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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땀방울마다 큰스님 뜻 이뤄가요’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일하며 수행쌓는 금강선원 태호스님〕

‘땀방울마다 큰스님 뜻 이뤄가요’



건물허가부터 혼자힘으로 5년째 불사

팜스프링스에 있는 금강선원은 목탁 소리가 울리지 않을 때는 포크레인이 쉼 없이 돌아간다. 그것도 5년째 지속되고 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미주 땅에 한국불교를 세우기 위한 태호스님의 ‘땀’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인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스님 혼자서 큰 불사를 이끌고 있다. 가끔 전문 건축인력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스님의 몫이다. 지난 달 말 금강선원을 찾았다. 초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산사에서 스님을 만나 ‘일하는 스님’이 된 사연을 들어봤다.

금강선원으로 가는 길은 녹록치않다. LA에서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1시간을 달려 243번 도로를 만나 다시 4000피트에 이르는 산을 굽이굽이 돌아 차로 올라야 한다. 운전을 하다보면 한국의 경주 불국사를 오르는 길이 연상된다. 그렇게 10분을 올라가면 금강선원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대자연의 품에서 60에이커를 빌려 들어선 금강선원은 산의 정기를 받으며 동양의 신비를 고이 간직한 채 숨 쉬고 있다. 마치 어머니의 품을 연상시키는 아늑하고 편안한 곳이다.

어디선가 정적을 깨우는 포크레인 소리가 들려온다. 스님이 열심히 포크레인을 이용해 모래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대웅전 옆에 자리한 연못의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여느 스님처럼 승복을 입은 것도 아니다. 그냥 공사복을 입고서 일을 한단다. “거의 5년을 일을 하다보니 이제는 공사장의 일꾼이나 다름없지. 포크레인도 얼마나 잘 운전하는데.”


일하는 스님

태호스님은 지난 2000년 한국에서 금강선원으로 왔다. 1998년 청화 큰스님이 세운 선원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연이었을까. 온 순간부터 스님은 일하는 스님이 되어야 했다.

선원 건물이 카운티 정부의 허가가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허가를 받기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무허가 건물을 허가받는 일이 새로 건축하는 일보다 어렵다. 카운티 정부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새로 2만 갤런의 물탱크를 세우기도 하고 선원 입구에 소방도로를 내고 신규 건축물들의 허가도 하나하나 이뤄나갔다.

그렇게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참선센터 공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98년 시작된 공사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식을 고집하는 스님은 참선센터 바닥에 모두 보일러 공사를 했다. 찾아오는 불자는 물론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온돌방을 체험케 하기 위함이다. 2층으로 구성된 참선센터는 1층은 화장실이 딸린 5개의 방과 주방으로 2층은 참선방으로 구성돼 있다. 300여명이 참선을 드릴 수 있는 규모다. 이 모든 작업을 스님이 직접 챙기고 있다. 물론 불자들의 불공도 함께 드려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선원 입구에 한국식 일주문을 세우고 태고사와 같이 한국식 법당을 지을 예정이다.


인연이 깃든 선원

태호스님에게 이 곳 선원은 큰스님의 자취가 묻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인연이 숨쉬는 곳이다.

카운티 정부에서 선원 입구에 2차선의 소방도로를 확보하고 포장 공사를 하라고 했을 때 스님은 난감했단다. 그때 인연이 찾아왔다. 웬 미국인이 고급 차를 타고 선원을 둘러보기 위해 왔다가 그만 차가 웅덩이에 빠진 것이다. 이를 보고 도와주던 스님과 미국인 사이에 대화가 오갔고 “왜 포장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스님은 “흙이 좋아 아스팔트 포장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미국인이 다시 와서 자기가 선원에 기부 형식으로 아스팔트 공사를 해주겠다 한 것이다. 그래서 일정부분을 기부 받고 스님이 나머지를 갚아 나가기로 한 것이다. 그 미국인은 인근 아스팔트 회사의 사장이었다.

선원에는 불교와의 인연을 상징하듯 코끼리 모양의 큰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등에 푸른 소나무가 솟아 있다. 인연이 있는 곳인가 보다.


계속되는 불사

스님은 이제 불사가 시작이라 한다. 제일 중요한 일주문과 한국식 법당의 건축이 남았기 때문이다.

청화 큰스님이 자리잡은 이 곳에 미주 최대의 한국식 법당을 짓는 것이 태호스님의 소망이다. 또 선원 입구에 들어설 일주문은 한인 불교계의 자랑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오는 10일 한국에서 4명의 건축 전문가들이 금강선원을 찾는다. 본격적인 공사의 시작인 것이다.

나무는 선원이 위치한 하신터 산의 목재를 직접 쓸 예정이란다. 그리고 지붕을 장식할 동기와는 한국에서 가져온다. 일주문과 함께 종각도 들어선다. 샌페드로항의 ‘우정의 종각’을 건축한 팀이 와서 종각 관련 공사를 담당할 계획이다.

5년도 긴듯한데 스님은 아직 할 일이 많은듯하다. 청화 큰스님과의 약속 때문이다.


청화큰스님의 흔적

금강선원은 2년전 열반한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선승인 청화 큰스님의 유물관이 있다. 2년동안 기거한 공간을 유물관으로 만들어 잘 보존하고 있다. 큰스님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함이다. 스님이 공부하던 방 식사하던 주방 등 모든 것들이 그대로 보존돼있다. 존경의 손때가 그대로 베어있다.

태호스님은 “큰스님의 당부대로 이 도량을 합법적인 곳으로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도량이 완성되면 초종파적이고 초종교적인 입장을 지향한 큰스님의 유지를 이어받아 국제선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물관을 오르는 길은 아담한 오솔길이다. 태호스님은 이 길을 통해 부부의 정을 쌓길 바란다 했다. 처음 미국에 온 스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태평양 해변을 손잡고 거닐던 노부부였다. 삶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스님은 선원을 ‘쉬어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단다.

“2시간을 넘게 와서 사회 속의 얘기 이웃집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여기까지 왔으면 다른 걸 얻어가야지. 신도들끼리 이웃집 얘기하다 들키면 내가 혼을 내지. 여기서는 그냥 쉬었다 가면돼. 인생도 쉬었다 가는 거니까.”




출처 : LA 중앙일보

2005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