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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37-보살의 길

염불선이야기37-보살의 길

  

올 봄에 있었던 첫 번째 행자입문 교육에서 행자들에게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장차 어떤 스님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적지 않은 숫자의 행자들이 사회복지 같은 대사회적(對社會的)인 일에 관심이 많으며 장차 스님이 돼서도 그런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당연히 많은 수의 행자들이 사회복지 같은 대사회적인 분야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교학(敎學)이나 참선수행(參禪修行)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예전 같으면 행자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어른 스님들께 야단이라도 맞았을 법한 상황인데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기고 받아들여지는 대중의 분위기 또한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하였다. 우리 교단(敎團)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예전보다는 대사회적인, 즉 보살(菩薩)로서 우리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불교의 역할 또는 스님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산물(産物)인 보살을 구분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지증보살(智增菩薩)과 비증보살(悲增菩薩)의 구분이다. 먼저 지증보살은 ‘본래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거니, 굳이 밖으로 나와 중생을 제도할 필요가 없이 산중(山中)에서 삼매(三昧)에 드는 것이 오히려 세상을 맑히는 길이고 구제하는 길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수행에만 전념하는 보살의 유형을 말한다. 반면 비증보살은 자비심이 너무 많아 중생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 자신의 수행은 뒤로 하고 중생제도에 전념하는 보살을 말한다.


사실 이 두 가지 보살의 유형 중, 어느 것이 우월하고 어느 것이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수행자의 기질이나 개성에 따라 지증보살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증보살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지증보살이나 비증보살도 보살의 지위에 오른 다음에 각기 개성과 근기(根機)에 따라 지증보살의 삶이나 비증보살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 이제 불법의 입문단계에 있는 이들이 각고(刻苦)의 자기수행(自己修行)도 없이 바로 중생구제(衆生救濟)의 길로 나선다는 것은 마치 ‘자기 혼자서도 헤엄쳐서 강을 건널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업고 강을 건너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이 무모한 일이다.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는 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덕목이자 우리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진정한 자비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철학, 즉 참다운 지혜를 떠나서는 발현(發顯)될 수 없고, 진정한 지혜는 자비행(慈悲行)으로 발현되어야만 참다운 존재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자비와 지혜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 있고 조화로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어느 한편으로만 치우친다면 진정한 보살의 삶은 공염불(空念佛)에 지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