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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왕생집

99. ●오장국왕(鳥萇國王)

 임금과 신하(臣下)의 왕생(往生)


99. ●오장국왕(鳥萇國王)

오장국왕(鳥萇國王)은 백성(百姓)을 다스리는 여가(餘暇)에는 평소 불법(佛法)을 숭봉(崇奉)하여 일찍이 시신(侍臣)에게 짐은 국왕(國王)이 되어 비록 복락(福樂)은 누리고 있으나 무상(無常)함은 면(免)할 길이 없다.

 

듣건대 서방정토(西方淨土)는 마음을 깃들일 만한 곳이라 하니 짐은 마땅히 발원(發願)하여 저 국토(國土)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고자 한다하고는 종일(終日) 행도염불(行道念佛)하였으며 부처님이나 스님들께 공양(供養)할 때 마다 왕(王)과 부인(婦人)이 몸소 음식(飮食)을 드려 이렇게 30년 동안을 거르지 않았다 붕어(崩御)할 때 얼굴에 웃음빛을 띠고 화불(化佛)이 와서 맞이하는 등(等) 상서(祥瑞)가 한 둘이 아니었다.


찬(贊) 

말세(末世)에 법(法)을 듣고 믿어 지니는 자(者)들 중에는 지위(地位)가 없는 자(者)는 많고 지위(地位)가 있는 자(者)는 적으며 지위(地位)가 있으면서 그 지위(地位)가 지극(至極)히 존귀(尊貴)한 자(者)는 더욱 적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지위(地位)가 높을수록 욕심(慾心)도 더욱 많고 욕심(慾心) 이 많을수록 번뇌(煩惱)도 더욱 깊기 때문으로 이치(理致)가 그럴진대 이를 면(免)할 수 있는 자(者)는 드물다


지금 임금의 복락(福樂)을 누라면서도 서방정토(西方淨土)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니 숙세(宿世)에 수승(殊勝)한 인연(因緣)을 심지 않았다면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제까지 제왕(帝王)으로서 마음을 불법(佛法)에 둔 자(者)를 어찌하여 기록(記錄)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 정토(淨土)전(傳)을 기록(記錄)하는 것만 해도 그 의도(意圖)가 마음을 외올로 전념(專念)하는 자(者)에게만 있었으므로 단순(單純)한 신앙(信仰)을 가진 자(者)는 함부로 기록(記錄)할 수 없었던 것이다.


100. ●위세자(魏世子)

송(宋)나라 위세자(魏世子)는 부자(父子) 세 사람이 모두 서방(西方)을 닦았으나 처(妻)만은 닦지 않았다 딸이 열네 살에 죽었는데 7일(日) 만에 다시 소생(蘇生)하여 그의 어머니에게 소녀가 보니 서방(西方)의 칠보(七寶)로 된 연못 속에 아버지와 오빠 등 세분은 이미 가서 태어날 연화(蓮華)가 있었으니 돌아가시면 반드시 그곳 연화(蓮華)에 왕생(往生)하실 것입니다만 유독(唯獨) 어머니만이 태어날 연화(蓮華)가 없었으므로 잠시(暫時) 돌아와서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뜻을 일으키소서하고 아뢰었다 어머니도 딸의 말에 감동(感動)하여 즉시(卽時) 신심(信心)을 일으켜 염불(念佛)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중에 죽어 역시(亦是) 안양(安養)에 왕생(往生)하였다.


찬(贊)

처음에는 정토(淨土)와의 인연(因緣)이 소원(疏遠)했으나 마침내 서방정토극락국(西方淨土極樂國)에 왕생(往生)하게 된 것은 믿고 믿지 않는 차이(差異)였다 경(經)에 말씀하시를 다만 믿지 않는 자(者)는 제외(除外)한다하였다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101. ●류유민 참군(劉遺民參軍)

진(晋)나라의 류유민(劉遺民)은 팽성(彭城)사람으로 한나라 초원왕(楚元王)의

후예(後裔)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효성(孝誠)으로 소문이 났다 자신(自身)의 재주를 자부(自負)하여 세속(世俗)의 무리들과 휩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처음에 부(府)의 참군(參軍)이 되었으나 숨어버렸고 사안(謝安)이 유유(劉裕)와 사귈 것을 권(勸)했으나 듣지 않고 스스로 호(號)하기를 유민(遺民)이라고 하였다


여산(廬山)에 들어가 원(遠)공<혜원법사(慧遠法師)>의 연사(蓮社)에 참예(參詣)하였고 염불삼매(念佛三昧)라는 시(詩)를 지어 자신(自身)의 전념(專念)을 표현(表現)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정중(定中)에서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광명(光明)이 땅을 비치니 모두 금색(金色)으로 변(變)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연사(蓮社)에 산지 15년째 되는 해에는 또한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옥호(玉毫)광(光)을 비치시며 팔을 드리워 이마를 어루만지시자 류유민(劉遺民)이 어찌하여 여래(如來)께서는 저의 이마만을 마지십니까? 옷으로 저를 덮어 주소서하고 간청(懇請)하니 잠시(暫時) 후에 부처님이 이마를 만지시며 가사(袈裟)를 끌어 그를 덮어주시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는 또 칠보(七寶)의 연못에 들어가니 푸르고 흰 연꽃이 만발(滿發) 한데 그 물이 한없이 밝았다 이마에는 원광(圓光)이 빛나고 가슴에는 만자(卍字)가 드러나 있는 어떤 사람이 못의 물을 가리키며 팔공덕수(八功德水)다 너는 이 물을 마셔라 하고 말하였다 류유민(劉遺民)이 물을 마시니 더없이 달고 향기(香氣)로 웠던 일을 보기도 하였다 깨어나 보니 그때까지 아직도 기이(奇異)한 향기(香氣)가 몸에서 풍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대중(大衆)에게 나는 정토(淨土)의 인연(因緣)이 이르렀다하고는 성상(聖像)을 대(對)하여 향(香)을 피우고 두 번 절하고는 저는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의 유교(遺敎)로 인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는 줄을 알았습니다. 이 향(香)을 석가여래(釋迦如來)에게 공양(供養)하고 다음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게 공양(供養)합니다 원(願)하옵건대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모두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여 지이다 하고 축원(祝願)하고는 서(西)쪽을 향(向)하여 합장(合掌)하고 갔다 그 때는 의희(義熙) 6년<410>이었다


찬(贊) 

십육관경(十六觀經)에서 정업(淨業)의 정인(正因)을 밝히면서 부모(父母)에게 효양(孝養)하는 것이 제일(第一)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불효(不孝)한 자(者)는 종일(終日) 염불(念佛)하더라도 부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임을 알 수 있겠다 지금 류유민(劉遺民)은 어려서는 효양(孝養)을 다 바쳤고 다시 깊이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들어 여러 가지 상서(祥瑞)로운 징조(徵兆)를 감응(感應)했으니 그의 왕생(往生)의 품위(品位)가 높을 것임은 의심(疑心)할 여지(餘地)가 없겠다 재가(在家)에서 정업(淨業)을 닦는 자(者)는 이것으로 만대(萬代)의 사법(嗣法)을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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