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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번뇌의 수렁에 핀 꽃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번뇌의 수렁에 핀 꽃

 

 

 벌써 산사에는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나 봅니다. 밤이면 보일러 온돌방을 따뜻이 하고 지내야 합니다. 낙엽이 지고 소슬한 바람이 일렁이는 계절,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착잡한 번뇌망상이 일어납니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보며 추억과 회한에 젖기도 하고 돌아올 내일에 불안과 희망을 갖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삶이 슬기롭고 지혜로움인가? 현상과 더불어 일어나는 온갖 생각들을 번뇌망상이라 하여 대표적으로 백팔번뇌라 합니다. 지혜는 번뇌망상에 휩싸여 있는 한 일어나지 않는 것, 번뇌를 걷어내고 망상을 젖히면 자연히 감춰진 지혜는 들어나게 됩니다. 마치 하늘의 별과 달에 비유합니다. 구름이 걷히면 숨었던 달이 솟아나오고 어두웠던 별빛이 밝아집니다. 불교공부는 지혜공부입니다.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오히려 지식에 덮여 지혜는 나타나질 않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번뇌망상을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번뇌에는 근본번뇌가 있고 이에 따라 오는 수隨번뇌가 있습니다. 수번뇌를 백팔번뇌라 하는데 우리의 몸에 갖고 있는 감각기관과 그에 따른 대상과 이로 인해 일어나는 인식작용으로 발생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감각기관이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로 눈, 귀, 코, 입, 몸, 뜻의 여섯 가지 근본이 있어 보이는 물질, 소리, 냄새, 맛, 접촉, 현상 법 등의 여섯 가지 대상을 만나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 등 여섯 가지 인식작용이 발생하여 모두를 분별하고 생각하여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18가지가 이미 일어난 것과 일어나지 않는 것을 합해 36가지가 되고 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108번뇌가 된다 합니다. 이렇게 보면 시간과 공간 속에 그리고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번뇌덩어리가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번뇌를 없애고자 백팔염주가 만들어졌습니다. 염주 알 하나하나를 굴리면서 번뇌 하나하나를 굴려 마지막 제일 큰 염주 알 주불主佛로 돌아갑니다.

“번뇌를 돌이키면 지혜가 된다.”“전미개오轉迷開悟라” 어두운 미혹의 번뇌를 돌이키면 깨달음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백팔번뇌를 일으키는 근본과 대상과 인식이 없이는 지혜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느껴 잘못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못 알아 번뇌가 되게 하는 것을 무명혹無明惑이라 합니다. 무명에 가리어 탐내고 분노하고 어리석음이기에 이를 근본번뇌라 합니다. 환하게 밝게 보고 안다면 바로 깨침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반야심경을 수없이 되뇌입니다. 지혜를 열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경전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지 무의식계” 이렇게 어둠이 걷히는 “무무명”하고 또한 “역무무명진”하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번뇌망상을 끊어야 한다는 것은 번뇌를 일으키는 우리 몸과 마음을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잘못 보고 잘못 알게 하는 무명의 그림자를 없애 지혜의 눈을 뜨게 하자는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말씀하십니다. “번뇌니중 내생보리煩惱泥中 乃生普提라” 번뇌의 수렁 속에서 지혜의 연꽃이 피어난다. 흙탕물 속에서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납니다. 이 사바세계가 더러운 세상이라고 이곳을 떠나면 연꽃도 피울 길이 없어져 버립니다. 오탁악세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숨을 쉬면서 흙탕물 속에 물들지 않고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고 본래 가지고 있는 지혜의 달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깨달음의 길입니다.

어제 밤에 산사에 와서 지냈던 분이 말합니다.

스님, 여기와서 밤 하늘을 보니 별들이 더욱 가까이 보이고 훨씬 빛나 보였습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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