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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왕생집

4. ●승예(僧叡)스님

4. ●승예(僧叡)스님

진(晉)나라 승예(僧叡)스님은 기주(冀州)사람이라 제방(諸方)에 유학(遊學)하여 멀리 천축(天竺)<인도(印度)>에 까지 다녀왔다 관중(關中)에서 돌아와서는 나집법사(羅什法師)<구마라집>을 좇아 경의(經義)를 품수(稟受)함이라 <경전(經典)을 배웠으나> 후(後)에 여산(廬山)의 연사(蓮社)에 참예(參預)하였다 송(宋)나라 원가(元嘉) 십육년(十六年)<436>홀연(忽然)히 대중(大衆)에게 말하되 나는 장차(將次) 가야겠다. 하고 고별(告別)하고는 얼굴을 서향(西向)하여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관염(觀念)하고 합장(合掌)하여 그리고는 천화(遷化)함이라 대중(大衆)들이 보니 승예(僧叡)스님의 책상(冊床)앞에 한 송이 금연화(金蓮花)가 갑자기 시들었고 오색향연(五色香煙)이 그의 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5. ●담항(曇恒)스님

진(晉)나라 담항(曇恒)스님은 하동(河東)사람이다 어려서 혜원조사(慧遠祖師)를 의지(依支)해 출가(出家)하여 내외(內外)의 전적(典籍)에 관통(貫通)하지  못한 것이 없었으나 여산(廬山)에 들어간 후(後)에는 염불(念佛)수행(修行)에만 전념(專念)하였다 의희(義熙)십사년(十四年)<418>단정(端正)히 앉아 합장(合掌)한 채 큰소리로 염불(念佛)하며 죽었다.


6. ●도병(道昞)스님

진(晉)나라 도병(道昞)스님은 영천(穎川)사람이라 어려서부터 혜원조사(慧遠祖師)를 스승으로 하여 경율(經律)에 통달(通達)했으며 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하게 염불삼매(念佛三昧)를 극진(極盡)히 궁구(窮究)하였다 의희(義熙)십사년(十四年)<418> 예장태수(豫章太守) 왕건(王虔)이 산(山)에 들어와서 알현(謁見)하고 혜원(慧遠)공(公)의 법석(法席)을 계승(繼承)해 줄 것을 간청(懇請)하니 대중(大衆)들이 모두 숭앙(崇仰)하게 되었다. 원가(元嘉)십이(十二)년(年) 대중(大衆)을 모아놓고 염불(念佛)한 후(後)자리에 앉아서 죽었다.

찬탄(讚歎)함이라

말과 행동(行動)이 일치(一致)했다는 것은 이른바 마음과 입 두 가지로 동시(同時)에 염불(念佛)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듯하지만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境遇)가 허다(許多)하다

그러나 왕생(往生)을 바라면서 누구를 기만(欺瞞)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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