생(不生), 무위(無爲), 안락(安樂), 해탈(解脫)이라 하였고, 신역에는 원적(圓寂)이라 번역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진리를 궁구(窮究)하여 미(迷)한 생사를 초월해서 불생불멸한 법을 해득한 경지를 말함. 범부중생은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여 명근(命根)이 끊어지면 죽었다하나, 불보살은 생사를 여의신 까닭으로 불보살에게 대하여는 열반이라 하니 이것은 즉 번뇌를 멸하고 생사를 멸하여 적정(寂靜 즉 번뇌를 여의고 고[苦]를 멸한 해탈을 말함)하게 되신 뜻이다.

 

    기류(機類) 기(機)는 종교의 대상인 교법에 대한 주체(主體 즉 중생)를 통틀어 기라 하는데, 기류는 근기(根機)의 종류란 뜻이다. 중생의 근기 즉 불교의 이상(理想)을 실현하여 부처님이나 성자가 될 가능성에 여러 가지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심지(心地) 심지는 마음이니 마음이 일체 만법을 내는 것이 마치 땅에서 풀, 나무 등을 내는 것과 같으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상광(常光) 부처님에게 항상 비치고 있는 광명을 말한다.

 

    방광(放光)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시기 위하여 특별히 놓는 광명을 말한다. 또는 현기광(現起光)이라고도 한다.

 

    지옥도(地獄道) 육도(六道)의 하나이다. 죄악(罪惡)을 지은 중생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을 말함인데, 도(道)는 선악의 업(業)이 중생으로 하여금 고락(苦樂)의 곳에 가게 하는 뜻으로 도라 한다. 이 도로 나아갈 곳이란 뜻으로 지옥도라 한다.

 

    축생도(畜生道) 육도의 하나이다. 축생취(畜生趣)라고도 한다. 축생이 될 업을 지은 중생이 죽은 뒤에 가서 나는 곳을 말한다. 곧 축생들이 사는 곳을 말함. 또는 죽은 뒤에 축생으로 태어날 원인이 될 행위를 말한다.

 

    이승(二乘) 두 종류의 교법을 말하는 것이다. 一. 소승(小乘), 대승(大乘), 二.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三. 성문승, 보살승(菩薩乘)등과 같이.

 

    대승(大乘) 승(乘)은 실어 옮기는 뜻이니 부처님의 교법이 능히 범부를 실어 옮겨서 성인의 지경(地境)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배나 차에 실어서 일정한 곳(미욱한 이곳에서 깨침인 저 언덕)에 이루게 하는 것과 같은 까닭으로 승(乘)이라 하는데, 부처님의 교법을 가리킨다. 대승은 사람을 싣고 깨침인 저 언덕 즉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교법 가운데서 교리(敎理), 교설(敎說)과 이상경에 도달하려는 수행과 그 이상목적(理想目的)이 크고 깊은 것이므로 이것을 말하는 근기 또한 그릇인 것을 대승이라 한다. 즉 보살의 대근(大根)을 실어서 불과(佛果)의 지경(地境)에 이르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법문을 말하는 것임.

 

    각오(覺悟) 미혹(迷惑)에서 벗어나 훤하게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함이다.

 

    번뇌(煩惱) 혹(惑), 염(染),루(漏), 결(結), 박(縛), 전(纏), 액(軛), 사(使), 구(垢), 폭류(瀑流), 진로(塵勞), 진구(塵垢) 결사(結使)등이라고도 한다. 중생이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邪情)에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게 하고 어지럽게 하며 더럽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다. 중생은 번뇌로 인하여 업(業)을 짓고 괴로운 과보를 받아 미(迷)의 세계(즉 생사)에 매어 사는 것이다. 즉 눈앞의 고와 낙에 미(迷)하여 탐욕(貪慾), 진심(瞋心), 우치(愚癡) 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고달프게 하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이다. 대개 번뇌를 끊어야 보리(覺)를 얻는다고 하나 본래 번뇌는 실로 없는 것이 아니고 중생이 망견(妄見)으로 망각(忘却)하는 것뿐이므로 망견만 돌이키면 보리와 번뇌에 걸림이 없는 열반(즉 보리)을 알게 된다.

 

    도종지(道種智)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온갖 도법(道法)을 배워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의 지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