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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욕심과 원력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욕심과 원력



  이곳 금강선원은 산중에 있는 선방입니다. 정말 산사입니다. 여기에 청화淸華큰스님께서 1997년 자리를 잡으시고 개산하신 뒤 빈승이 2000년부터 소임을 맡아 나머지 건설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공사가 거의 끝나 가는가(1차 불사계획)했더니 당국에서 소방 비상도로를 내야한다고 해서 또 포크레인을 가지고 도로를 내면서 문득 사념에 잡혔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욕심에서 하는 일인가, 아니면 원력願力으로 하는 일인가.

 우리 불교 조계종에서는 임기가 4년(재임도 가능하지만)인데 빈승은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화 큰스님께서 고구정녕히 강조하시는 가르침이 무아無我, 무소유無所有인데, 혹시 나를 내세우면서 내 절,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집착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또 후임자가 할 일도 남겨둬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든 준공 검사를 끝내서 합법화 시키고 정식으로 오픈하는 일이 큰스님으로부터 하명 받은 내 임무가 아닌가.’‘공사 중에 어려움이 많아 후임자로 오실 스님들이 미리 겁내고 있는데, 편안하게 포교하고 전법할 수 있는 도량이 되로록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등의 마음으로 바쁘면서 먼동이 터서 어두워질 때까지 열심히 하자고 자위도 해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원력을 크게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서부터를 원력이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한계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큰스님은 확연히 가르치셨습니다. ‘나’라는 것이 앞서면 모두가 욕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몸뚱이, 내 체면, 내가 소유하는 모든 것을 위할 때 욕심이 됩니다. 내 몸을 잘 가꾸며 나를 잘 보이려하고 내 것이라고 아끼며 소유하려 할 때 애쓸 때 욕심이 됩니다.

 하지만 나만이 아니고 내 것만 고집하지 않고 모두를 위할 때 원력으로 화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심私心이 있는가’, 아니면 ‘공심公心으로 사는가’의 차이입니다. 조금이라도 사심이 깃들어 있다면 욕심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혜능스님께서는 절을 하는 제자에게 크게 꾸짖음을 주십니다.

‘예본절만당禮本折慢撞인데 두혜부지지頭蹊不至地요, 유아죄족생有我罪族生이요 망공복무비忘功福無比라’

 예를 올리는 것은 나의 만심(아만심, 자만심, 교만심)을 꺾는 것인데, 어찌 머리가 땅에 닿질 않느냐. 나를 내세우면 곧바로 죄가 생기는 것이요, 나의 공을 내세우지 않으면 그 복이 비할 바 없이 크니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나를 꺾고 나를 숙이고 나를 낮출 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아만, 자만, 교만의 마음과 내 것이라는 소유욕에서 벗어나질 못하면 수도인, 수행자라 할 수 없으며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 내 체면, 내 위신을 앞세운다면 범부중생의 속인과 다를 바가 무엇일 것인가.

 조금이라도 잘 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남아서 일까. 속된 마음을 벗어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우리 모두, 속물 생각이 사라지길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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