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경전,법문자료/3. 수행자료

4. 제3 수지관법문修止觀法門 기개棄蓋

4. 3 수지관법문修止觀法門 기개棄蓋

3 장 덮개를 버릴 것

 

所言棄蓋者 謂棄五蓋 一貪欲蓋 二瞋恚蓋 三睡眠蓋 四悼悔蓋 五疑蓋.

이른바 덮개를 버린다는 것은,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탐욕의 덮개,

진에(瞋恚)의 덮개,

수면(睡眠)의 덮개,

도회(悼悔:심신心身이 산란하고 동요되어 자꾸만 후회하는 것)의 덮개,

의심의 덮개이다.

 

第一 棄貪欲蓋者 前說外五塵中生欲 今約內意根生欲. 所謂行者 端坐修禪 心生欲覺念念相續 覆蓋善心 令不生長 覺已應棄. 所以者何 如術婆伽 欲心內發 常能燒身 況復心生欲火 而不燒諸善法. 復次 貪欲之人 去道甚遠 所以者何 欲爲種種惱亂住處 若心著欲 無由根道. 如除欲蓋偈說

 

첫째, 탐욕의 덮개를 버린다는 것인데, 전에는 외부세계의 색((((()의 다섯 티끌[五塵] 속에 생긴 탐욕을 설하였지만, 지금은 내면세계의 의근(意根)에 생기는 탐욕을 요약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수행자가 단정하게 앉아서 선()을 수행하는데, 마음에 탐욕의 느낌이 생기면, 순간 순간의 생각[念念]이 연이어 계속되어, 착한 마음을 덮어버려, 더 자라지 못하게 하니, 이미 느꼈다면 반드시 곧 버려라.

 

그 까닭은 무엇인가. 술파가(術婆伽:어부의 이름)가 욕심이 마음속에 일어나, 마침내 몸을 태워버린 것과 같은데, 하물며, 또한 마음에 탐욕의 불길이 생긴다면, 모든 선법(善法)을 태워 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또한 다음으로 탐욕의 사람은 대단히 멀리 수행 길을 벗어나는 것이 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탐욕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번뇌와 산란(散亂)이 자리 잡는 곳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탐욕에 집착하면, ()에 가까워질 까닭이 없는 것은, 탐욕 덮개 제거의 게()에 설하여진 것과 같다.

 

入道慚愧人 持鉢福衆生 云何縱塵欲 沈沒於五情 已捨五欲樂 棄之而不顧

如何還欲得 如愚自食吐 諸欲求時苦 得時多怖畏 失時懷熱惱 一切無樂時

諸欲患如是 以何能捨之 得深禪定樂 則不爲所欺

 

불도에 들어온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바리때를 들고 중생을 복되게 하여라.

어찌 속세의 탐욕을 제멋대로 하고

다섯 가지 감정[五情=희노애락喜怒哀樂 欲]에 빠져버리는가.

이미 오욕(五欲)의 즐거움을 버렸다면

이것을 버리고, 또한 돌아보지 마라.

어찌 돌이켜서 얻으려고 하는가.

어리석은 이가 스스로 뱉은 것을 먹는 것과 같이.

모든 탐욕을 구할 때에 괴로우며

얻었을 때 무서움과 두려움이 많고,

잃었을 때 심한 오뇌 품게 되니

도대체 즐거운 때가 없느니라.

모든 탐욕의 병은 이와도 같으니

무엇으로써 능히 이것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

깊이 선정의 즐거움을 얻으면

바로 속임을 당하지 않느니라. <大智度論>

 

如是種種因緣 呵貪欲蓋 如摩訶衍中 呵欲偈說.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인연으로, 대승 속에 탐욕(貪欲)가책(呵責)의 게()에 설하여진 것처럼, 탐욕의 덮개를 가책하여라.

 

第二 棄瞋恚蓋者 瞋是 失諸善法之根本 墮諸惡道之因緣 法樂之怨家 善心之大賊 種種惡口之府藏 復次行者 於坐禪時 思惟此人惱我 及惱我親 讚嘆我怨 思惟過去未來 亦如是 是爲九惱 惱故生瞋 瞋故生恨 恨故生怨 怨故欲加報惱彼 瞋覺覆心 故名爲蓋. 當急棄之 無令增長. 如釋提婆那 以偈問佛

 

둘째, 진에(瞋恚)의 덮개를 가책한다는 것인데,

화를 부리는 것은 이것이 모든 선법(善法)을 상실하는 근본이며,

모든 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인연이 되고,

불법수행에서 생기는 기쁨[法樂=法悅=法喜]에 대한 원한의 집이며,

착한 마음에 대한 큰 도둑이고, 여러 가지 나쁜 말의 창고인 것이다.

또한 다음으로 수행자가 좌선을 할 때에, 이 사람은 나를 괴롭혔으며, 그리고 나의 친지를 괴롭혔고 나의 원수를 찬탄하였다는 따위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또한 이것과 같은데, 이것을 번뇌가 모인 것[九惱=糾惱]이라고 하지만, 번뇌 때문에 진에가 생기고, 진에 때문에 한탄이 생기며, 한탄 때문에 원한이 생기고, 원한 때문에 보복을 가하여, 그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니, 진에의 느낌이 마음을 가리기 때문에 이름 하여 덮개라고 한다. 마땅히 급히 이것을 버리고 더 커지지 않게 하여라.

 

제석천(帝釋天)이 게()로써 부처님께 물은 것과 같다.

 

何物殺安穩 何物殺無憂 何物毒之根 呑滅一切善

 

무엇을 죽이면 안온하게 되며

무엇을 죽이면 근심이 없어지고

무엇이 독의 뿌리이고

모든 선을 삼켜 없애는 것인가.

 

佛以偈答言

부처님께서 게()로써 대답하시되,

 

殺瞋則安穩 殺瞋則無憂 瞋爲毒之根 瞋滅一切善

 

진에를 죽이면 곧 안온하게 되고,

진에를 죽이면 근심이 없어지고

진에가 독의 뿌리로 되며,

진에가 모든 착함을 없앤다. <大智度論>

如是知已 常修慈忍 以除滅之 令心淸淨. 如摩訶衍中 佛敎弟子呵瞋偈 是中應廣說.

 

이와 같이 이미 알았으면, 마땅히 인자하고 참는 것을 수행하고, 그리하여 이것을 제거 소멸시켜, 대승 속에서 부처님이 제자에게 진에 가책의 게를 가르치신 그 속에 널리 설하여진 것과 같이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라.

 

第三 棄睡眠蓋者 內心惛暗 名爲睡 五種暗弊 於恣支節 委臥睡熟 名委眠 以是因緣 名委睡眠蓋 能破今世後世實樂. 如此惡法 最爲不善 何以故 餘蓋情覺可除 眠如死人 無所覺識 以不覺故 難可除滅. 如有菩薩 敎睡眠弟子言

 

셋째, 수면(睡眠)의 덮개를 버리는 것인데,

 

마음속이 어둡고 흐린 것을 조름이라고 하며, 다섯 감정이 어둡게 가려져 손발을 멋대로 놓고, 쓰러져 누어, 깊이 조는 것을 이름 하여 잠잔다고 하는데, 이 인연으로써 이름 하여 수면의 덮개라고 하지만, 능히 금세(今世)와 후세(後世)의 알맹이가 있는 즐거움을 파괴한다. 이와 같은 악법(惡法)을 가장 좋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다른 덮개는 마음에 느낌이 있으면, 제거할 수 있으나, 수면은 죽은 사람과 같아서, 느껴 알 수가 없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보살이 자고 있는 제자에게 가르쳐 말한 것과 같이, 제거 소멸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汝起勿抱臭尸臥 種種不淨假名人 如得重病箭入體 諸苦痛集安可眠

如人被縛將去殺 災害垂至安可眠 結賊不滅害未除 如共毒蛇同室居

亦如臨陣白刀間 爾時云何而可眠 眠爲大暗無所見 日曰欺誑奪人明

以眠覆心無所識 如是大失安可眠

 

그대, 일어나라. 냄새나는 시체를 안고 눕지 말아라.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임시로 사람이라고 이름하였는데,

중병에 걸린 몸에 화살이 들어간 것처럼

모든 고통이 모였으니 어찌 잠을 자고 있을 것인가.

사람이 묶이어 이제 죽음으로 끌려가는 것과도 같이,

재해가 거의 닥쳐와 있으니 어찌 잠잘 수가 있겠는가,

번뇌라는 도둑은 없어지지 않고, 재해는 아직도 제거되지 않아,

마치 독사와 함께 방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고,

또한 흰 칼들이 뒤섞이는 전쟁터에 임한 것과 같으니,

이러한 때에 어찌할 것이며, 그래도 잠을 잘 것인가.

잠자는 것은 크게 어둡게 하고, 보여지는 것이 없으니

매일 사람을 속이고, 사람의 깨달음을 빼앗아 간다.

따라서 수면은 마음을 덮으니, 알려지는 것이 없다.

이와 같이 큰 손실이 있는데, 어찌 잠을 잘 것인가. <大智度論>

 

如是等種種因緣 呵睡眠蓋 驚覺無常 滅損睡眠 令無惛覆. 若惛覆心重 當用禪鎭禪杖等却之.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인연으로 수면의 덮개를 가책하고, 무상(無常)을 깊이 깨달아, 수면을 덜어 줄이고, 어둡게 가려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약에 어둡게 가려져, 마음이 무거우면, 마땅히 선진(禪鎭)이나 선장(禪杖)을 사용하여 이것을 물리쳐라.

 

第四 棄悼悔蓋 掉有三種 一身掉 二口掉 三心掉. 身掉者 身好遊走 諸雜戱謔 坐不暫安. 口掉者 好喜吟詠 諍競是非 無益戱論 世俗言語等. 心掉者 心情放蕩 縱意攀緣 思惟文藝 世間才技 諸惡覺觀等 名爲心掉. 掉之爲法 破出家心 如人攝心 猶不得定 何況悼散. 悼散之人 如無鉤醉象 穴鼻駱駝 不可禁制. 如偈說

 

넷째, 도회(悼悔)의 덮개를 버리는 것인데, 흔들림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몸의 흔들림.

입의 흔들림.

마음의 흔들림이다.

몸의 흔들림이라는 것은, 몸이 놀러 뛰어다니는 것이나, 여러 가지 잡다한 희롱거리를 좋아하고, 앉고서도 잠시나마 안정하지 않는 것이다.

 

입의 흔들림이라는 것은, 시가(詩歌)를 읊는 것을 좋아하고, 시비를 다투며, 무익한 의논을 즐기고, 세속의 말을 하는 것 따위이다.

 

마음의 흔들림이라는 것은, 심정이 방탕하여 제멋대로 주위의 대상에 마음을 기울여[攀緣] 문예, 세간의 재주기술, 모든 나쁜 지각(知覺)과 관념을 생각하는 것을 이름 하여 마음의 흔들림이라고 하는 것이다.

 

흔들림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출가한 마음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따위의 것도 역시 안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니, 어찌 하물며 흔들리고 산란한 것을(안정할 수 있겠는가.)

 

흔들리고 산란한 사람은, 취한 코끼리나 코 꿰맬 낙타가 갈고리 없는 것과 같으니, 게에 설하여진 것과 같이 금제(禁制)할 수가 없다.

汝已剃頭著染衣 執持瓦鉢行乞食 云何行著戱掉法 放逸縱情失法利

 

그대가 이미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染衣]를 입어

발우(鉢盂)[瓦鉢] 쥐고 탁발을 하고 있다.

어찌 희롱과 도산(悼散)의 법을 즐겨 집착하여,

방종함에 마음을 내맡겨 불법수행의 이득을 잃을 것인가.

<大智度論>

 

旣無法利 又失世樂 覺其過已 當急棄之. 悔者 若掉無悔 則不成蓋 何以故 掉時未在緣中故. 後欲入定時 方悔前所作 憂惱覆心 故名爲蓋. 但悔有二種. 一者 因掉後生悔 如前所說. 二者 如作大重罪人 當懷怖畏 懷箭入心 堅不可拔 如偈說

 

이미 불법수행의 이득도 없고 또한 세간의 즐거움도 잃었는데, 그 잘못을 이미 깨달았다면, 마땅히 급히 이것을 버려야 한다. 뉘우침이라는 것은, 만일 흔들림이 있는데 뉘우침이 없다면 곧 덮개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흔들리고 있는 때는, 아직도 연() 속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선정에 들려고 할 때, 비로소 이미 이룬 것을 뉘우치고 걱정과 번뇌가 마음을 덮는 것이니, 따라서 덮개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다만 뉘우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흔들림으로 인하여 나중에 뉘우침이 생기는 것으로 위에 설한 것과 같다. 둘은, 큰 중죄를 이룬 사람이 항상 무서움과 두려움을 품고, 뉘우침의 화살이 마음속에 들어가 굳게 배겨, 뺄 수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인데, ()에 설하여진 것과 같다.

 

不應作而作 應作而不作 悔惱火所燒 後世墮惡道

若人罪能悔 悔已莫復憂 如是心安樂 不應念常著

若有二種悔 若應作不作 不應作而作 是則愚人相

不以心悔故 不作而能作 諸惡事已作 不能令不作

 

응당 하지 말 것을 하고,

응당 할 것은 하지 않고,

뉘우침과 번뇌의 불길에 타버려서

후세에 악도(惡道)에 떨어진다.

만일 사람이 죄를 훌륭히 뉘우쳐

뉘우치고 난 다음에 다시 걱정하지 말라.

이와 같으면 마음이 안락하니라.

마땅히 항상 마음에 배겨있게 하지 말아라.

두 가지의 뉘우침이 있는 것과 같이

만일 응당 할 것을 안 하고

응당 안 할 것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인 것이며

마음으로써 뉘우치지를 않는 까닭에

안 할 것도 능히 하는 것이다.

모든 나쁜 일을 이미 하였다는 것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취소될 수는 없다)

<大智度論>

 

 

如是等種種因緣 呵悼悔蓋 令心淸淨 無有覆蓋.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인연으로 도회(悼悔)의 덮개를 가책하고, 마음이 청정하고도 덮여 씌워진 것이 없게 하여라.

 

第五 棄疑蓋者 以疑覆以故 於諸法中 不得信心 信心無故 於佛法中 空無所獲. 譬如人入宝山 若無有手 無所能取. 復次 我疑甚多 未必障定 今正障定疑者 謂三種疑 一者疑自 二者疑師 三者疑法.

 

다섯째, 의심(疑心)의 덮개를 버린다는 것인데,

의심으로써 마음을 덮는 까닭에, 모든 법속에 있으면서도 믿는 마음을 얻지 못하며, 믿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불법 속에서도 헛되이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보물 산에 들어갔어도, 만일 손이 없으면 능히 취하는 바가 없는 것과 같다. 또한 다음에 일반적으로 의심이 매우 많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반드시 선정을 장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바로 선정을 장애 하는 의심이라는 것은,

 

세 가지 의심을 말하는데,

자기를 의심하는 것이고,

스승을 의심하는 것이며,

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一 疑自者作如是念 我諸根闇鈍 罪垢深重 非其人乎 能作此自疑 定法終不得發. 若欲去之 勿當自輕 以宿世善根難測故.

 

자기를 의심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즉 나는 모든 근()이 어둡고 둔하고, 죄의 더러움은 깊고 무거우니 그(선정에 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능히 이 자기를 의심하는 일을 한다면, 선정의 법은 결국 일으킬 수가 없다. 만일 이것을 제거하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자기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과거세(過去世: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이란 측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

二 疑師者 彼人威儀 相貌如是 自常無道 何能敎我 作是疑慢 卽爲障定. 欲除之法 如摩訶衍中說

 

스승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거동(擧動)과 행세(行勢), 생김새와 모습이 이와 같으니, 자기 자신도 또한 도를 이루지 못한 것이, 어찌 능히 나를 가르칠 것인가라는 것인데, 이런 의심과 자만심을 가지면 곧 선정을 장애 하는 것으로 된다. 이것을 제거하는 법을 바란다면, 대승 속에 설한 것과 같이 하여라.

 

如臭皮囊中金 以貪金故 不可棄其臭囊. 行者亦爾 師雖不淸淨 亦應生於佛想

 

구린내 나는 가죽주머니 속에 있는 금과 같다.

금이 탐나는 것이므로

그 구린 주머니를 버려서는 안 된다.

수행자도 또한 그렇다.

스승이 청정하지 않더라도

또한 마땅히 부처님의 생각을 낳는 것이다. <大智度論>

 

此事彼佛論具明 是中應廣說.

이러한 것은 그 론(:大智度論)에 상세하게 밝혀있고, 그 속에 당연히 널리 설하고 있다.

 

三 疑法者 世人多執本心 於所受行 不能卽信 敬心受行 若生猶豫 卽法不染心. 何以故 如疑義偈說

 

법을 의심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마음에 사로잡혀, 법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즉시 믿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수행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만일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면, 곧 법은 마음에 물들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의심의 뜻의 게에 설하여진 것과 같다.

 

如人在岐道 疑惑無所趣 諸法實相中 疑亦復如是 疑故不勤求 諸法之實相 是疑從痴生 惡中之惡者 善不善法中 生死及涅槃 定實眞有法 於中莫生疑 汝若懷疑惑 死王獄吏縛 如師子博鹿 不能得解脫 在世雖有疑 當隨妙善法 譬如觀岐道 利好者應逐

 

사람이 갈림길에 처하여서

의혹으로 갈 바를 모르는 것과 같은데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참모습[諸法實相] 속에서도

의심하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의심하기 때문에 열심히 구하지를 않는 것이다.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참된 모습을

이 의심은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다.

선법(善法)이나 선하지 않는 법 중에서도

생사(生死) 및 열반(涅槃)

결정적이고 확실하며, 참으로 법이 있는 것으로서

그 속에 결코 의심을 낳지 말아라.

그대 만일 의혹을 품는다 하면,

염마대왕(閻魔大王)의 옥졸에게 묶이어

사자(獅子)에게 붙잡힌 사슴과도 같이

해탈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세에 살아 의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오묘한 선법(善法)을 따라야 한다.

비유하면, 갈림길을 보고

응당 이롭고 좋은 것을 쫓는 것과 같은 것이다. <大智度論>

 

復次 佛法之中 信爲能入 若無信者 雖在佛法 終無所獲 如是等種種因緣 覺知疑過 唐急棄之. 問曰 不善法塵 無量無邊 何故但棄五法. 答曰 此五蓋中 卽具有三毒等分 以爲根本 亦得攝八萬四千 諸塵勞門.

 

또한 다음으로 불법 속에는 믿는 것만이 능히 들어갈 수가 있는데, 만일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불법에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얻어지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인연으로서 의심의 잘못을 알아 느끼고, 마땅히 급히 이것을 버려야 한다. 물어 말하되, 착하지 않는 법의 먼지가 무한하고 가가 없는데, 어떤 까닭으로 다만 다섯 가지 법만을 버리라고 하는가.

대답하여 말하되, 이 다섯 덮개 속에는, 바로 탐욕(貪欲)진에(瞋恚)우치(愚痴)[三毒=煩惱魔]가 골고루 섞여있으니 따라서(다섯 덮개를 버리는 것이) 근본으로 되어, 또한 팔만 사천의 모든 번뇌의 문을[煩惱=塵勞] 몰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第一貪欲蓋 卽貪毒 第二瞋恚蓋 卽瞋毒 第三睡眠及疑 此二蓋 卽是痴毒 是故具有三毒 悼悔卽是等分攝 合爲四分煩惱. 一中卽有二萬一千 四中合有八萬四千 是故除此五蓋 卽是第一切 不善之法. 行者 如是等種種因緣 棄於五蓋. 譬如負債得脫 重病得差 如飢餓之人 得至豊國 如於惡賊中 得自免濟 安穩無患 行者如是 除差五蓋 其心安穩 淸淨快樂. 譬如日月 以五事覆翳 煙雲塵霧 羅睺阿修羅手 障則不能明照 人心亦復如是.

 

탐욕(貪欲)의 덮개는 바로 탐욕의 독이며,

진에(瞋恚)의 덮개는 곧 진에의 독이고,

수면(睡眠) 및 의심(疑心)의 이 두 덮개는 바로 이것이 우치(愚痴)의 독이니, 이런 까닭으로 삼독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도회(悼悔)는 바로 이것들이 골고루 섞여 들어 있는 것이니, 합하여 넷으로 나뉜 번뇌라고 한다. 하나 속에 바로 이만일천이 있으니 넷 속에는 모두 팔만 사천이 있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이 다섯 덮개를 제거하면, 바로 이것이 착하지 않는 법을 제거하는 것이 된다.

수행자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인연으로 다섯 덮개를 버려야 한다. 비유하면 빚지고 벗어날 수가 있거나 중병이 치유될 수 있는 것과 같으며, 굶주린 사람이 풍요한 나라에 이를 수 있는 것과 같고, 나쁜 도둑 속에서, 스스로 난을 피하여 구제되고 안온하며 우환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행자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다섯 덮개를 제거하면, 그 마음은 안온하고 청정하며 기분 좋고 즐거운 것이다.

 

비유하면 해와 달이 다섯 가지 일로써 덮여 가리어지는 것과 같으니, 연기, 구름, 먼지, 안개 또 라후수라왕(羅睺修羅王:아수라왕阿修羅王의 하나로서 일식日蝕 월식月蝕을 일으키는 것으로 고대 인도에는 믿어 왔음)의 손 따위가 막으면 곧 밝게 비출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