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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자료/ 왕생집

1. ● 혜원조사(慧遠祖師)


 왕생집목록(往生集目錄)

 

제일권(第一卷)

  사문왕생류(沙門往生類)

제이권(第二卷)

  왕신왕생류 (王臣往生類)

  처사왕생류 (處士往生類)

  니승왕생류 (尼僧往生類)

  부녀왕생류 (婦女往生類)

  악인왕생류 (惡人往生類)

  축생왕생류 (畜生往生類)

제삼권(第三卷)

  제성동귀류(諸聖同歸類)

  생존감응류(生存感應類)


왕생집(往生集)권지일(卷之一)

 고항(古杭)운서사(雲棲寺)

사문(沙門)주굉(袾宏)집(輯)

 사문(沙門)왕생(往生)류(類)


1. ● 혜원조사(慧遠祖師)

진(晉)나라 혜원(慧遠)은 안문(雁門)누번(樓煩)사람이라 널리 육경(六經)에 해박(該博)함이나 더욱 장로(莊老)<장자(莊者)노자(老子)>에 밝았다 도안법사(道安法師)에게서 반야경(般若經) 강의(講義)를 듣고 활연(豁然)이 대오(大悟)함이라


이를 인(因)하여 머리를 체발(剃髮)하고 염의(染衣)를 입고 스님이 되어 그를 섬겼다. 태원(太元) 육년(六年)<AD 381년>심양(潯陽)을 지나다가 여산(廬山)이 한광(閒曠)하여 가(可)히 마음이 깃들어 휴식(休息)할만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드디어 산신(山神)이 현몽(現夢)함을 감응(感應)하고 어느 날 하루저녁에 뇌우(雷雨)<번개와 비바람>가 휘몰아치더니 임목(林木)이<목재(木材)> 스스로 이르러옴에 힘들이지 않고 구(求)할 수 있었다. 자사(刺史) 환이(桓伊)가 이에 사찰을 건립(建立)하여 만들고 신운(神運)이라고 불렀다


혜영(慧永)이 먼저 서림(西林)에 머물러 주지(住持) 하였음으로 하여 혜원(慧遠)이 사는 곳은 동림(東林)이라 하였다 혜원조사(慧遠祖師)가 동림(東林)에 거주(居住)하여 머물지 사십년(四十年)동안 자취(自趣)를 속세(俗世)에 들여 놓은 적이 없이 지극(至極)한 정성(精誠)으로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만 뜻을 두어 고승(高僧)과 거유(鉅儒) 일백사십(一百四十)사람과 함께 청정(淸淨)한 연사(蓮社)를 만들었다.


연루(蓮漏) 6시간(時間)동안 선송(禪誦)을 그치지 않았고 마음과 생각을 정토(淨土)에 쏟아 부어 세 번이나 성상(聖相)을 보았으나 침묵(沈黙)하고 남에게 누설(漏泄)하지 않음이라 훗날 19년(394)7월 저녁 반야대(般若臺)에서 정(定)에서 막 일어나려고 하다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몸이 허공(虛空)에 가득한데 원광(圓光)속에서 화신(化身)부처님이 몸을 나투시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두 명의 보살(菩薩)이 좌우(左右)에서 모시고 서있는 모습(模襲)을 보았다.


또한 물이 흐르는 듯 광명(光明)이 열네 줄기로 분산(分散)하면서 아래위를 선회(旋回)하는 속에서 미묘(微妙)한 법(法)을 연설(演說)하시고 아미타(阿彌陀)부처님께서 -내가 나의 본원력(本願力)을 지키기 위하여와서 너를 안위(安慰)하노라 너는 칠일(七日)후(後)에 반드시 나의 국토(國土)에 태어나리라- 또 보니 불타야사(佛陀耶舍) 혜지(慧持) 혜영(慧永) 유유민(劉遺民)등(等)이

부처님의 곁에서 읍(揖)하며 스님께서는 저희들보다 뜻을 세운지가 오래였습니다.


어찌하여 오시는 것이 이다지 늦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이미 때가 이르러온 것을 알고는 문인(門人)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처음 이곳에 머물 는 때에 세 번 성상(聖相)을 보았고 오늘다시 두 번이나 친견(親見)하였다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할 것을 의심(疑心)할 수 없는 일이다 하고는 때가 이르자 단정(端正)히 앉아 입적(入寂)하였다


때는 의희(義熙)12년(年)(416)8월(月)6일(日)이었다 찬(讚)하여말한다 진(晉)나라 이전(以前)에도 비록 정토(淨土)의 법(法)이 비록 중국(中國)에 전(傳)해지긴 했으나 널리 전(傳)하고 힘써 행(行)하여 거리나 집집마다 정토(淨土)의 법(法)을 깨우치게 된 것은 혜원법사(慧遠法師)로 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만대(萬代)이후(以後)에 정업(淨業)을 수행(修行)하는 제자(弟子)들이 스님의 거룩한 뜻을 추존(推尊)하여 시조(始祖)로 삼게 된 것이다 참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께서 다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연설(演說)한 것이며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동토(東土)에 현신(現身)한 것이라 할 만하였다


그 공(功)이 위대(偉大)하지 않는가. 내가 예전(預前)에 여산(廬山)을 여행(旅行)하다가 호계(虎谿)의 샘을 마셔보고 삼소(三笑)의 집을 바라보면서 18현인(賢人)의 유적(遺蹟)을 배회(徘徊)한 적이 있었다. 그 규모(規模)가 홍원(弘遠)한 것을 보니 족(足)히 만(萬)명의 스님들이 살만한 곳 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전각(殿閣)은 먼지가 쌓였고 종(鐘)과 북은 적막(寂寞)에 묻혔으며 문(門)은 뒤틀리고 부엌에는 냉기(冷氣)가 감돌았다 철인(哲人)이 가시자 아름다운 자취(自趣)도 끊어지고 만 것이다 애달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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