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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왕생집

125. ●왕민중 시랑(王敏仲侍郞)

125. ●왕민중 시랑(王敏仲侍郞)

송(宋)나라 왕고(王古)는 자(者)가 민중(敏仲)으로 동도(東都)사람이다 벼슬은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이르렀으면서 자비(慈悲)한 마음으로 백성(百姓)을 사랑하고 깊이 선종(禪宗)에 계합(契合)하였다 또한 정토법문(淨土法門)의 우수(優秀)함을 깨달아 직지정토결의집(直指淨土決疑集) 3권(卷)을 지어 평생(平生)을 염불(念佛)을 정근(精勤)했으며 염주(念珠)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고일상생활(日常生活)에서 늘 항상(恒常) 서방정관(西方淨觀))으로 불사(佛事)를 삼았다 어떤 스님이 정(定)에서 정토(淨土)를 여행(旅行)한 적이 있었는데 고(古)와 갈번(葛緊)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한다. 왕생(往生)한것은 분명(分明)한 사실(事實)이었다

 

126. ●오신수진사(吳信叟進士)

송(宋) 오자재(吳子才)는 호(號)가 신수(信叟)다 벼슬을 사직(辭職)한 후 미리 관(棺) 하나를 만들어 놓고 밤에는 그 속에 누워 동자(童子)에게 관(棺)을 두드리게 하고


--오신수(吳信叟)여 돌아가자

삼계(三界)는 편(便)치 않아 머물만한 곳 아니다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연태(蓮台)가 있으니 돌아가자

하고 노래하며 스스로 한 줄씩 화답(和答)하였다

나중에 병(病)없이 죽었다--


127.●백거이 소부(白居易 小傅)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는 관직(官職)이 중대부태자소부(中大夫太子小傅)를 지냈다. 집을 버려 향산사(香山寺)를 만들고는 스스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호(號)하였다 만년(晩年)에 풍질(風疾)을 앓게 되자 봉전(棒錢)3만(萬)을 내어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를 한 부(部) 그리고(무량수경(無量壽經)을 의지(依支)해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莊嚴)을 매우 자세(仔細)히 하였다 그리고는 정례(頂禮)발원(發願)하여 다음과 같은 게(偈)를 써서 서방(西方)을 찬탄(讚嘆)하였다


극락세계(極樂世界) 청정(淸淨)한 국토(國土)여 모든 악도(惡道)나 고통(苦痛)이 없네 원(願)하옵나니 저같이 늙고 병(病)든 자(者)함께 무량수불(無量壽佛)의 처소(處所)에 태어나고 져


찬(贊)

전(傳)하는 이야기로는 봉래(蓬萊)에 낙천(樂天)이라는 신선(神仙)이 있었는데 낙천(樂天)이 이곳을 떠나면서 해산(海山)은 내가 돌아갈 곳 아니요 돌아간다면 반드시 도솔천(兜率天)이어야 하리 지금 다시 도솔천(兜率天)마저 버리고 정토(淨土)를 찾노니 소위(所謂) 모래를 헤쳐 진금(眞金)을 찾듯 더욱 빛나고 더욱 아름다우리 하고 노래했다 한다.


128.●장윤도총(張掄都總)

송(宋)나라 장윤(張掄)은 양절도총관(兩浙都總管)의 벼슬을 지냈다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기를 기약(期約)하며 일심(一心)으로 염불(念佛)하니 온 집안이 그를 따르지 않는 자(者)가 없었다.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처자(妻子)와 함께 하루에 염불(念佛) 만(萬)번을 불렀다

효종황제(孝宗皇帝)가 연사(蓮社)라는 친서(親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