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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그리운 마음의 고향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그리운 마음의 고향

 

 

 벌써 가을에 접어 든듯 합니다. 산중이라서 그러한지 아침저녁으론 선들바람이 가슴에 스며들고 방바닥이 차가와서 온돌보일러 불을 켜고 지냅니다. 선조들이 “뭐니 뭐니 해도 등짝이 따뜻해야 살맛이 난다.”고 하시던 말씀이 실감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 금강선원의 모든 방들을 온돌로 꾸몄습니다. 미국에선 구하기 어려워 한국에서 가져와 식당이며 2층 선방까지 온돌로 시공했습니다.

소슬한 금풍이 산란한 푸념을 필경 돌아가야 할 머나먼 고향으로 실어 보내는 천혜의 계절, 더욱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가위 추석, 망향의 계절입니다. 멀리 떠나온 고향, 고향소식도 그리웁고, 고향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차마 곧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정들, 그리곤 정들면 다 고향이라고 머물러버리는 심정들 모두 착잡하며서 선뜻 고향을 찾는 길에 나서지 못하는 마음들이 안타까운 때입니다.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고향의 정의도 여러 가지입니다. 조상들이 사시던 곳, 부모님이 살아오신 곳, 내가 태어난 곳, 그러나 현대에 들면서 더욱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살아왔던 내 인생에 지역적인 고향의 의미는 퇴색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 합니다. 내가 태어난 곳을 생각하면 어머님의 뱃속이 고향입니다. 그러나 더 멀리 모든 인간의 고향도 생각해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수행의 제목으로 화두를 제시하는데 근본적인 것이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입니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근원, 인간의 본래를 깨닫게 하는 공부입니다. 우리는 한 생만이 아니라 수억 겁의 생을 되풀이 하면서 지금의 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본래모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금 존재하는 현상과 느낌만이 남아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업을 지어왔으며 본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망각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가닥 어렴풋이나마 떠오르는 옛 모습들, 천진난만히 그리워하던 꿈과 희망들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계절이 되면 나의 본래면목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인류사 이래 인간의 정의를 환경에 비유하였을 때 미개했던 시대에는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다.”하였고 인지가 발달하고 문명이 발전하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하였으며 문화가 더욱 발달하자 “인간은 환경을 조성하고 지배하는 동물이다.”고 정의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환경의 조성으로 개발과 이용, 지배가 계속되자 다시 인간의 폐해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환경과 함께 공존하자, 조화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환경이란 자연환경, 주위환경 등 물질과 여건입니다. 나의 이익만을 위하여 물질을 소비하고 여건을 이용하는 일은 죄업의 뿌리가 됩니다. 더불어 존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동사섭, 대승의 길을 생각해 볼 때입니다.

지금 금강선원은 1차 불사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큰스님을 모시고 왔을 때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미주지역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불심이 우러나올 정서를 키우는 환경을 만들어 가자고 생각하여 법당과 요사채, 석가탑 등을 세우고 선방도 꾸미고 연못도 운치있게 만들고 이제는 한국의 전통양식으로 일주문, 종각(이층누각), 부도탑비 등을 세우고 이곳을 찾는 미주인들은 아름답다고 감탄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먼저 물어보고 의미를 새기고 합장을 올립니다.

스스로 발심케 하려는 준비가 이제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꾸며진 주위환경에 따라 더불어 느끼고 깨닫고 불심을 키워 우리의 본고향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도반으로서 성불도 중생과 다 같이 이루어지이다 발원합니다.

 

 

출처 : LA중앙일보